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신안군은 대단히 의미 있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내용인즉, 2024년 12월 31일 ㈜루트에너지, 신안우이해상풍력㈜과 1000억 원 규모 해상풍력 신안군민펀드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해상 풍력 발전에 주민들이 펀드를 조성해 참여하는 것은 전국 최초의 일이다.한화오션의 특수목적법인(SPC)으로 설립된 신안우이해상풍력은 신안 해역에 국내 최대규모인 390MW(15MW× 26기)급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안군은 "지역 주민, 송·변전설비 인근 주민, 지역 금융권 등이 해당 발전사업에 직접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고 주민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 최초 1000억 원 규모의 해상풍력 군민펀드를 조성하고자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해상풍력 군민펀드를 통해 지역 경제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 풍력 발전 업체들 입장에선 부럽기 그지 없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지역이 주민 수용성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모 지역 풍력 발전사 관계자는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 발전소 건설에 대단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조건적인 반대에 부딪혀 사업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며 "신안군의 성공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민 찬성은 물론 참여까지 이끌며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부럽다. 부디 신안군의 성공이 좋은 사례가 돼 다른 지역에서도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신안군은 어떻게 풍력 발전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까지 이끌 수 있게 된 것일까. 신안군 역시 처음부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고, 지자체가 적극 나서 주민들을 설득하면서 협조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 적지 않은 보상책에도 협상 쉽지 않아
포털 사이트에 풍력 발전을 치면 각 지역별로 일어나고 있는 반대 시위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해상 풍력 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 2021년부터 각종 시위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통영 앞바다에 풍력 발전 시설이 들어선다고 하자 강력한 주민 반발이 일어나며 어장을 잃을 수 없다는 성난 목소리가 해상을 뒤덮었다.
당시 시위는 지상파 뉴스에 소개가 될 정도로 격렬하고 절박하게 진행 됐다. 아무리 해상 풍력이 어획량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설득해도 주민들의 성난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적지 않은 보상책을 내 놓았지만 협상은 진통을 겪었다.
부산 청사포에선 풍력 발전에 찬성하는 주민들의 1인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찬성 목소리는 금세 묻히고 말았다. 2022년엔 여수 해상 풍력 발전이 주민 반대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여수 지역 어민들 역시 어장을 지키겠다면 해상 시위를 이어갔다. 여수시 국동항 인근 해상에서 어선 600여척이 해상퍼레이드 시위를 펼쳤다. 어민과 어민단체는 여수해역에서 해상풍력 추진을 결사 반대한다는 내용의 총궐기대회를 가진뒤 어선을 몰고 해상으로 집결했다.
남해안 어민들도 반대 시위를 벌였다. 남해안 어민들을 중심으로 한 전국 어업인들은 성명서를 통해 해상풍력사업 전면 재검토와 해상풍력 추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 중단, 헌법이 보장하는 수산업 보호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황금어장으로 손꼽히는 욕지도 앞바다에서만 3건의 해상풍력발전소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어민들은 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되면 조업구역이 축소되고 풍력발전기 소음 등으로 황금어장이 황폐화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최근에는 영광 해상 풍력 발전도 거센 반발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그 어느 곳의 해상 풍력 발전도 주민들의 환영 속에 진행된 곳이 없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해상 풍력산업 업계에선 "주민 수용성이 사업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하소연한다. 지자체의 도움이 없으면 해결이 어려운데 지자체들은 손을 놓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관이 합동으로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자치단체의 도움을 거의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안군의 성공 체험
신안군 관계자는 타 지역과 다르게 신안에선 풍력 발전이 환영 받는 이유를 "재생에너지에 대한 성공 체험이 주민들의 수용성을 끌어 올리는데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그가 말한 성공 체험이란 지난 2021년 처음 도입 된 '햇빛 연금'을 말한다.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추며 주민들에게 수익의 일부를 돌려 주겠다고 약속했고 매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익이 발생하고 있고 그 이익 중 일부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가며 재생 에너지에 대한 주민들의 의식을 끌어 올리는데 큰 힘이 됐다는 것이다.
2021년 4월 26일 지역주민들에게 햇빛 연금 지급을 시작한 이후 2023년 10월 26일에 신재생에너지 협동조합에서 지급하게 되면서 지난 2002년 3년 만에 햇빛 연금 100억을 돌파했다. 신안군은 2018년 10월 지역주민과 태양광 사업자가 신재생 에너지 개발이익을 공유하는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했다.
