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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암 입원보험금 분쟁-⑥] 자의적 ‘의료자문’으로 보험금 깎는 보험사

- 2002년 生保 표준약관 개정, 보험금 청구 간 개인정보 활용 동의 강제돼
- 보험사 보험약관 상 ‘보험금 합의 지급’ 가능하도록 해…‘의료자문’의 근거 마련
- 보험사 입맛에 맞는 ‘자문의’ 선정…원하는 자문 결과 나올 때까지
- 엉터리 ‘의료자문’…심평원 통계로 입원 적정성·한방병원 입원, 양의(洋醫)가 판단
- 보험사의 광범위한 개인정보 활용·의료자문, 불법 연루에 제한해야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다치거나 아파서 병원 진료를 받거나 입원 치료를 받은 후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해 본 경험을 누구나 한 번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각 보험사의 보험금 청구 양식에 관련 정보를 기입하고, 보험사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갖춰 보내면 된다. 그러면 보험사는 그것을 바탕으로 심사를 거친 후 당일 혹은 수일 내 보험금을 지급하는데, 이 과정에서 보험사는 고객에게 ▲개인(신용)정보의 수집·이용에 관한 사항 ▲개인(신용)정보의 조회에 관한 사항 ▲개인(신용)정보의 제공에 관한 사항을 ‘반드시 동의하도록’ 하고 있다. “왜 동의를 해야 하나”하고 물으면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과연 그것뿐일까? 우리가 무심코 체크 표시한 ‘동의함’이 ‘암 입원보험금’ 미지급을 포함한 보험사의 보험금 미지급 혹은 삭감에 악용되고 있었다. 그것은 보험사가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깎거나 지급하지 않기 위한 각종 편법의 시작이었고, 그 끝에는 소위 ‘의료자문’이라는 보험사의 자의적 행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큰 사고나 질병 등 혹시 있을지 모르는 미래의 위험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보험사는 사람들과의 접촉을통해 이같은 위험 대비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보험으로 그 위험에 대비할 것을 권유한다. 보험사의 권유에 따라 사람들은 ‘계약’을 통해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미래의 위험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위협을 보험사에 ‘인계’하고, 보험사는 그것을 ‘인수’한 대가로 매달 보험료를 받는다. 사람들이 보험료를 꼬박꼬박 부담하면서 보험계약을 유지하는 이유는 ‘미래의 위험이 현실화했을 때 보험사가 보험금을 통해 현실화한 위험으로 인해 야기되는 경제적 부담·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 입원보험금’ 미지급 문제에 대한 보험사와 보험이용자들의 갈등을 다룬 일련의 보도를 통해 이같은 믿음은 산산조각났다. 보험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통해 성장해 온 보험사들이 막상 보험금을 지급할 때가 되자 보험금을 깎거나 주지 않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하는가 하면 소송까지 불사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암 등 시급하게 적절한 치료를 꾸준하게 받아야 하는 환자들이었다.

 

앞선 보도에서 밝힌 바대로 보험사는 암에 걸린 보험이용자의 요양병원 입원에 대해 입원의 필요성 및 그 기간의 적정성 등을 입원보험금 지급의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입원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약관상 요양병원 입원이 별도로 분류된 것은 올해부터로, 과거 암보험 약관에는 요양병원 입원에 대한 별도의 보험금 지급 조건이 명시돼 있지 않다. 또한 어디에도 암 환자의 입원 필요성 및 기간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따라서 보험사는 입원보험금을 지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암에 걸린 보험이용자의 요양병원 입원에 대해 “입원의 필요성과 입원 기간이 적절하지 않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해왔다. 보험사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심에는 소위 ‘의료자문’이라는 보험사들의 편법, 보험약관(개별약관)에 의한 자의적 행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보험사들의 ‘의료자문’ 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지만, ‘피보험자에게 이뤄진 의학적 행위가 피보험자의 보험사고를 고려했을 때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보험사가 지정한 제3의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수 있겠다.

