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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다면.... 제4편

젊은이를 부르는 숲길, 농어산촌의 미래가 달렸다

전직 교수이자 세계 여행가인 김현주씨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대면(對面) 여행이 힘들어지자 그 대안으로 내 나라 걷기를 시작해, 3년 동안 스스로 개척해 답사한 300여 개 임도(林道)걷기 코스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 임도는 (차량통행이 가능한)폭이 1.5m 이상이 4만4862km(28%)이고, 보행만 가능한 소로(小路), 즉 산길은 11만6340km(72%)여서 임도포함 총16만1483km에 달하고 있다.

 

 

지구둘레의 4배에 이르는 호젓한 임도에다 기존의 둘레길, 강과 하천, 들판 길 600여 곳의 일부구간을 직접 답사한 사람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그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전국 산골 방방곡곡을 누빈 그는 우리나라 농어산촌의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보다 많은 사람이 숲길을 걸으면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농어산촌 마을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목이 부러지고...죽을 고비를 넘긴 3년간의 숲길 여행

 

“더 이상 걸을 곳이 없습니다. 이제 내 나라 걷기를 끝내야할 것 같습니다,”

 

60대 중반의 그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작업을 하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깨가 떡 벌어져 있고, 뼈대가 굵고 군살이 없어 몸이 돌덩이처럼 단단해 보였다.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전 세계인들의 발이 묶기기 시작한 2020년까지 그는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항공기와 대중교통만을 이용해 전 세계 100여 개국을 도는, 자신이 개발한 67개 코스를 7년간에 걸쳐 완주하고, 또 다른 여행코스를 개발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여행이라면 이골이 난 그가 왜 국내로, 그것도 인적이 드문 임도코스를 개발하여 무려 3년간 걸어야 한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임도가 아니라도 600여개에 달하는 유명한 둘레길, 올레길 등 걷기 코스가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데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외국 여행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 기회를 이용해 내 나라를 구석구석 걸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이 어딜까 찾다가 마침 숲속의 길, 임도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혼자 숲속을 걷다보면 무섭지 않나요? 사고라도 나면....”

 

“그런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지요. 아무리 준비를 하고,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도 뜻밖의 일을 당하는 게 도보여행인 것 같아요. 산에서 길을 잃고 위기를 맞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한번은 동두천 인근 임도에서 철조망을 넘다가 발목이 부러졌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휴대폰으로 집사람에게 연락을 했는데 사고를 당한 위치를 알려주기가 난감했습니다."

 

"간신히 집사람과 만나 119로 병원에 가서 살았지요. 지금도 발목이 완쾌되지 않아서 10km이상은 걷지는 않으려고 합니다만, 그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어요.....산길에서 가파른 경사에 미끄러져 손톱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온 몸이 긁히고 피가 나는 걸 보면 겁이 덜컥 나지요. 그렇지만 지금 멀쩡하게 살아 있잖습니까? 하하하, 사실 길이 잘 닦여 있는 임도에서는 사고를 당할 일은 1도 없었습니다. 대개는 표지판이 정확하지 않아서 길을 잃거나 지도와 현지 상황이 달라서 헤매다가 사고를 당하는 거지요....진짜 무서운 건 뱀이나 야생동물이 아니라, 호젓한 곳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이지요. 머리털이 쭈뼛하고 섭니다. 사회에서나 산에서나 사람이 무섭긴 무섭나 봅니다.”

 

 

나 홀로 누리는 대자연, 결코 좁지 않은 우리나라에 수두룩

 

“도보여행이 스릴은 아니잖습니까? 위험을 무릎 쓰고 걷기를 계속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살아있다는 희열(喜悅)을 느끼시는 건가요?”

 

“글쎄요. 위기에서 살아나면 내 자신이 강해졌다고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위험에 따른 보상이라고 할까, 숲속을 걷다보면 이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 나 혼자 누리는 대자연이 온 사방에 확보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을 잠시 끊고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세계 지도에 나온 우리나라 크기는 새끼손가락으로 가릴 수 있는 아주 좁디좁은데 이런 대자연의 빈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걸으면서 제가 놀란 게 이런 거였어요. 우리나라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 무지하게 넓고 다양한 나라였어요. 몇 시간을 걸어도 마주 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내가 마치 미국의 애팔레치아산맥, 러시아 시베리아에 와 있는 듯 했거든요. 5천만 명이 사는 이 나라에 과연 사람이 살고 있는 거야? 라고 중얼댈 때도 있었지요. 도시에선 사람들로 숨이 막히는 나라인데 산속 임도에 들어서면 완전 무인지경인 곳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어요.”

