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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수 이효정과 김혜미가 부르는 ‘엄마와 딸’

"꼭 잡은 두 손 놓지 않을래요"


<M이코노미 김소영 기자>얼마 전 두 모녀가 손을 꼭 잡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다가 가슴이 찡해졌다. 제목이 ‘엄마와 딸’이었는데 일상적인 대화에다 곡을 붙여서 경쾌하게 부르는 모녀의 모습에서 잠시나마 ‘엄마’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엄마와 딸’을 노래하는 가수 이효정과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딸 김혜미 씨를 만났다.


모녀를 만난 건 지난 8월 중순이었다. 평범한 옷차림에 튀는 모습이라면 머리에 쓴 밀짚모자라고 해야 할까? 딸 혜미 씨의 머리를 만지며 “이 애 머리색이 이래요”라며 웃는 이효정 씨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엄마와 딸.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이 글자에 대해 가수 이효정 씨는 “가슴이 시리도 록 아픈 단어가 엄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27년 동안 치매 걸린 엄마를 모셨거든요. 지금은 많이 밝아졌지만 엄마를 보내드린 후 정말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엄마라는 말 앞에서 이효정 씨는 잠시 말문을 멈췄다. 6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난 이효정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MBC 창작가요제에 출전해 ‘우리 춤 우리가락’이란 노래로 영예의 금상을 수상한 실력파다. 이후 1987년에는 KBS ‘쇼 스타’에 도전해 혜은이의 ‘영원히 당신만을’ 을 불러 최우수상도 받 았다. 실력을 알아본 조운파 작곡가의 곡을 받아 1994년 ‘새벽달’ ‘바람 부는 세상’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효정 씨는 그러나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1997년 발표한 ‘우리 어머니’란 노래로 이효정 씨는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로 이름을 알린다. 이 노래는 치매를 앓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담은 곡으로 자신이 직접 가사를 썼다.


 “제 위로 오빠가 넷인데 큰오빠와 둘째오빠가 이상하게도 27살만 되면 동일한 병을 앓았어요. 백방으로 처방을 했지만 결국 두 오빠는 돌아가셨죠. 그 일로 엄마가 정신줄을 놓으셨어요. 그러다 예순이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치매를 앓고 말았죠.”  그때는 너무 어린 나이라 엄마의 이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이효정 씨는 결혼해서 자식을 키우면서 엄마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가족 반대 무릅쓰고 결혼


이효정 씨에게 큐피트 화살을 쏜 남자는 제일교포(남편)였다. 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다 보니 한국물정에는 둔했지만 그를 향한 사랑만큼은 강렬했다. 가족들의 반대는 아주 강했다. 당시만 해도 제일교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터라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와 어떻게 결혼을 하냐며 가족 모두가 결사코 반대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걸 본 가족들은 정 결혼하고 싶다면 집을 나가라며 심지어 선전포고까지 했다. 이미 사랑의 화살에 눈이 먼 이효정 씨는 가족대신 남편을 택했다. 그런 이효정 씨에게 시아버지의 사랑은 지극했다.


 “아무 것도 필요 없으니 결혼식만 올려라.”


이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시작한 이효정의 결혼생활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 친정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한 것. 임신 초기인 이효정 씨는 낮에는 시아버지를 챙겨드리고 저녁에는 병원에 가서 친정엄마의 병간호를 도왔다. 이런 이효정 씨를 지켜본 시아버지가 ‘사위도 자식이니 친정어머님을 직접 모시라’며 46평짜리 큰 집을 사주셨다. 그렇게 친정엄마와 이효정 씨의 자연스런 동거는 시작됐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치매에 걸린 친정엄마를 다른 자식들 제쳐두고 막내딸이 모시는 것에 남편의 불만이 컸고 결국 부부갈등으로 이어졌다. “남편 모르게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결혼 초기인데 신혼이고 뭐고 없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MBC 주부가요 열창에 도전 


그 무렵 TV에서는 일반 주부들이 출연하는 ‘주부 가요열창’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어느 정도 노래실력이 있으면 너도 나도 출연신청을 했다. 당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효정 씨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출연신청을 했다. “친구들은 모두 탈락하고 저만 합격을 했는데 연달아 3연승을 하면서 하와이 티켓까지 따냈죠. 그때 남진 선배님의 빈잔, 태진아 선배님의 옥경이, 주병선 선배님의 칠갑산 등을 작사하신 조은파 선생님께서 주부가요열창에서 1등을 한 사람들을 모아 음반을 냈어요. 한 번은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노래 부를 때 꺾는 게 남다르다면서 솔로 음반을 내보라고 하시면서 곡도 하나를 주시더라고요. 남편은 반대했죠. 못하게 하니까 더 오기가 나더라고요. 맘대로 하라면서 결국 음반을 냈어요. 음반 때문에 큰 사기도 당했지만.(웃음)”