 

‘제3의 의사’에게 묻는다는 점에서 얼핏 보면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의사의 고유권한인 진료행위를 다른 의사가 판단하는 것 자체가 권한 침해지만, 보험사가 지정한 ‘제3의 의사’, 소위 ‘자문의’에게 ‘의료자문’이라는 명목으로 던져지는 질문은 의학적 행위의 판단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험사의 행위는 각 보험사가 준용해야 하는 표준약관에 근거하지 않고, 법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험사는 ‘의료자문’을 이라는 편법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을까? 이는 우리가 보험금을 청구하면서 무심코 체크 표시를 하는 ‘동의함’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심코 체크하는 ‘동의함’…내 정보 이용 권한 보험사에 위임하는 셈

 

 

보험금을 직접 청구해 본 사람이라면 보험금 청구 양식에서 ‘개인(신용)정보 수집·이용, 제공, 조회 동의서(이하 동의서)’를 봤을 것이다. 모든 보험사가 보험금 청구 양식에 동의서를 첨부하고, ‘동의함’에 체크 표시를 하게 한다. 심지어 ‘미동의함’에 체크할 수 있는 칸도 없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보험사가 피보험자에게 사실상 ‘무조건 동의’를 요구하는 것인데, 피보험자에게 요구하는 개인(신용)정보의 내용과 목적을 보면 상당히 광범위하다.

 

보험사는 동의서에 ▲개인식별정보 및 계좌정보 ▲보험사고 조사(보험사기 포함) 및 손해사정업무 수행과 관련해 취득한 개인(신용)정보[경찰, 공공기관, 의료기관 등으로부터 본인의 위임을 받아 취득한 각종 조사서, 증명서, 진료기록 등에 포함된 개인(신용)정보 포함] 등 개인(신용)정보의 ‘수집·이용’ 동의를 요구하면서 ▲보험금 지급·심사 및 보험사고 조사(보험사기 조사 포함) ▲보험금 지급 관련 민원처리 및 분쟁 대응 ▲금융거래(보험료 및 보험금 등 출·수납을 위한 금융거래 신청, 자동이체 등 접수) 관련 업무를 위해 쓰겠다고 밝혔고, 개인(신용)정보의 ‘조회’와 관련해서는 ▲보험계약정보 및 보험금 지급 관련 정보(사고정보 포함), 질병 및 상해 관련 정보를 ▲보험금 지급·심사 및 보험사고 조사(보험사기 조사 포함)를 위해 쓰겠다고 명시했다.

 

또한 일련의 개인(신용)정보를 ▲신용정보집중기관 : 한국신용정보원,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등 ▲공공기관 등 : 금융위원회, 국토해양부,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정책보험금융원, 금융감독원, 보험요율산출기관 등 공공기관, 법령상 업무 수행기관(위탁사업자 포함) ▲보험회사 등 :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국내·국외 재보험사, 공제사업자, 체신관서(우체국보험), 금융거래 관련 계좌개설 금융기관, 금융결제원 ▲업무수탁자 등 : 보험금 지급·심사 및 보험사고 조사 등에 필요한 업무를 위탁받은 자(보험사고 조사업체, 손해사정업체, 의료기관, 의사, 변호사, 위탁 콜센터 등)에게 ▲신용정보집중기관 등 : 보험계약 및 보험금 지급 관련 정보의 집중관리 및 활용 등 신용정보집중기관의 업무, 보험계약 관련 업무 지원(보험금 청구서류 접수대행 서비스 등) ▲공공기관 등 : 보험업법 등 법령에 따른 업무수행(위탁업무 포함) ▲보험회사 등 : 보험사고 조사(보험사기 조사 포함) 및 손해사정서비스 ▲ 개인(신용)정보 활용 동의서 등 계약이행에 필요한 업무, 진료비 심사, 의료심사 및 자문 ▲금융거래 업무(보험료 및 보험금 등 출·수납) ▲보험계약 유지·관리(미납 안내 등)를 목적으로 제공하겠다 했다.

 

보험금 청구를 위해 제출하는 각종 서류에 담긴 피보험자의 정보와 심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보험자와 관련된 모든 정보의 수집·이용, 피보험자의 타 보험사 보험정보 조회 그리고 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보험사에 위임하는 데 동의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게 되면 보험금 지급을 위한 심사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동시에 나의 모든 관련 정보가 보험사 및 한국신용정보원 등 신용정보집중기관에 모이게 되고, 이를 다른 보험사들이 볼 수 있게 되며, 심지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제3자에게 제공될 수 있다.

