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까지 풍미했던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누가 맨 먼저 꺼냈을까.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실질적인 일과 행동으로 불을 댕긴 사람은 누구일까. 박정희 정권이 막 들어선 시기는 경제와 산업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무척 고심하던 무렵이었다. 6.25전쟁 이후 원조 경제로 겨우 나라 살림을 꾸려가던 이승만 정권과 민주당 정권의 경제팀들은 나름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당시 자료를 보다 정밀하게 연구한 최근의 저술에 따르면 인플레이션과 같은 큰불을 끄고 전후 복구 사업은 마무리돼 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원조는 줄어들어 경제의 흐름을 잡고 산업 정책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코오롱 그룹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은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로부터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리는 박정희 재건 최고회의 의장 주재 경제간담회에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이원만 회장은 경제인협회 이사였다. 아래 내용은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자서전 「나의 정경 50년」에서 인용했다. 박정희 의장은 참석한 경제계 인사들 앞에서 간담회를 소집한 이유를 설명했다. “혁명의 필연성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 사들과의 모임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과 좋은 대화를 나눴으나 우크라이나와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카드가 없는데도 카드를 거칠게 사용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제시한 종전안과 특히 희토류 광물자원 사용 제안을 거부 한 데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는 ‘힘’과 ‘현실’이 중요하고 정의는 안 보이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가 결정한 대로 따르는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태도로 비친다. 또 전쟁 기간 무기를 대여해 준 만큼 희토류로 받아내겠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미적거리는 젤렌스키에 대해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외교적 수사는 걷어차고 직설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날 폭스뉴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당초 러시아에 양보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에게는 국제 사회의 정의보다는 현실적인 힘이 중요하고,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트럼프와 푸틴의 세계관이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월드뱅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가 2011년 이후 2~3%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오다가 작년에 1.4% 성장했다. 올해 전망치는 2% 성장률도 간당간당해 이러다가 1~2% 사이의 저성장 늪에 빠지는 건 아닐지 우려된다. 경제의 틀과 방향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고 새판을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상공회의소 회장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폭적 관세 부과 등을 이유로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이 한계가 왔다고 언급했다. 최 회장의 말에 타당한 부분이 있으나 수출주도형 모델은 내수가 작은 한국 경제에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 다만 수출주도형 모델에서 그간 대기업이 주체였다고 하면 앞으로는 중소기업이 주체가 되는 변신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3%대 아래로 내려앉은 데는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수출 경쟁력 저하의 가장 큰 요인은 범용 기술의 제조업에서 중국 세가 급증한 까닭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첨단 기술에선 미국과 일본에게 치이고 범용 기술에선 가성비 와 물량에서 중국에게 밀리는 상태가 지난 10여 년간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기존 타성대로 첨단기술 을 쫓아가기에도 벅차다. 근래 삼성전자의 부진이
시국이 어수선한데 지난 연말부터 희망퇴직의 찬바람이 직장가에 불고 있다. 금융, 유통, 심지어 제조업 까지 희망 퇴직을 실시한다는 소식들이 들린다. 그간 튼실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강소기업들 사이에서도 희망퇴직을 모집한다고 한다. 희망퇴직은 물론 강한 고용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직장인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훨씬 을씨년스럽고 불안하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새로운 직장을 잡기가 쉽지 않고, 옮긴다고 해도 평행이동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사는 장기적 내수 침체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 때문에 희망퇴직을 실시해왔는데 최근에는 AI 도입 확산으로 인력 구조의 쇄신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례도 엿보이고 있다. 회사의 희망퇴직 사유가 어떻든간에 사원들에게 희망퇴직 실시 자체가 큰 스트레스를 준다. 