큰 경험을 한 후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 이효정 씨의 생활은 치매에 걸린 엄마와 하루를 보내는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간호지 치매 걸린 엄마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거죠. 오죽하면 간병을 도와주시던 할머니께서 늘 혀를 끌끌 차셨어요. 멀쩡한 오빠 둘 두고 고생 한다고. 그럴 때면 이불 뒤집어쓰고 한 없이 울었죠.” 지루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그런 생활이 지속됐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한 심경을 이효정 씨는 노래가사로 담아보기로 했다. “언젠가는 저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구나. 서글펐죠. 그걸 생각 하면서 가사를 썼어요.” 이효정 씨가 쓴 가사에다 유명한 작곡가가 곡을 붙인 노래가 ‘우리 어머니’라는 곡이다. 긴 머리 땋아들어 은비녀 꽂으시고 / 옥색치마 차려 입고 사뿐사뿐 걸으시면 / 천사처럼 고왔던 우리 어머니 / 여섯 남매 배곯을까 치마끈 졸라매고 / 가시밭길 헤쳐 가며 살아 오셨네.


이 노래는 가수 이효정 씨를 한순간에 정상에 올려 놓은 대표곡이다. “이 노래가 발표되고 나서 난리가 났어요. 음반 나온 날이 5월8일이었는데 KBS 9시 뉴스에서 다뤄질 정도였으니까요. 뉴스가 나간 후 전국에서 엽서가 산더미처럼 밀려오고 이 노래를 듣고 싶다는 시청 자들이 쇄도했어요. 지금은 대사를 뺐는데 자나 깨나 오직 자식 걱정 / 눈물과 한숨으로 한평생 살아 오신 우리 어머니 / 그런 어머니가 치매라니요~ 이런 내용이 나와요. 이걸 듣고 어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했던 여성들의 한이 되살아나는 거죠. 제가 노래를 부르면  울음바다가 됐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치매부모님을 버리는 매정한 자식들에 대한 뉴스가 많이 나올 때였는데 치매 걸린 엄마를 직접 모시고 살면서 그 사연을 노래한다니까 시청자들의 반응이 굉장했죠.”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모든 방송국 에서 방송섭외가 들어오고 ‘라디오 초대석’과 KBS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 ‘인간극장’ 등의 프로그램에서는 이효정 씨를 주인공으로 다뤘다. “처음에는 방송출연을 안 하려고 했었죠. 방송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치매 걸린 엄마를 방송에 내보낸다는 게 너무 죄스럽잖아요. 6개월 간 끈질기게 설득해서 결국 방송에 나갔는데 시청률이 대단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어딜 가면 그 방송을 보셨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만큼 대단 했죠.”


노래마다 사연 담아 불러

 
가수 이효정. 그의 노래는 하나같이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친정엄마와의 삶을 담은 노래 ‘아~어머니’ 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엄마를 그리는 노래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엄마를 떠올린다는 이효정 씨는 엄마의 얼굴은 똑같은데 정신이 나가 두 엄마가 된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라 엄마의 치매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이효정은 ‘아~어머니’란 노래를 부를 때 노래 속에서 엄마를 만난다고 했다.


자신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를 부르러 가던 날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하고 울먹이며 썼다는 ‘미안해 아 들딸들아’이란 노래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노래에 곡을 붙인 이는 다름 아닌 딸 혜미 씨다.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출신 인디록밴드 24Hours 멤버인 혜미 씨는 “처음에는 싫다면서 짜증을 냈는데 외할머니란 단어만 들으면 흔들렸다”면서 “트로트를 하기 싫지만 엄마가 너무 설득해서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래 ‘산동애가’는 여순사건(1948년) 때 오빠를 대신해 처형장으로 가던 백부전이 자신의 처리를 비관하며 처형되기 직전 지은 시를 작곡자 김상길 씨가 발췌해 음반으로 제작한 곡인데 이효정 씨가 불렀다.


“여러 가수들 중에서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저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아마 한을 가장 잘 뿜어낼 수 있는 가수가 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웃음).” 가수 이효정 씨 노래에는 유난히도 어머니란 글자가 많다. 12개 곡 중에 7~8개가 모두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담겼다. 반면에 사랑이란 글자는 찾아볼 수 가 없다. 그 이유를 묻자 “애틋하게 사랑한 남자가 없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죽하면 작곡가가 ‘내 인생에 마지막 남자’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써보라 면서 엄마를 연인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을까.