 

여기에서 ‘의료자문’과 관련이 있는 것은 ‘제공’ 부분이다. 보험사는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보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회사가 지정한 ‘자문의’에게 ‘의료자문’을 의뢰할 수 있는 것이다. 보험사가 요구하는 개인(신용)정보의 수집·이용, 조회, 제공에 동의하면 이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보험사는 없다.

 

2002년, ‘보험사고 조사 시’에도 개인정보 활용 동의 의무화

 

보험사가 고객의 보험금 청구 시 동의서를 받아 광범위한 고객의 개인(신용)정보를 수집·이용하고, 조회 및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은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보험금 청구 사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보험자 자신의 개인(신용)정보를 보험사가 활용할 수 있도록 동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2002년 표준약관에 추가됐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보험금 청구 시 고지의무(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 조사에 대한 개인(신용)정보 활용 동의만 의무였다. 고지의무 위반은 보험사기를 의심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은 그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보험 표준약관에 해당 내용이 추가됨으로써 보험사는 보다 넓은 범위에서 고객의 개인(신용)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2002년 6월28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생명보험 표준약관(당시 제29조 보험금 등의 지급, 현 제8조 보험금의 지급절차)을 개정해 ‘계약자, 피보험자 또는 수익자는 제22조(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의 효과, 현 제14조) 및 제1항의 보험금 지급 사유 조사와 관련해 의료기관 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찰서 등 관공서에 대한 회사의 서면에 의한 조사요청에 동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그리고 이를 모든 보험계약에 대해 소급 적용하도록 했다.

 

약 3년 뒤인 2005년 2월15일 금감원은 이 조항을 다시 한번 개정하는데, 개인(신용)정보 활용에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동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고객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사는 보험급 지급지연에 따른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다. 2002년 개정으로 보험사고 조사 때도 개인(신용)정보 활용에 동의하도록 하자 보험사와 고객 간 많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감원의 당시 표준약관 개정 내용이 보험사의 보험약관 내용과 같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의 ‘무배당) 뉴여성시대건강보험 약관(2000년 10월2일~12월31일 판매)’ 제40조 보험금 등의 지급 제2항과 제3항은 2002년 금감원의 생명보험 표준약관 제29조에 신설된 내용과 같다. 즉, 보험사가 표준약관에 근거하지 않은 보험약관 조항에 근거해 개별적으로 해오던 것을 금감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꼴이 된 것이다.

 

또한 개인(신용)정보 활용에 동의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명시하지 않았다. 때문에 고객은 자신의 정보가 보험사고 조사 외에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것을 거부하고 싶어도 그것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는 지 알 수 없고, 혹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해도 보험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동의를 강제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 한 단서 조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는 “신용정보보호법 제16조와 제32조, 신용정보법 시행령 제13조, 개인정보보호법 제16조 등에 따르면 개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개인으로부터 미리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이것을 받아야 하는 주체는 보험사”라며 “타인의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할 때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아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보험사의 의무’를 얘기하는 것이지, 우리가 동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동의서)은 ‘위임 동의서’다. 보험금 지급 사유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만 동의를 하되,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동의할 이유가 없다. 내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데, 왜 남에게 위임을 하느냐”면서 “제공하는 사람(보험사)이 정보 주체한테 동의를 얻어서 제공해야 하는 것이 의무지, 우리가 여기에 동의를 해야만 보험금 청구와 관련해서 보험사고를 조사한다거나 이런 것들과 연계가 돼 있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보험금 청구간 보험사고 조사를 이유로 불필요하게 넓은 범위에서 피보험자의 개인(신용)정보 활용 동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보험사고 조사 외에 동의가 필요한 것은 그 시점에서 동의를 받아야지, 지금처럼 보험금 청구 간 광범위한 이용을 목적으로 동의를 받는 것은 보험이용자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보험약관 상 ‘합의’…의무 다한 피보험자에 손해 요구하는 것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보험약관에 있는 ‘합의’라는 단어다. 삼성생명의 ‘무배당) 뉴여성시대건강보험 약관(2000년 10월2일~12월31일 판매)’ 제40조 제3항을 보면 ‘피보험자가 지정한 의사와 회사가 지정한 의사가 진단 및 진료내용, 입원 기간 등에 대해 합의해 정하는 때에는 그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피보험자의 의사와 회사의 의사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때에는 피보험자와 회사가 동의해 제3의 의사를 정하고 그 제3의 의사의 의견에 따를 수 있다’고 돼 있다.

