
정부가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를 추진한다. 정부는 근속연수 1년 미만의 근로자도 퇴직연금 가입대상에 포함시키고 30인 이하 영세사업장에 대해 중기퇴직연금기금제도를 도입한다. 그러나 중소업체의 퇴직연금 가입의무화에 앞서 최저임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2년까지 전면도입…“노후소득보장 대폭 높일 것”
지난 8월27일 정부가 발표한 ‘사적연금 활성화대책’은 퇴직 후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정부가 기업의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이다.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퇴직 후 일시불 퇴직금 대신 연금을 받는 제도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해 2016년 300인 이상 기업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기업의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우리나라는 국민연금(1988년)ㆍ개인연금(1994년)ㆍ퇴직연금(2004년) 등 외형상 다층적인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갖춘 만큼, 이제는 공적보장을 강화하면서 사적연금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퇴직연금제 도입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2017년에는 100~300인 사업장, 2018년 30~100인 사업장, 2019년 10~30인 사업장, 2022년에는 10인 미만 사업장에 의무도입할 방침이다.
정부가 이러한 대책을 마련한 이유는 국내 노인 빈곤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후소득보장체제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노인빈곤율은 2011년 기준 4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1.6%에 비해 크게 높다. 가계 자산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 위주로 구성돼 있어 안정적인 노후 소득을 만들기도 어렵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7%(40년 가입 기준)에 불과하다. 사적연금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다.
그러나 퇴직연금제도는 시행 후 도입률이 16%에 불과하고, 특히 300인 이상 기업의 도입률은 76%인데 반해 10인 이하의 영세·중소기업은 도입률이 11%에 불과하다.
가입률이 낮은 이유는 퇴직급여가 ‘후불임금’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 근로자의 관심이 부족하고, 사업주 역시 편의상 퇴직금제도를 선택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퇴직하자마자 또는 중간정산으로 퇴직금을 한꺼번에 수령해 흐지부지 써버리는 병폐를 없애고 퇴직급여의 본래 기능인 연금화를 유도해 노후 소득원을 확보토록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는 40%대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퇴직연금 등을 통해 20~30% 이상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최경환 부총리는 “근로자들은 퇴직금에 비해 우월한 퇴직연금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면서 기업의 부담은 가중되지 않도록 보완장치도 함께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 부총리는 “퇴직연금 자산운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 안정성과 수익성을 합리적으로 조화시키겠다”며 “30인 이하 사업장 대상의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제도와 대규모 단일기업 대상의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
확정기여형 확대, 기금형 도입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으로 나뉜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은퇴 후 연금 액수가 달라질 수 있다. 우선 살펴봐야 할 것은 ‘임금상승률’과 ‘예상근속기간’이다.
확정급여형은 근로자가 받을 연금이 사전에 확정되기 때문에 그만큼 은퇴자금 설계를 할 때 안정적이다. 퇴직 직전 3개월 평균 급여에 근속연수를 곱해 퇴직급여를 계산하므로 임금상승률이 높은 직장에서 오래 근무한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확정급여형은 회사가 운용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부담할 적립액이 변동되고 부족분을 사업주가 메워야 한다. 회사가 파산할 경우 퇴직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퇴직연금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도록 확정급여형 사외적립비율을 100%까지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확정기여형은 근로자의 투자판단에 따라 향후 받을 퇴직금의 액수가 달라진다.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1년에 한 번 이상 회사가 근로자의 개인 계좌에 납입해주면 그 금액을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방식이다. 운용을 잘 못해 퇴직연금액이 줄더라도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한다.
임금상승률보다 운용수익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면 선택할 만하다. 그러나 고수익·고위험 상품을 선택할 경우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있고 미래예측이 어렵다.
