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중국의 AI스타트업이 딥시크 R-1 앱으로 미 국의 AI 아성에 한 방 먹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 국 빅테크 기업처럼 어마어마한 돈을 투입하고 고사양의 GPU를 가지지 않고도 저비용-고성능의 앱을 만들었다는 데에 세계가 놀랐다. AI 경쟁이 미-중 간의 치열해지고 있 는 배경에는 패권 의식, 즉 첨단기술을 독점하겠다는 욕망 이 깔려 있다. 미국을 바짝 쫓아가는 중국도 독점욕에선 미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의 AI 전략은 자국의 AI 파워를 압도적인 우위로 가 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픈AI 샘 올트먼 CEO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대표, 오라클의 랠리 엘리슨 의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한 야심 찬 스타게이트 프 로젝트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시진핑 주석도 딥스크 성공에 고무된 듯 딥시크의 량원펑 대표 등이 참석한 민간기업 좌담회에서 AI 경쟁에서 장기 적으로 동풍이 우세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줬다고 인민일보가 2월 21일 보도했다.
AI 기술과 발전은 결코 미국과 중국의 독과점은 안된다. AI는 핵무기가 아니다. AI의 선용은 인류 발전에 기여할 것이고 악용은 끔찍한 세상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강대 국들은 이를 무기화해서는 안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의 AI 기술과 기업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 동맹국인 미국 의 테크 기업들과 협력은 하되, 독자 기술과 경영권 확보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 한국의 AI 전략은 민주화, 다양화, 공정성, 인류 공동 번영의 프레임으로
국가 인공지능위원회는 지난 2월 20일 최상목 대통령권한 대행이 참석한 가운데 제3차 국가 인공지능위원회를 개최 했다. 이 자리에는 정부와 민간위원, 네어버 대표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최상목 대행은 AI 3대 강국 도약을 강조하 면서 정부의 집중 지원을 약속했다.
이날 발표한 정부 대책은 고성능 GPU 1만 8,000장을 확보 하고 차세대 AI 모델을 개발하고 인재 양성과 유치에 힘을 쏟겠다는 내용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의 발표가 미덥 지 못하고 방향성과 비전이 잘 안 보인다.
한국은 한정된 자원과 인재를 가지고 있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인 목표를 정해야 한다. 공공데이터와 스타트업 지원도 무슨 방향성과 목표가 있어야지 그냥 미국과 중국 수준을 목표로 부지런히 쫓아가겠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 다. 너무 물 탄 것 같이 미적지근하다.
글로벌 톱 수준의 대형언어모델(LLM)을 개발하겠다고 하는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는 미국과 중국의 언어 모델을 따라잡겠다는 것인지 그 성격과 목표가 모호한 것 같다. 대형언어모델은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계속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텐데, 주인이 있 는 민간업체의 것도 아니고 국가기관이 그것을 할 수 있을 까? 차세대 AI 모델이라고 해도 미국과 중국이 안 하는 것, 3위권의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이 안 하는 모델을 개 발해야 한다.
구체안은 없고 온통 자금 지원 얘기밖에 없다. 첨단기술 개발에 돈은 필수지만 돈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기술개발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성과 비전이다. 그것이 정해지 면 꾸준히 노력을 집중하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다는 믿 음이 필요하다. 한국의 조선과 반도체, 배터리가 돈만으로 세상 정상급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민간위원들도 다수 참여한 국가 인공지능위원회의 발표 내용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각종 세제 지원과 편드 조성은 기본일 뿐이다. 절실한 마음도 안 보이고 구체적이지도 않 은 내용이다.
혁신적 AI 서비스를 육성한다는 계획도 가능한 모든 분야 를 대상으로 ‘물타기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분히 가 능성 있는 것부터 선택과 집중을 하고, 기업들끼리 경쟁을 시켜서 잘하는 기업과 성과를 내는 기업에 파격적인 인 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권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 대통령과 관료들이 성공했던 방식이다. 선배 들이 했던 방식을 모범 삼아 추진할 필요가 있다.
AI 붐에 편승해 신청하는 대로 조금씩 나눠주는 식은 예 산만 낭비하고 효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이든지 경쟁을 시켜야 한다고 본다. 한국인은 경쟁시키면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하는 장점이 있다. 한국인은 스포츠든 기 술 경진 대회든 국제대회에 나가면 항상 최고의 능력을 보 여주는 우리의 기질과 잠재력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네이버가 추진하는 소버린 AI 전략은 매우 의미 있는 방향으로 보인다. 소버린(Sovereign, 국가 주권) AI는 각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해 그 국가나 지역의 제도, 문화, 역사, 가치관을 정확하게 이해 하는 AI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체제를 말한다.
