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가장 멋진 나라 가운데 하나가 분명하다.
인류 역사에서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격상하고, 경제 발전은 물론 정치와 문화 분야까지 지구촌 최상위권으로 진입한 나라는 지난 100년 사이에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위대한 성공을 이루기까지 대한민국은 수많은 국가적 난관을 겪었고, 남부럽지 않은 멋진 나라를 만들어보겠다는 국민적 의지와 열기, 피땀어린 노력으로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면서 인류사에 보기 드문 기적을 만든 나라다.
그러나 그 모든 영예와 자부심은 12월 3일 밤 10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산산조각이 났다. 계엄선포 이후 계엄 사령부 포고령 내용이나 국군 특수부대원들의 국회 진입 시도와 몸싸움 장면은 정치 분야에서도 최상급 자유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1970년대 저개발국이나 후발 개발도상국에서 자주 나타났던 저질 쿠데타 모습과 더 비슷했다.
어떻게 해서 만든 위대한 대한민국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진 모습을 지구촌 주민들에게 보여주게 됐는지,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계엄 선포 직후 우리 국회가 나서서 계엄 해제 절차를 진행했고,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차단한 우리 국민의 노력으로 유혈 사태 없이 국가를 정상화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계엄 소식에 실망했던 지구촌 주요 언론의 반응도 상당한 수준으로 호전됐다. 그러므로 우선 급한 대로 초기 화재 진압은 성공한 것이고, 앞으로 대통령 탄핵이나 차기 대통령 선출 등의 민감한 정치 일정을 무난하게 진행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과제가 될 것이다.
과제 수행을 위해서는 이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과 배경을 규명하는 노력이 우선 진행돼야 한다. 윤 대통령이 왜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극도로 희박한 계엄을 시도했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엄을 선포하면서 제시한 담화문을 차근차근 분석하는 것도 문제점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 담화를 분석하면 계엄 선포 이유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 인식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사유로 공산세력으로부터 국가 수호, 종북 반국가 세력 척결, 헌정질서 수호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은 대한민국이 상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위협으로 새삼스럽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사유로 전혀 맞지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중대한 계엄 사유로 제시한 것은 담화문이 진지한 검토 절차 없이 작성됐다는 점을 반영한다.
종북 반국가 세력이 누구인지도 혼란스럽다. 윤 대통령은 담화의 절반 이상을 야당이 국가 기능을 마비시킨다면서 다수 장관을 탄핵하고, 예산을 삭감하고, 판사를 겁박하고, 검사를 탄핵한다고 비난했다. 아마도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를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가는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도 포함하는 것이다. 특히 입법부의 경우 총선을 통해 국민이 결정하는 것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국가 그 자체다. 국회 결정이 곧 국가 결정이고, 그것은 시비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총선이 더 최근에 치러진 만큼 국가를 대표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대통령과 국회 의견이 충돌한다면 국회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를 범죄자 소굴로 규정한 것은 상황 인식 오류를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에 특이한 성격을 가진 윤 대통령 자신이 당선되고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에 부합하듯이, 윤 대통령 눈에 범죄자로 보이는 사람이라도 총선에서 승리하면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 기관이 된다는 것도 헌정 질서에 부합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을 지목하면서 종북이라는 표현을 추가했다. 누구를 겨냥한 말인지 명확하지 않다. 담화문 맥락을 고려하면 역시 민주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장관 탄핵과 예산 삭감이 국가 기능 마비의 주요 내용인데, 그것을 추진한 주체는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관 탄핵과 예산 삭감은 어떻게 종북 활동과 연결이 되는가?
황당하게도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 견제는 삼권분립 차원에서 헌법이 국회에 허용한 권한이고 임무다. 혹시라도 대통령 처지에서 국가를 운영하면서 불편하다고 생각한다면 정치 협상을 통해 야당의 양보와 협력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야당의 장관 탄핵과 예산 삭감으로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야당이 문제가 아니고 야당과의 정치 협상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대통령 자신이 문제인 것이다.
야당이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과 임무에 충실했는데 이것을 종북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황당무계라는 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윤 대통령은 헌정질서 수호도 계엄 선포 사유로 제시했다. 그렇지만, 헌정 질서 수호와 관련해 문제로 제시한 내용도 장관 탄핵과 예산 삭감이어서 동어반복이다. 오히려 헌정 질서를 언급함으로써 대통령 자신의 논리 모순을 부각시켰다.
계엄을 선포하려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사유가 있어야 한다. 전시나 사변, 그에 준하는 혼란 상황이 있어서 경찰이 질서 유지를 감당할 수 없고, 군대 물리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만 계엄령을 발동할 수 있다.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그런 상황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계엄령을 선포했기 때문에 윤 대통령 자신이 바로 헌정 질서 위반자인 것이다. 또 계엄령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대다수 국무위원이 반대하는데도 일방적으로 선포를 강행한 것도 당연히 위헌 소지가 있다.
계엄을 선포하고 나서 즉시 국회에 통고해야 하는데, 우원식 국회의장은 통고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중대한 헌법 위반이다. 계엄 선포 직후 계엄 포고령을 발표했는데, 제1조에 정당 활동 금지가 포함됐다. 계엄령 해제 권한이 있는 국회의원 활동 금지는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5.18 관련 판례에 따르면 내란죄에 해당한다. 국군 특수부대가 본회의장 진입과 야당 대표 체포를 시도하고, 경찰이 국회의원 등원을 방해한 것도 마찬가지로 내란죄를 저지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담화문을 분석하면 계엄과 관련해 진지하고 정밀한 검토 없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과 법률 규정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보다는 장관 탄핵 등 야당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격분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또 자신은 계엄령도 감행할 수 있는 괴짜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해서 자신의 국정 운영에 야당이 협조하도록 겁박하는 행위로 보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에 대해 야당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견제와 교정을 추진한 것을 국가 기능 마비, 국가 기관 교란, 헌정 질서 유린, 내란 획책, 반국가 행위 등으로 강변하고, 외적 침공에 대비해 양성한 군대를 동원해 개인적 분풀이를 시도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이번 사태가 대한민국 자부심을 심각하게 훼손했지만, 대통령 개인 차원의 무지와 무능, 독단과 편협의 결과라면 우리 국민의 의지와 노력으로 지구촌 주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의 명성을 회복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에 안도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