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코앞이다. 그런데 소비자도 전통시장 상인들도 마음이 편치 않다. 식재료의 ‘오픈런’이라는 미증유의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임시방편에 불과한 공급업체 지원, 할인지원 예산을 또 쏟아붓는다. 일부 소비자만 덕을 본다. 팔짱 끼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정부 앞에 근본 대책이란 말이 무색하다. 민생은 밥상물가 안정에서 시작된다. 다시금 국민이 나서야 하나 보다. 집단지성의 힘은 막강하다. 농업공부공동체를 제안한다.
◇대형마트를 위한 김장 대목?
11월 김장을 앞두고 대부분의 소비자는 기후위기, 온난화에 따른 배추 작황과 가격에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절임배추를 주문해서 김장을 담가 온 필자도 다르지 않다. 올해 배추 맛은 어떨까, 가격은 작년에 비해 얼마나 오를까, 농부님 건강과 생활은 안녕할까 등등 궁금한 사항이 여러 가지다.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올여름 고랭지 배추 가격은 작황 부진으로 한 포기에 2만 원이 넘게 올라 금배추 가격을 새롭게 경신했다.
정부는 10월 24일부터 12월 4일까지 6주간 유통업계와 협력을 해서 김장 채소를 최대 40%까지 할인지원을 하고, 작년에 비해 10% 이상 양을 늘려 약 2만 4,000톤의 배추와 약 9,100톤의 무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유통구조 개선 없이 임시방편으로 공급업체 지원, 할인지원 예산을 또 쏟아붓는다.
상반기에만 약 1,500억 원이 소요되었다. 이 중 대형마트 6개 사로 흘러 들어간 할인지원 예산은 총 699억 원이고, 전통시장에 지급된 할인지원 예산 250억 원(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 지원 130억 원 포함)이었다. 대형마트 할인지원 예산이 전통시장의 약 3배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형마트 편중 정책은 경기 악화로 경영이 힘든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다.
◇식재료의 오픈런 사태
상반기 막대한 예산 투여도 그때뿐, 하반기에 금배추 금시금치 등 금값 농산물은 계속 나타났다.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오픈런이 아예 자리 잡을 기색이다. 지난 3월에는 가락시장을 관리・운영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이 재직했던 모 대형마트가 가락시장 도매법인들과 협력하여 3일 동안 사과 1상자(2.5㎏)를 9,900원에 팔았다. 비슷한 상품을 같은 대형마트에서 2만 3,9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특가 상품으로 준비한 총수량은 3,000상자였고, 일부 매장에서 하루 100상자만 공급하다 보니 오픈런과 완판으로 귀결되었다. 흔히 봐 온 명품 오픈런이 아니라 일상적인 식재료 농산물 오픈런이라는 새로운 진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유통구조 혁신이 없다면 농산물 고공 행진에 따른 오픈런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김장용 배추가격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모 대형유통업체의 사전예약 해남절임배추 할인 행사에 몰려들었다. 원래 판매가는 20㎏ 1박스에 4만~6만 원대인데, 당일은 최저 2만 9,900원 특가로 판매했다. 예약 물량은 행사 당일 완판되었다. 배추가격 고공 행진으로 불안한 소비자의 심리가 오픈런으로 이어진 결과다.
농산물 가격 불안정은 아무리 많은 혈세를 투여해도 잡을 수가 없다. 재배면적은 줄고 기상이변으로 출하량은 감소하니 현재의 유통구조하에서는 가격 불안정성이 더욱 커질 게 빤하다. 김밥에서 시금치가 사라지던 즈음 가락시장에서는 시금치 한 상자가 45만 원에 경매로 낙찰된 사례가 있다.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인 모양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의지도 능력도 보이질 않는다. 근본적인 대책을 못 내놓으니 올해 김장 김치를 준비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기후변화의 맛을 강하게 느낄 것 같다.
◇국민참여형 해법을…
농산물 가격 폭등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런데 생산량 부족 탓만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지겠나. 이쯤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국민참여형 해법을 찾아보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방안이다. 바로 소비공동체와 생산공동체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특정 농산물을 직거래하고 그 과정에서 생산-유통-소비의 문제점 및 해결 방안을 찾는 후속 (온라인)간담회를 개최하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한 국민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소비자 일부만 혜택을 받는 할인지원 정책, 생산원가가 반영되지 않은 가격결정 방식, 수요와 공급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락은 당연하다는 집단적 타성, 비효율적인 공영도매시장 거래제도 등, 또한 이를 혁신할 방안까지.
집단이 참여하여 농산물을 공동 구매한 최근 사례가 하나 있다. 영광군 쌀 구매 운동이다. 지난 10·16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쌀값 때문에 농민들이 죽게 생겼다는 말에 영광 신동진쌀 2만 5,000원(10㎏짜리)에 팔아주기 운동이 일어났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들은 쌀 구매 운동 같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쌀 구매 운동에서 진일보하여 함께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는 지속가능한 연대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예로, 전남 해남농민회와 손을 잡고 서울의 소비그룹이 절임배추를 직거래하는 사례가 생겼다. 생산비가 반영된 해남절임배추를 공동 공급과 공동 구매하면서 금배추 탄생의 다양한 원인에 대해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하여 해법을 찾은 것이다.
11월 22일과 11월 29일에 배송받을 수 있는 해남절임배추 20㎏ 1상자(배추 7~8포기)를 택배비 포함 42,000원에 공급한다. 절임배추 원가표 상세 내역을 보면, 배추 1포기 2,000원, 천일염 2,700원, 인건비 7,500원, 상자비 1,600원, 속 비닐비 400원, 택배비 6,000원, 비용 5,000원, 농가 수익 5,000원 등, 총 44,200원인데, 농민회 운영위원회에서 최종가격을 42,000원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대형마트 사전 예약 물량은 1~2일 저장고에 보관하여 판매하지만, 이번 공동 구매 직거래는 저장하지 않고 배송해서 더 신선한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상품에 하자가 생겼을 경우 신속한 대응 및 후속 조치도 가능하다고 한다.
◇농업공부공동체 실험
이번 해남절임배추 공동 구매에 참여하는 소비자그룹은 구매 과정을 통해, 어쩌면 새로운 공부에 눈뜰 수 있을 것이다. 배추 원가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공영도매시장 유통의 문제점, 가격 안정에 도움 되는 방안은 뭔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최선의 민생은 밥상물가 안정이라는 중요한 명제도 절감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이는 곧 공부 기회를 구매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뭉친 그룹들이 연대하는, 농산물 직거래 모델에 참여하는 국민이 많아지면 집단지성의 힘은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
공동 구매에 100가구가 참여했다고 하면, 해남에서 서울까지 각 100가구에 해남절임배추를 배송하게 된다. 그러나 서울 가락시장에 직거래도매상인 공익형시장도매인 제도가 도입되었다면, 해남절임배추 100상자가 가락시장에 일괄 도착하여 서울의 100가구로 분산 배송되어 물류 효율에 따른 유통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사전 예약형 직거래는 생산 안정성뿐만 아니라 가격 안정성까지 가져온다.
이 같은 내용을 인식하고 더 나은 방안을 찾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며 간담회도 개최하여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을 제안한다. 구매 과정이 곧 공부이며, 농부와 서울시민이 함께 공부하는 농업공부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직거래 농업공부공동체가 많아지면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유통구조 혁신의 시간은 빨라질 수 있다. 또한 가락시장에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시장도매인제도가 도입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