 

 

피보험자의 의사(주치의)와 보험사가 지정한 의사가 피보험자의 질병과 그에 대한 진료 및 입원 기간 등에 대해 합의하고 그래야 보험금을 지급한다니, 상식적으로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병에 걸렸는데, ‘아, 나는 보험금을 받아야 하니까 보험사가 정하는 의사와 내 주치의가 서로 합의된 치료를 받아야 해’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보험에 가입하면서 약관에 이런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제3의 의사’를 지정해서 의견을 구한다? 결국은 피보험자의 질병 치료가 보험사가 인정하는 수준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료자문’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제3의 의사’가 소위 말하는 ‘자문의’다.

 

 

김 대표는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를 안 했더니 보험금 청구서를 반송하면서 ‘입원 적정성 확인을 위해 현장심사 해당됐으며, 약관에 의해서 입원 치료에 대한 객관적인 입원 적정성 확인을 위해 의료자문 진행 예정이었으나 의료자문에 대한 동의가 되지 않아서 조사 진행이 불가한 상태로 반송 처리됨을 알려드린다’고 문서를 보내왔다. 결국 보험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무조건 동의해야 하는 것”이라며 “보험사는 피보험자가 동의했다고 의료자문을 하는데, 자신의 정보가 그런 식으로 쓰일 것을 알고서 동의한 사람이 과연 있겠나. 피보험자의 동의 목적과 보험사의 목적이 다른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험금 아닌 ‘합의금’ 지급하는 것

 

또한 “‘합의’라는 부분 때문에 보험금을 지급할 때 합의해도 되는 쪽으로 보험사가 해석한다”면서 “금감원 분쟁조정 결과에 대한 보험금이 내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의 100%에 해당된다고 해도 그것은 보험금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합의금’으로 지급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의. 쌍방이 자신의 주장에 대해 서로 양보해 의견 일치를 보는 것이다. 피보험자는 보험계약을 유지하면서 보험료를 꾸준하게 납부하는 등 해야 할 의무를 다했다. 이제는 보험사가 의무를 다할 차례인데, 의무를 다하기는커녕 피보험자에게만 양보를, 사실상 손해 볼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담은 보험약관은 2010년 1월 개정된 생명보험 표준약관에 반영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2010년 개정 당시에는 ‘장해지급률’에 대해서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제3의 의사의 의견에 따를 수 있다고 했었는데, 2013년 12월에는 ▲사망보험금 ▲장해지급률 ▲진단보험금 ▲입원·수술·통원·요양·수발보험금 전체가 합의의 대상에 포함됐다.

 

보험사 입맛에 맞는 ‘자문의’ 선정…피보험자는 볼 수도 없어

 

그렇다면 이 ‘의료자문’은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의료자문’은 보험사의 위탁을 받은 외부 업체가 선정한 ‘자문의’를 통해 이뤄진다.

 