회사 입장에서는 희망퇴직을 원하는 사원에 한해서 심사를 해 선별한다고 하지만 전체 사원들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감은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림은 물론 회사에 대한 충성심, 일체감은 단박에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퇴직했으면하는 사원 대신에 유능한 사원들이 이직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변론을 오는 25일 종결하기로 결정하면서 3월 11일 전후로 최종 선고가 날 전망인 가운데, 2개월이 넘는 심판 절차에서 나온 결정적인 장면을 바탕으로 향후 탄핵정국은 어디로 갈 지 짚어보자.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포고로 지난해 12월 14일 두 번째 표결 결과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인 204명이 찬성하면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탄핵소추의결서가 송달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가 개시됐다. 탄핵 심판 내용이 군경을 동원한 계엄 실행과 이 행위가 국헌 문란인지 등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위헌·위법을 따지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개인적 정치 성향과 진영 논리를 따르기보단 법에 근거한 논리로 결론을 낼 것으로 헌법학자들의 분석하고 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20일 10차 변론을 마무리하면서 “양측 대리인의 종합 변론과 당사자의 최종 의견 진술을 듣겠다”고 고지했다. 국회가 지난해 12월 14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때로부터 73일 만이다. 윤 대통령과 국회 양측 모두 이 결정에 별다른 이견 없이 수용했다. 변론
“내가 구속되면 정권이 한 달 안에 무너진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 사건 핵심인물인 명태균 씨는 구속 직전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11월 15일 새벽 명씨가 구속되고 18일이 흐른 3일 밤 10시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창원의 ‘정치 브로커’ 명태균의 발언이 현실이 되는데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명태균, 국힘 공천부터 대선 이후 국정개입까지...김 여사와 사사건건 소통 명태균 게이트는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를 당선시키고자 ‘미래한국연구소’를 이용해 다수의 불법 여론조사를 시행하는 과정이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의 수사와 뉴스토마토가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을 보도하자, 해당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윤 대통령 관련 녹취록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다. 지난해 9월 뉴스토마토의 최초 의혹 보도에 이어 그해 10월 22일 명태균이 운영하는 여론조사업체의 직원인 강혜경 씨가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 장사’ 양심고백을 했고, 올해 1월 14일 ‘뉴스타파’를 통해 공개한 창원지방검찰청 수사보고서에는 ‘피의자 명태균이 윤석열 대통령 및 김건희 여사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 캡처사진과 강혜경 보관 PC’가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해 고환율·고금리·고물가 3고(高)와 내란사태로 정치 불안 요소 악재까지 시달렸던 한국경제가 올해 내수경기 부진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특히 내수 지표인 소매 판매가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 21년 만에 최악의 ‘소비 절벽’이 나타났다. 이를 반영하듯 ‘고용 한파’ 속에 상용직 취업자 증가 폭이 22년 만에 최소를 기록하는 등 임금근로자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소비 위축에 자영업자들의 폐업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소상공인 폐업자 속출에 정신없이 바빴던 이호영 드림철거연합 실장은 올해 초에는 하루 10~15개 업체의 철거로 더 바빠졌다고 한다. 그는 “아직도 줄 서서 대기하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기존에 돈이 모자라 철거를 못한 분들도, 투잡을 뛰고 ‘영끌’해서 돈을 모은 자영업자도 늘면서 건수가 더 늘었다”며 “회사 수익은 증가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계속된 폐업자 증가는 차후에 엄청난 자영업자들이 사라져 철거 회사에도 좋은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한계에 다다른 자영업자와 민간소비 위축...산업 생산 증가율 최악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자영업자는 5
◇ 히로시마 원폭에서 살아 돌아온 김정렴, 한국경제의 총참모장 되다 강경 상고를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입행한 김정렴은 입사하자마자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다. 히로시마 군관구 교육대에서 교육을 받던 그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당했으나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피했다. 해방 후 서울로 귀국한 김정렴은 조선은행에 복직했다. 그는 은행 재직 중에 통화개혁안을 극비리에 작성했고 당시 백두진 재무부 장관의 지시로 1953년 2월 통화개혁을 전격 실행했다. 통화개혁은 전쟁으로 인해 야기된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다. 김정렴은 상공부 차관 재직 시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했다. 한국경제 성공 방식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수출주도형 중화학 공업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김정렴은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후진국 개발 전략에서 깊숙이 기여한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정렴 차관은 국내 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수출주도형 공업화가 아니고서는 한국경제의 도약이 이뤄질 수 없다고 봤다. 당시 국내 기업들은 외국 제품을 수입해서 국내에서 판매하거나 수입을 대체하는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 이익을 남기는 구조였기 때문에 수출에 힘쓰지 않았다. 김 차관은 이를