 

그는 임도 걷기를 통해 우리나라 국토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산과 계곡이 있고, 시냇물이 흘렀다. 외국은 넓기는 하지만 대개 평지, 대평원, 초원,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국토면적이 프랑스의 3분1 정도인 우리나라지만 동식물 다양성, 지질학적, 생태학적인 면을 비교해 보면 결코 뒤지지 않았다. 고속철도, 항공기,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창밖을 스쳐가는 풍경에 우리나라를 좁다고 느꼈던 그였지만 임도를 걷고 나서부터 생각이 바뀐 것이다.

 

 

“제가 세계 여행을 다닌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넓었지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세계 100등 안에 들지 못하는 코딱지만 한 우리나라-그것도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국토의 구석구석 걸으면서 우리나라가 절대로 작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걸어 다니던 조상들을 생각하면 이 나라가 좁은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적당한 면적인 듯했고, 지금 남북을 합치면 절대로 작은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요. 누구라도 저처럼 걸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겁니다.”

 

300여개 임도코스를 점수로 평가, 대중교통 접근성이 가장 중요

 

“인구감소, 지방소멸 덕분에, 다시 말해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갔기 때문에 자연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었을까요?”

 

“맞습니다. 서울사람인 저는 무궁화 열차로 2시간 이상만 벗어나면 인적이 드문 대자연 속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만약 산 주변의 인구밀도가 높았다면 이런 훌륭한 자연이 남아나겠습니까? 너나없이 도시로 떠났으니, 이렇게 호젓이 즐길 자연이 있는 거지요. 역설적이지요.”

 

그는 지난 3년간의 임도 여정(旅程)을 자신의 이름을 딴 ‘김현주 교수 트레킹’이라는 블로그에 깨알처럼 상세하게 올렸다. 임도코스는 출발지와 도착지의 대중교통정보가 없으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그는 자신이 다녀온 300여개 임도코스의 대중교통정보와 소요시간, 그리고 코스별로 전망, 지형/풍경/볼거리/다양성, 코스난이도, 휴게시설, 대중교통 접근성, 방문자수(호젓함) 등 6개 평가항목을 정해 종합점수를 매겨 모든 코스를 전국 시군구별로 분류했다.

 

현장 사진과 지도에 코스를 표시하는 건 물론이고 출발지 A지점과 도착지 B지점의 대중교통 시간표를 함께 게재했다. 대중교통편 정보는 그가 임도 코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문이다. 왜냐하면 인적이 드문, 마을과 떨어져 있는 임도의 시작지점과 끝나는 지점에는 마을버스가 닿지 않거나, 오더라도 하루에 3회~4회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도에서 내려오는 도착시간과 버스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어떤 큰일을 당할지 몰랐다. 그 역시 현지의 부정확한 교통정보로 인해 위기를 맞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라는 법이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도 그때마다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벗어나긴 했다. 하지만 버스를 놓쳤을 때마다 놀란 가슴을 수 없이 쓸어 내려야만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출발하기 전에 자신이 걸어야 할 임도와 교통편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임도는 주로, 다움과 카카오맵을 찾아 선정했고, 현지 지도의 축적을 이용해 임도의 길이와 소요시간을 계산했다. 이어 지도에 표시된 버스정류장 사인을 클릭해서 버스 번호가 나오면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버스 시간표를 입수해 자신이 걷는데 걸리는 시간과 임도의 끝 혹은 임도에서 가까운 마을 이름에 도착하는 버스시간을 맞췄다. 그가 그렇게 자세하게 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도보코스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사이트인 「두루누비」 등에 그런 대중교통의 상세한 교통편 정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컨드 하우스, 여행 숙박지로 바뀔 미래의 농어산촌

 

그는 최근 대청호반의 오백리 길의 한 구간을 걷고 우리나라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곳도 교통정보가 없으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서울에서 무궁화열차로 신탄진역으로 갔다. 역 맞은편에서 대청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탔고, 대청호반 오백리 길 비석 앞에서 내렸다. 그곳에서부터 꼬불꼬불 호수 변을 따라 10km를 걸어 냉천이란 곳에서 멈췄다.