사실상 보험사가 ‘자문의’를 선정하는 것으로, 약관상에는 피보험자와 보험사가 동의해 제3의 의사를 정하도록 했지만, 보험금 청구 시 피보험자는 보험사고 조사업체, 손해사정업체, 의료기관, 의사, 변호사 등 보험금 지급·심사 및 보험사고 조사 등에 필요한 업무를 위탁받은 자에게 자신의 개인(신용)정보를 ‘제공’하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문의’는 피보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피보험자의 상태를 판단하고 의견을 내며, ‘의료자문’ 명목으로 보험사로부터 20~30만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보험사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이렇게 이뤄진 ‘의료자문’ 결과를 피보험자는 절대 볼 수 없고, 누가 ‘의료자문’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자문의’ 정보를 요구하면 보험사는 “해당 의사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며 정보 공개를 거부한다. 피보험자의 정보를 피보험자가 모르는 제3자가 어떻게 판단했는지 정보의 주체가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8월23일 방영된 KBS <추적 60분>에서 삼성생명서비스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의료자문’을 받던 곳에서만 받는다. 결과가 항상 똑같이 나오는 데로만 가는 것이다. 사례가 아무리 여러 가지라도 결과는 하나”라며 “‘의료자문’ 결과를 늘 보험사에 유리하게 적어주는 의사한테만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문 결과를 고객들은 볼 수가 없다. 보험사만 본다”면서 “보험사에서 자문 결과를 보고, 자기들한테 유리하지 않다 싶으면 자문을 다시 받는다, 다른 업체를 통해서. 그 결과가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나왔다, 그러면 그 자문을 선택해서, 이것이 결국 고객들한테 가는 것이다. ‘자문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이렇게 따르십시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보험사의 위탁을 받은 외부 업체가 선정한 ‘자문의’가 진행한 ‘의료자문’을 한 결과는 당연히 입원보험금에 대한 보험사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보험사는 그동안 입원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피보험자의 입원 필요성 및 기간의 적정성 등을 문제 삼으며 피보험자에게 입원보험금 지급 거부나 삭감을 종용해왔다.

 

 

일례로 A손해보험사가 위탁업체를 통해 진행한 ‘의료자문’ 결과를 보면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후 요양병원에 입원한 황 모 씨에 대해 이대목동병원 소속의 자문의는 ‘적정입원기간’을 ‘0일’로 판단했다.

 

 

또 다른 예를 보면 허리 신경통과 척추뼈 및 추간판 장애 진단을 받은 임 모 씨에 대한 ‘의료자문’은 임 씨가 입원한 병원한 한방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료원 신경외과에 소속된 의사에 의해 이뤄졌다. 더구나 해당 자문의에게 임 씨의 진단 및 치료, 입원에 대한 의견을 구한다면서 한 질문은 의학적 판단이 아닌 ‘약관’과 ‘판례’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보험사 단독으로 선정한 자문의에 의해 이뤄진 ‘의료자문’이 과연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김 대표는 “법원 소송을 통해서 확보한 진료기록 감정서를 보니까 질문사항이 있었는데, ‘약관과 판례가 인정하는 입원에 해당하는 입원이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며 “의사가 과연 보험약관과 보험판례의 전문가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보험사에서 몇 십만원 받고서 약관이나 판례를 공부하겠나. 결국은 자문 대상이 틀렸고, 입원 필요성과 기간 적정성은 판단 거리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 통계를 ‘적정입원기간’ 기준으로 삼아

 

관련해서 이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적정입원기간’을 판단하는 것일까? 질병 치료를 위한 입원에 과연 ‘적정입원기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보험사기’ 수사와 관련해 ‘의료자문’ 위탁업체 대표 김 모 씨가 작성한 진술서를 보면 “‘진료기록부 검토사항’으로는 내용 전체를 요약한 후 진료기록부 요약 및 검토내용과 심사평가원에서 매년 질병 소분류별 요양급여실적을 진료건수 대비 입원일수를 산정해 발표하는데, 이를 근거로 질병별 입원일수를 작성했다”라고 적힌 부분이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매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내놓는 ‘진료비 통계지표’다. 이는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질병별로 1년 동안 몇 명의 사람들이 질병에 걸려 며칠 입원했고, 지출된 요양급여가 얼마인지 등을 집계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질병 건당 입원일수는 보통 3~4일 미만이고, 입원일수가 20일 이상인 질병 건이 많지 않다. 이를 근거로 피보험자 입원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고, ‘적정입원기간’을 판단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적정입원기간’을 판단하는 적정한 기준이 될 수 있을까?