태양광 개발이익을 사업자가 모두 갖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나누는 것이 조례의 핵심이다. 이 조례를 통해 신재생 에너지 보급·확대를 위한 주민 수용성을 확보했고 지역주민들의 재생 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
처음으로 햇빛 연금을 지급한 지역은 안좌, 자라, 지도, 사옥도, 임자도 등 다섯 군데로 총 1만 775가구(3만8126명)이 혜택을 받았고 비금면과 신의면, 증도면이 포함되며 2024년 이후에는 햇빛 연금 지급대상자가 전 군민의 44%로 늘어 났다. 햇빛 연금 지급액은 2021년 첫 지급 시 17억 원이었고 2022년 36억 원, 2023년 3분기까지 47억 원으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젠 햇빛 연금 100억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도 세워졌다.
신안군 관계자는 "처음엔 주민들이 반신반의 했다. 태양광 업체가 처음에는 조금 지원을 하는 척 하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모른 척 할 것이란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 그러나 햇빛 연금을 통해 꾸준히 수익이 창출 되면서 여론이 대단히 호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햇빛 연금의 성공은 이후 바람 연금에 대한 믿음으로 전달 됐다"고 설명했다.
◇햇빛, 바람 연금이 만든 작은 기적
신안군은 지난 2022년 10월 19일 시행에 들어간 개정된 '신안군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공유 등에 관한 조례'를 통해 햇빛 아동수당 지급 근거를 마련했다. 이후 신재생 에너지 협동조합연합에서 2023년 5월에 신안군 내 18세 미만 아이들 약 2000명에게 1인당 40만 원을 지급했으며 2024년에는 1인당 80만 원씩 지급이 이뤄졌다 그 이후에는 월 10만 원씩 총 120만 원이 지급되고 있다.
이 기금은 작은 기적으로 돌아 왔다. 신안군에 다시 아이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신안군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정책 시행 초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주민들께서 군의 정책을 믿고 협조해 주셔서 지금의 햇빛 연금이 실현될 수 있었다. 2030년까지 8.2GW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면 연간 3000억 원의 주민소득이 생기고 4만 군민 1인당 연간 600만 원의 바람 연금을 지급할 계획으로 군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라고 말했다.
신안군의 노력은 인구 증가로도 이어졌다. 신안군은 이전 년도에 비해 인구 200여 명이 증가했다. 도서 지역인 관계로 고령 인구가 많고 연간 1천 여명이 자연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여 명의 인구 증가는 1천 여 명의 인구 증가와 맞먹는다. 인구 절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폐교 위기의 학교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인구 290여 명의 작은섬 안좌면 자라도에 위치한 자라분교는 2023년 3월 학생수 0명의 폐교위기에서 폐교 이행기한이 연장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 났다. 신안군에서 추진해온 신재생 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에 따른 햇빛 연금, 바람 연금 혜택 때문에 주민등록상 15명의 취학 가능 아동수가 늘어났기다. 자라분교는 2020년 당시 학생수 3명으로 휴교가 결정됐고 휴교 후 3년이 되는 올해 폐교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됐었다. 하지만 취학 가능 아동수가 늘어나며 학교도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연금을 넘어 펀드로
신안군은 바람 연금으로 주민에게 돌아가는 수익을 높임과 동시에 펀드 참여로 수익 창출까지 기대하고 있다. 현재 풍력 개발 펀드에 가입하겠다는 신청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군청이 나서 조정을 해야 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어민들은 400만 원, 군민들은 200만 원까지 펀드 가입이 가능하다. 이후 적지 않은 수익 배분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신안군은 고정식과 부유식을 포함한 발전단지 30개 조성 시 1인 최대 1억 2000만 원 투자로 연간 약 1500만 원의 소득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생 에너지 펀드에 주민들이 참여하게 되는 건 신안군이 전국 최초다. 최고의 주민 수용성을 넘어 주민들의 적극 참여로 이어지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신안군 관계자는 "햇빛 연금을 통해 주민들이 재생 에너지가 군민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며 "개발 초기 어려움을 뚫고 신안군이 선도적으로 주민들에게 수익을 나눈 것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펀드도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