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잘 있었어요?” 침상에 누워있는 노인에게 다가선다. 노인은 중년의 여인을 보자 눈물부터 보이면서 “나 아파 죽겠어” 하며 중년 여인의 손을 잡는다.
“엄마 어디가 아픈데요?” “엉덩이…” 하자 이불을 들추어 보니 하반신은 모두 벗겨지고 허리부분부터 엉덩이까지 짓물러 진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란 중년의 여인은 아연실색한다.
소리를 지르면서 이 정도 될 때까지 치료도 안하고 병원을 왜 데리고 가지 않았냐며 울부짓는다. 그러자 책임자급 되는 여자가 달려왔다. 지금 치료중이고 사무장이 나오시면 얘기를 들어보라고 중년의 여인을 진정 시킨다. “엄마, 아프면 전화를 하지” 그러자 전화를 못하게 하고 저녁에는 전화기를 가져간다고 노인이 하소연한다.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사무장이란 남자가 나타나서 하는 소리가 여태껏 잘 치료하고 있었고 치료해서 많이 나은 것이라며 설명을 한다. 그리고 노인의 하반신을 보여주며 잘 치료하고 있다며 인상을 쓴 채 노인의 딸에게 윽박지르듯 얘기한다.
그러자 딸은 그 말에 기죽지 않고 더 큰소리로 “이 정도 되면 병원으로 옮기고 나한테라도 연락을 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하자 사무장이라는 사람은 주춤하더니 약상자를 갖다놓고 소독을 하면서 치료하는 시늉을 낸다.
중년 여인은 기가 막혔다. 의사도 아닌 사람이 자신의 엄마의 음부까지 다 드러나게 내놓고 같은 방 다른 환자의 요양사와 면회 온 낯선 남자가 다 보는데 치료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하니, 하도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진료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다음날 관할구청에 신고를 하고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곤 구청을 찾아가 담당관에게 엄마가 당하고 있는 사실을 얘기를 하자 담당관은 일단 조사를 해보고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다음날 다시 구청으로 가려고 하는데 요양원 원장이 연락을 해왔다. 꼭 좀 만나야 겠다고….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필자가 꾸며서 한 얘기가 아니고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밝힌 것이다.
자, 여기서 우리는 노인복지 문제를 얘기 하지 않고 넘어 갈 수가 없다.
필자가 알아보니 요양원이 인천 남구에만 33개가 있다고 한다. 33개의 요양시설 관리 담당관이 구청직원 한 명 미만이라는 것이다.
요양원을 설립하는 구비조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사람들은 노인요양원을 돈 벌이 수단으로 생각해 요양원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등급을 받으면 요양시설로 갈 수 있는데 급수에 따라 틀리지만 요양인 노인 한 명당 100만 원 가량 정부 지원이 있고, 보호자는 한 달에 55~60만 원 정도를 요양비로 지불한다.
문제는 노령화 시대가 되면서 많은 노인들이 치매 등 자식이 돌보지 못하고 요양원에 위탁을 하게 되는데, 요양원 허가만 내 주었지 그 시설에 대해 관리감독이 소홀하기 때문에 노인 인권 문제와 학대 문제가 대두 되는 실상이라는 것이다.
어느 요양원에는 오후 6시만 되면 방문을 잠그고 당직자도 없이 퇴근 해버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노인에게 기저기를 갈아줘야 하는데 밤새도록 갈아주지 않고 그냥 놔두니까 아랫도리가 짓무르게 되는 것이다.
요양원을 돈벌이 수단이 아닌 봉사의 정신으로 한다면 밤에도 노인을 돌보고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데도 관리 감독하는 구청은 무얼 하는건지?
어느 요양원에서는 노인의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영양실조까지 걸렸다고도 전해진다.
정부가 이대로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면 이것은 또 다른 범죄를 양성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 하고 있는 노인복지 정책이 과연 잘되고 있는지, 허술한 제도를 이용해서 개인들의 주머니만 채우는 건 아닌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운 명
슬퍼도 슬프다 하지 못하고
기뻐도 기쁘다 하지 못하네
지금의 삶이 이러하니 어찌 살아있다 하리오
석양이 지는 노을빛을 내 눈에 넣으면서
하루가 저물고 있음을 느끼는데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운 건 무엇 때문일까
산야는 그곳에 있는데
내 마음은 갈 곳을 잃어 허공만 떠도네
삶에 찌들어 누구하나 돌봐 주는 이 없는
육신을 어찌 할까나.
이 시에서 말하고 있듯이, 노인은 갈 곳이 없고 늘 죽음만이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되겠는가?
이진
한국과학기술비즈니스 포럼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