◇한국 과학기술의 초석을 놓은 두 거인: 최형섭과 김재관 최형섭은 한국인 최초로 금속공학 분야에서 미국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네소타 대학 교수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 열심히 공부한 최형섭은 고국에 봉사하고자 귀국했다. 최형섭은 원자력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상공부 광무 국장을 겸임했다. 1962년 국영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금속연료종합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상공부 광무국장을 그만둔 뒤에 원자력연구소장을 맡으며 낮에는 소장 일을 하고 밤에는 금속연료종합연구소에서 연구를 수행했다고 한다. 1966년 최형섭은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종합과학연구소인 KIST 초대 소장으로 임명된다. 한국의 과학연구개발은 최형섭에 의해 시작됐던 것이다. 최형섭에게 가장 큰 문제는 연구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는 국내에서 연구원을 충당할 때 국내 기업과 대학의 연구 기능을 마비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해외에 있는 한국인 인재를 유치하기로 했다. 만약 그가 국내에서 손쉽게 인재를 구했더라면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사로 볼 때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형섭 소장은 미국과 유럽의 해외 연구기관들에 KIST 안내서를 보낸 결과 500여 명이 응모했고 그
1950년대의 역사를 논할 때 여전히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공과를 중심으로 한 정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조차 꺼내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승만 대통령을 다시 보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승만 정부의 정치부문에 비해 경제 부문은 많이 주목받지 못했다. 학계에서는 1950년대 경제 부문에 대한 연구가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고 그간의 인식을 개선하는 연구도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인식이란 한국경제 발전의 출발점이 박정희 정부 시기가 아니라 그 이전 1950년대였다는 것이다. 김두얼 명지대 교수가 그의 저서 「한국 경제사의 재해석: 식민지기·1950년대·고도성장기」에서 그와 같은 주장을 펴는데, 상당히 일리 있는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 아랫글은 김두얼 교수의 저서와 한국 경제사에 대한 명저로 평가되는 고려대 이헌창 명예교수의 저서 「한국경제 통사」를 주로 참고하면서 필자의 견해를 덧붙였다. ◇ 8.15 광복 이후와 전쟁, 그리고 1950년대 경제 발전 일제 식민지의 공업 자산이 광복 후 경제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는 궁금한 부분이다. 이헌창 교수는 「한국경제 통사」에서 식민지의 공업 자산이 있었지만
지난해 미국과 유럽 등 기술 선진국들이 국가안보 핵심기술로 3D프린팅을 포함시키면서 3D프린팅 기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3D프린팅 기술 우위를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우주항공 분야에서, 유럽이 자동차 부품 및 코팅 분야에서, 중국이 PBF(분말소결방식) 3D프린터 제조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3D프린팅 기술이 선진국의 80%에 못 미친다는 분석이 나와 정부주도 지원으로 기술격차를 빨리 좁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선진국에서는 많은 기업이 다양한 산업에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해외에 비해 미미한 실정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 모든 ‘금속 3D프린터’ 기술 자체개발... 독보적인 K-중소기업 ‘인스텍’ 이런 가운데 오직 기술력 하나로 ‘금속 다중소재 3D프린터’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선 K기업이 있다. ‘금속 3D프린팅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회사가 국내에 거의 없는 상황에서 순수 독자기술로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금속 3D프린터에 들어가는 모든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스텍(대표 선경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인스텍의 독보적인 기술력은 1999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메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적층제조(3D프린팅) 전문 전시회인 ‘폼넥스트(FORMNEXT) 2024’에는 세계 864개 업체가 참가해 장사진을 이뤘다. 10회 째로 열린 ‘폼넥스트 2024’는 축구장 7개 크기인 52,000m² 전시장에 적층제조 관련 소재·장비·소프트웨어 기업이들이 대거 참가했다. 첫날인 11월 19에는 오픈 전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진풍경이 펼쳐지면서 적층제조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나흘간 진행된 전시회에는 3만4404명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이중 48%가 해외 방문객으로 나타나 세계 각국의 적층제조 기술에 대한 관심의 뜨거움이 확인됐다. 한국도 3D프린팅 전문단체인 3D프린팅연구조합(이하 연구조합)이 산학연 관계자 37명과 함께 참관단을 꾸려 참석했다. 참관단은 19일부터 22일 나흘간 ‘폼넥스트 2024’를 참관하고 하이델베르크 3D프린팅 데이터센터와 포르쉐 적층제조센터를 방문해 글로벌 적층제조 기술의 현황을 확인했다. 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확인한 세계 적층제조 기술에 대한 정보를 15일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폼넥스트 2024 보고대회’를 열어 국내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을 필두로 한 기술 선진국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