 

그곳에서 대전으로 가는, 대중버스가 하루에 2~3회 다닌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행자가 그런 곳의 버스 시간표를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지도에 표시된 버스 정류장 사인을 보고 클릭해서 들어가 버스 시간표를 찾고, 그 시간에 맞춰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할 터이다.

 

 

“임도코스를 개척해 답사하는 동안 인구감소,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농어산촌을 보셨을 텐데 우리나라 농어산촌도 스위스의 산촌같이 달력에 나오는 멋진 곳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뭐, 제가 깊이 연구해 본 것은 아니지만, 한번은 경북 봉화의 한 임도에서 나와 처음 만난 외딴집에서 사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저를 보고 무서워하기는커녕 사람을 오랜만에 본다면서 반가워하는 겁니다. 제가 걷다가 들려본 그런 마을마다 지금처럼 인구감소가 계속될 경우, 어떤 마을이든지 소멸의 과정을 밟게 되겠지만 마을의 소멸로 폐허가 된다는 개념이 아니라, 마을의 성격이 바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을의 성격이 바뀐다? 무슨 뜻이지요?”

 

“아마 수십 년 안에 농어산촌의 시골 마을은 사람들의 세컨드 하우스(second house)가 있는 여가를 즐기는 곳, 여행을 하면서 숙박하는 곳 등, 지금의 주거개념이 아닌 또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곳으로 변모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그럼 농어산촌 마을 소멸이란 농업, 임업의 업종 소멸이라고 보는 겁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마을의 성격이 변하면 농업, 임업의 업종이나 경작 대상도 바뀌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과 유통 시스템에 의한 게 아니라, 이를테면 친환경적인 흙을 살리면서 지속가능한 재생농업, 임업의 업종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미래의 농어산촌, 걸으면 보인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산촌 인구는 140만 명으로 30년 뒤에 절반으로 줄어든다. 산촌(山村)을 보유한 전국 읍면 지역은 466개이고, 이 가운데 78%인 364개 지역이 인구소멸 위험 지역이다. 하지만 경기 양평·가평, 강원 영월·양구, 충북 괴산 등 수도권과 자연경관이 뛰어난 16.5%를 차지하는 77개 지역은 50대 이상의 귀산촌 인구가 유입됨으로써 주민수가 평균 10%이상 늘어났다.

 

 

“저는 국가가 인구감소, 지방소멸에 대응하는 정책도 펼쳐야겠지만, 동시에 도시민들이 임도나 둘레길 등을 걷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농어산촌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직접 눈으로 보고, 주민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농어산촌의 실정을 알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올라 귀농 귀산촌을 할 마음이 생기게 된다고 봅니다. 한두 개 코스가 아니라 적어도 6개월 이상 다니면서 어느 지역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야겠지요. 저 역시 임도를 다니면서 수많은 마을을 보고 지나다보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였습니다.”

 

“혹시 혼자 걷다가 봐두신 산촌이나 농촌 마을이 있습니까?”

 

“저는 다 좋았습니다. 임도 코스에 기존 둘레길, 올레길 등의 일부 코스를 걸어봤지만 마을마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었거든요. 물론 제 느낌에 ‘여긴 아니다’ 싶은 곳도 없진 않았지만 그 또한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테니까, 제가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고즈넉이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 명상(冥想)하면서 임도를 걷다보면, 옛 추억이 떠오르고, 앞날에 내가 뭘 해야 좋을지, 계획이 명징하게 떠오르는 걸 느끼실 겁니다.”

 

미래의 산촌을 이끌어갈 ‘숲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나 ‘산촌청년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활동도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필자는 농어산촌 살리기가 지원정책에 그치지 말고, 임도와 기존의 둘레 길, 유명 코스를 연결한 길을 세계적인 에코워킹코스로 관리하고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찾게 만듦으로써 농어산촌에 대해 고정관념을 바꿔줘야 한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젊은이들이 숲길을 걸으면 힘든 일을 참을 성 있게 해 낼 수 있다는 마음이 우러나오고 농어산촌에 대한 관심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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