미국과 중 국의 생성형 AI는 범용성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소버린 AI 는 각 나라의 고유한 언어와 역사, 문화에 특화된 AI다. 네 이버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대규모 언어모델인 하이퍼클로 바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사우디의 아랍어 기반 소버린 AI를 개발 중이다.
네이버는 사우디처럼 자국에 적합한 AI 모델을 개발하고 자 하는 국가들에 소버린 AI 개발을 구축해 주는 비즈니 스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의 소버린 전략은 우리나라의 AI 발전 전략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한국이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방식 으로 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본다.
네이버 등 우리 대기업들이 이미 개발해 놓은 대형언어모 델이 있는데, 또 국가에서 대형언어모델을 개발해야 할 필 요성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와 같은 범용 AI보다는 특화된 혁신 AI 서비스를 개발해 전 세계로 서비스 수출 을 한다든가, 우리나라의 강점인 제조업에서 활용될 수 있 는 제조 AI를 개발하는 쪽으로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인 듯하다.
오픈AI의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2년이 막 넘어선 시점에 중국의 저비용 딥시크가 나왔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초 기 선도기업들의 독과점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양화 단계 로 진화하는 것 같다. MS가 GPU와 데이터센터 등에 대한 과잉투자를 자성하고 AI 투자를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과 중국 기술만 보면 더 큰 그림을 놓칠지도
한국은 타성적으로 그저 미국 기술만 쳐다보는 것 같다. 딥시크와 같은 중국 기업들이 치고 나오면 중국 쪽을 잠시 둘러보고 감탄하다가 다시 미국 쳐다보기에 열중한다.
그러나 AI는 미국과 중국만 하는 게 아니다. 유럽과 일본, 중동 부국, 중남미 국가들도 열심히 AI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 자본과 기술로 앞서가는 것은 맞지만 다른 국가들과 기술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AI를 포함해 첨단기술은 초기 독과점 단계를 지나 다양화 단계로 진입하고 물리적 제품으로 나타나면 개성화, 차별 화가 일어난다. 이 단계부터 기술력보다는 디자인, 품질 유지, 혁신적 요소, 고객 만족 등 소소한 요소가 중요해지고 이에 따라 다종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기업들로 분화된다.
다양화되고 물리적 제품을 생산하는 시대로 접어들면 기술력이 압도적이라고 해도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잘하리 란 보장이 없다. 오히려 강소국의 기업들이 더 잘할 것이고 문화적 차이를 반영한 제품이 해당 나라에서 유리할 것이다.
한국은 지금부터 특화 전략에 주력하고 우리의 강점인 품질 유지와 창조적 혁신, 고객 만족 등에 최선의 노력을 기 울일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정부는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를 자국에 옮겨오기 를 바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반도체 공 장을 세울 수는 있지만 초미세공정을 유지하고 업그레이 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도체 공정을 잘할 수 있었 다면 인텔이 벌써 해냈을 것으로 본다. 인텔은 점점 초미세 화되는 공정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도 대 만 TSMC에 밀리고 있는데, 미국 반도체 공장이 계속 대 규모 투자를 하면서 미세공정을 따라갈 수 있을까? 미국 의 기업 환경은 금방 수익 실적을 내지 못하면 자금을 구할 수 없다.

◇트럼프, 관세정책으로 제조업 부흥 꾀하지만 쉽지 않을 것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다목적인 것 같다. 무역적자도 개선하고 외국에 나가 있는 미국기업들을 자국으로 이 전하도록 하고, 외국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하고, 관세수입으로 재정적자도 메우자는 목적이다. 이런 트럼 프의 계획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말한 대로 제조업은 이제 미국 국내에서 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제조업의 기술자와 기능인력이 부족하다. 필요 한 기술자와 기능자들을 길러내려면 지금부터 10년간은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일관된 인센티브로 기술과 기능훈 련을 시켜야 한다. 제조업은 대학의 석·박사들로는 턱도 없 다. 애플이 제조 전문 외주사인 폭스콘을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 제조시켜도 마땅한 인력을 찾지 못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관세정책으로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나 물가 인상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관세 폭탄이 터지지 도 않은데 벌써부터 미국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소비도 위축돼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은 트럼프의 관세 폭풍에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폭풍이 강할수록 폭풍이 부는 시간은 짧다.
한국은 AI와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전략에서 너무 서두르지 말고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트럼프 이후를 대비하는 긴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