임금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 소규모 사업장이나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라 급여가 줄어들 상황이라면 확정급여형에서 확정기여형으로 갈아탈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지지부진한 연금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금 투자대상과 운영방식을 다양화할 방침이다.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연 2~3%대로 연 4~5%대인 국민연금 수익률에 못 미친다.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93%가 은행 예금과 같은 보수적인 원리금 보장 상품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투자 관행을 바꾸기 위해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을 주식형 펀드·회사채와 같은 위험자산 보유한도(현재 40%)를 확정급여형과 같은 70%로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확정기여형은 개인이 각자 상품을 선택해 투자 위험을 책임지는 구조라 변동성과 리스크가 커 정부가 확정기여형 비중을 점차 확대해 노후의 최후 안전판인 퇴직연금 운영을 투자에 맡기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부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퇴직연금을 지배구조 형태별로 분류하면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나눌 수 있다. 정부는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운용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도 2016년 7월 도입한다. 계약형은 국내에 도입돼 있는 방식으로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하고 제도 운영을 금융사에 일괄 위탁하는 방식이다.
반면 기금형은 기업이 외부에 연기금을 설치해 연기금이 퇴직연금 기금을 기금에 신탁하는 제도다. 기금은 노·사·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를 만들어 퇴직연금 운용 방향과 자산 배분 등을 결정다. 기금형은 계약형보다 기업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기금형 제도를 단일기업형 기금 형태로 도입해 기업들이 계약형과 기금형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1년 미만 비정규직도 연금 적용
오는 2016년부터 근속기간 1년이 안 되는 임시직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르바이트생이나 시간강사와 같은 단기 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근속기간이 3개월 이상인 경우 적용토록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퇴직연금에 대상에 포함되는 근속기간 1년 미만 근로자가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금은 근속기간 1년이 넘을 때만 퇴직금이 지급된다.
이에 따른 중소업체들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30인 이하 영세사업장에 대해 중기퇴직연금기금제도가 내년 7월 도입된다. 노·사·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가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신해 자산 운용정책을 결정한다.
정부는 중기 퇴직연금기금제도에 가입하는 사업주를 대상으로 저소득 근로자(30인 이하 사업장의 월소득 140만원 미만)에 대한 퇴직 적립금 10%, 자산운용수수료(적립금의 0.4%)의 절반 등을 내년부터 3년간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현재 최저임금 수준도 못 받는 영세사업장 근로자에 대한 퇴직연금 의무화가 과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3월 기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전체의 12.6%로 231만5000명이나 되는 현실에서 최저임금부터 제대로 받게 해야 정책이 실효성 있게 추진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현행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쳐 연 400만원까지 12%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퇴직연금에 들지 않아 개인연금으로만 소득공제를 받고 있는 경우,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기존의 400만원에 300만원을 더해 700만원까지 세액공제가 가능해지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연 48만원에서 36만원을 더한 연 84만원의 세액공제를 받게 된다.
정부는 퇴직연금 가입에 대한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입 이후 새로 쌓은 적립금만 외부 금융기관에 맡겨 퇴직연금으로 운용하도록 했다. 이럴 경우 근로자는 퇴직할 때 가입 이전의 퇴직금은 일시금으로 받고, 가입 이후의 퇴직연금은 연금 형태로 매달 나눠 받을 수 있다. 물론 퇴직연금도 원한다면 일시금 지급이 가능하다.
다만 일시금으로 받으면 12% 기타소득세가 부과돼 퇴직연금으로 받을 때 내는 3~5% 연금소득세보다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퇴직연금을 장기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개인연금을 장기간 유지하는 가입자들이 운용수수료를 할인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고,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올해 안에 퇴직연금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을 개발키로 했다.
한편 신설사업장의 경우, 지금까지는 설립 1년 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지 않아도 퇴직금 제도를 설정한 것으로 간주해 제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퇴직연금 별도의 가입의무기한은 없지만 55세 이전에 해지하면 15%의 기타소득세를 물게 된다. 55세까지 운용하면 퇴직소득세가 연금수령 시점까지 미뤄진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