모녀가 손을 꼭 잡고 부르는 ‘엄마와 딸


최근 딸의 손을 꼭 잡고 부르는 ‘엄마와 딸’ 역시 이 효정 씨가 중환자실에 계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쓴 곡이다.

“그때 제가 심한 우울증에 걸렸었어요. 무슨 일 낼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알잖아요. 앉아 있으면 불안해 서 누군가와 통화를 해야 하고 신경안정제를 먹어 야 하는 그런 증상이요. 아픈 엄마를 보내야 한다 는 게 도저히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그때 인간극 장 재방송이 나왔는데 그걸 보면서 엄마를 편안히 보내드리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엄마와 제가 했던 대화를 노래가사로 쓴 것이죠. 아장아장 걸음마를 걷던 애가 벌써 이렇게 컸으니 / 세월 참 빠르구나 빠르기도 하구나 / 고마워요 고마워요 엄마 / 감사해요 엄마 / 어떤 말로 이 마음을 전 할까 요 / 어떤 말로 딸의 마음 전할까요. 내입을 통해서 엄마가 말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제가 거기에 취하 는 거고요.”


딸과 둘이서 이 노래를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는 이효정 씨는 음악인의 길을 가고 있는 딸에게 노 래 작곡을 부탁한 것을 계기로 함께 노래까지 부르 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같이 노 래 부르자고 했을 때 “트로트는 쪽팔려서 안 한다” 고 했던 딸 김혜미 씨는 어느새 트로트 가수가 되 어 엄마를 이해하는 딸이 되어 있었다. ‘엄마와 딸’ 이라는 노래 속에는 두 엄마와 두 딸이 있다. 1호 엄 마는 친정엄마이고 2호 엄마는 이효정 씨다. 딸 1호 역시 이효정 씨고 2호는 딸 혜미 씨다. 엄마하고 잡 았던 손이 너무 허전해서 딸의 손을 잡았다는 이효 정 씨는 딸의 손을 언제까지든 놓지 않을 거라며 꼭 쥐었다. 




인디 록 밴드에서 트로트 가수로


인디록밴드, 그러나 지금은 트로트 가요를 부르는 딸 혜미 씨. 소감을 말해 달라는 요청에 혜미 씨는 “지금은 재미있다”고 말했다. 어릴 적 음악, 미술, 영 어학원 같은 곳을 보내서 흥미를 갖게 했던 조금은 극성스러운 엄마 덕분에 악기란 악기는 다 배울 수 있었다는 혜미 씨는 “만약에 그렇게 해주지 않았더 라면 불량학생처럼 술도 먹고 삐뚤어졌을 것”이라 며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악기 중에서도 기타를 배운게 최고의 기쁨이라고 말한 혜미 씨는 “대학 갈 나이가 됐을 때 어떻게 대학에 갈까 하는 게 가 장 큰 고민이었지만, 기타를 열심히 쳐서 학교에 들어갔고, 이후 음악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인간극장에 나올 때 저희를 주목해 주신 분들께 도 뭔가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외할머니도 생각나서 트로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작곡을 하다보니깐 재미도 느끼고 어느새 집중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싫다고 하면서도 정신차려 보니깐 제가 엄마랑 손잡고 가요 무대 위에 서 있는 거예요. 심지어 노래 부를 때 울고 그랬어요. 그런 저를 보고 이 이상한 감동은 뭐지? 너무 웃겼죠.(웃 음)”


가장 힘든 부분이 ‘꺾는 창법’이라고 말한 혜미 씨 는 “그럼에도 여전히 좋아하는 음악은 록인 것 같 다”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하면서 좋은 점을 묻는 질문에 “엄마와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교감처럼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면서 “음악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그런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홍대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앨범도 꾸준히 내고 있다는 혜미 씨는 “엄마와 함 께 트로트도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모녀는 현재 트로트 메들리 가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긴 시간동안 이어진 인터뷰 중간 중간 모녀는 두 손 을 꼭 잡고 다시 헤어지지 않겠다는 연인처럼 마주 보며 웃었다. 


엄마를 떠나보낸 후 엄마를 잊기 위해 온 몸에 뜸을 떴다는 그녀의 온 몸엔 여전히 뜸 자국이 선명했다. 뜸 자국이 사라지게 되면 엄마의 생각도 엷어지지 않겠냐며 웃는 이효정 씨의 눈에는 금새 이슬이 맺혔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 쳐 버리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지혜와 열정을 꺾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을 얻는 대신 종종 자신의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리 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보다는 어머니의 삶 속 깊숙한 곳에서 긴 세월을 보내온 한 여인은 이제 어머니란 이름으로 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한 다. 이 두 손을 절대 놓지 않을 거라고. 엄마와 딸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아름다운 동행 길이 행복한 이야기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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