 

 

김미숙 대표는 “‘적정입원기간’을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보험계약을 하고 보험료를 낼 때 그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며 “입원보험금은 120일 한도가 되면 180일의 면책 기간이 지난 뒤 같은 병명으로 입원해도 다시 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피보험자는 1년에 최대 180일 입원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1년에 180일 입원해야 내가 보험료를 낸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1년에 180일씩 입원 안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사는 ‘1년 동안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20일도 입원을 안 하는데, 왜 당신은 100일씩 하느냐’고 따진다. 그러면 보험사는 평균적으로 보험료를 받았나?”라면서 “게다가 입원보험금은 4일 이상 입원할 때부터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미만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사실상(보험료를) 거저먹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해마다 입원한 것도 아니고, 수십년 보험을 유지하다가 아주 낮은 확률에 걸려서 1~2년 정도 120일씩 입원했다고 치자. 왜 그것은 문제고, 수십년씩 입원 안 하고 보험료 꼬박꼬박 내야 했던 조건은 왜 문제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형병원에서 암 환자 수술하고도 4일 정도만 입원시키고 퇴원하도록 하는 것은 병원 수익 때문에 더 이상 입원시킬 수 없다는 의미지, 다른 병원에 입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며 “퇴원 후 지속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곳이 필요한데, 암 환자 특화 치료 시스템 자체가 없다. 정부 차원에서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보험사와 보조 맞춰서 요양병원 입원 문제만 갖고 이야기를 한다”고 비판했다.

 

피보험자는 ‘보험사기’로 몰려 소송 걸리기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의료자문’ 결과 때문에 피보험자는 보험사로부터 ‘보험사기’로 소송에 걸리기도 한다.

 

C형 간염으로 2007년 12월7일부터 2010년 6월15일까지 326일 동안 입원해 총 1억6,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야 했던 B씨는 보험사로부터 ‘보험사기’ 혐의로 소송에 걸렸다. 당시 해당 보험사가 ‘보험사기’의 증거로 제출한 것은 ‘의료자문’ 결과. 그에 따르면 B씨에 대해 ‘의료자문’을 진행한 자문의 H씨는 B씨의 입원기간 중 87일만을 ‘적정입원일수’로 인정하고 나머지 239일(73%)는 통원치료가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이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는데, 결국 B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대표는 “자문의가 누군지 알게 돼서 그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환자와 함께 찾아가 ‘선생님이 인정하지 않은 그 기간에 대해서 그러면 보험사기를 쳤다는 얘기냐?’고 묻자 ‘보험사기는 아니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답했다. 결국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의료자문’ 없애고, 개인(신용)정보 동의 선택권 보장해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지난 7월19일 규제 완화 차원에서 ‘보험업감독규정’을 개정, ‘의료자문 설명의무 강화’ 조항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보험사가 보험금 심사·지급단계에서 의료자문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험금을 감액 또는 부지급하는 경우 소비자의 알 권리 보호 및 추후 분쟁 등에 대한 대응력 확보를 위해 관련사항을 설명토록 의무화”한다고 신설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과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의료자문’에 대한 보험사의 설명 의무 및 ‘의료자문’간 피보험자 면담을 의무화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피보험자에게 피해를 주고, 보험사의 이익을 위해 악용되는 ‘의료자문’은 없애거나 범죄와 관련된 경우 등 제한적 조건에서만 허용된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는 “의료자문이라는 개념, 기준이 없다. 기록을 보고서 의견을 주는 것이 의료자문인가?”라면서 “의사의 치료행위가 이미 종료된 상황에서 그 내용을 담은 서류를 ‘제3의 의사’에게 전달했다고 하는데, 모든 서류를 전달했는지, 일부만 했는지 확인도 안 되고, 그냥 말로만 ‘자료에 근거해서 결과가 이렇다’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을 ‘의료자문’했다고 할 수 있나”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사가 설명을 안 했어도 설명했다고 명시된 문서를 만들어 피보험자 서명을 받으면 그 자체로 ‘동의’한 것이 돼 버린다”면서 “내 권리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그 서명 하나로 내 권리가 포기되는 것처럼 의료자문 설명의무에 대한 부분도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절대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험금 지급 사유 조사 등에 개인(신용)정보 활용 동의가 강제됐다고 해도 그것은 불법과 연루된 사건에 제한돼야 하는 것이지, 정상적인 청구를 한 모든 계약에 대해서 자시들이 인정하는 조사 전부를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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