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승리는 유력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였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은 더 컸던 모양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패닉 수준이다. 지구촌 대부분 국가에서 미국 대선 결과 확인 이후 주식 시장이 하락세를 보였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 시장은 하락세가 가장 커서 폭락세라고 말할 수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지난 일주일 동안 7% 정도 하락했다.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10월 5만원 중반에서 11월 중순에 4만원대로 추락했다.
2016년 11월, 트럼프 당선은 모두에게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이었지만, 2024년 11월 대선은 그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해리스 당선을 예측한 사람 못지 않게 트럼프 당선을 예상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목도하는 반응은 과도하고 부적절하며, 안타깝기도 하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는데 트럼프 당선이라는 신문 제목 하나로 대한민국이 이렇게 격렬하게 요동치는 것을 보면 한국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보여줘야할 적절한 모습은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트럼프 시대가 다시 찾아온 배경과 원인을 탐구하고 향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대한민국 이익을 최대로 늘릴 수 있는 최적의 외교 방책을 찾아내기 위한 토론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미국 사회의 특징을 검토하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미국 사회의 특성은 엘리트에 대한 미국 민중들의 불만과 혐오감 분출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일반 국민들은 왜 절망하고 분노했는가?
간결하게 답을 해보자면, 엘리트 기득권층이 국가를 잘못 운영하고 있다는 인식이 만연했고, 엘리트들이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민중이 틀렸다고 강변하는 태도에 대해 반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다수 국민들은 2022년 이후 조성된 고물가 상황에 대해 극심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최근 불법 이민자들이 과도하게 많이 미국에 유입돼서 국가 예산의 왜곡된 사용이나 범죄 발생 가능성 증가 등에 대해서도 불만과 불안이 심각하다. 문제는 사회적 불만과 불안이 증대된 상황에서 민중들의 반응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문제가 발생해도 극단적인 수준의 실정이 아니라면 정부 방침에 순종하는 경향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 정책의 합리성 여부를 떠나서 상시적으로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정부 정책 방향에 불만을 표명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엘리트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이 심각한 수준이어서 합리적인 토론의 영역을 떠나 감정적인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평가도 가능한 상황이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불만을 표출하는 민중에 대한 엘리트의 대응이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는 민주당 정부가 미국을 위해 최선의 정책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민중들의 불만이나 불안은 과장됐거나 오도됐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후보나 공화당 진영에서는 민주당 정부의 정책 실패를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엘리트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과 불안, 불쾌감은 해리스 후보와 민주당 지도부에게로 집중됐다.
민주당이 이런 구도를 사전에 중요하게 인식했다면 선거 메시지 관리를 다르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통적인 방식의 정치 소통, 즉 민중은 엘리트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소통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민중들은 정부 정책에 불만과 불안감이 제기되면 정부는 충실하게 해명하는 것이 맞고,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강하게 보여줬다.
이번 대선은 기존의 엘리트 소통 방식에 대해 민중들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미국 사회의 두 번째 특징은 신자유주의 부작용 노출이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추진했던 일련의 사회, 경제 정책으로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면서 지배적인 원칙으로 채택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신자유주의 원리에 따라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상품과 자본, 노동력이 최대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혁파하는 노력을 지구 차원에서 전개했다.
세계화는 빠른 속도로 지구촌 주요 국가의 제도를 변경시켰는데, 문제는 세계화에 부작용이 수반한다는 점이다. 값싼 중국 상품이 전세계로 공급되면서 곳곳에서 가격 교란 현상이 나타났고, 미국에는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돼서 저임금 일자리를 휩쓸었다. 그 결과는 미국내 백인 중산층이 일자리를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원인이 됐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 주요 선진국에서 정치 양극화가 극단적으로 심화하고 당연한 귀결로 정보 양극화도 심해졌다. 정보 양극화는 개인들이 각자 선호하는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확인하는 상황을 유발하면서 편협한 정보와 가짜 뉴스가 활보하는 토양을 조성했다.
미국 대선에서도 트럼프 진영과 해리스 진영은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각자의 지지자들과 소통했을 뿐 중도 진영이나 반대 진영과는 소통하지 않았고, 소통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세 번째 특징은 기술 발전과 관련이 있다. 첨단 기술의 발전은 인터넷 사용과 관련해 다양한 플랫폼을 등장시켰고, 소셜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소셜 미디어는 인간의 삶의 방식을 크게 변경하는 상황으로 이어졌고,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과 문법도 덩달아서 바뀌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 올라오는 정보나 소식은 단기적으로 유행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기민하게 정보를 확인하고 재빨리 반응을 보여야 한다. 차분하게 지식을 축적하고 냉철하게 뉴스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허용되지 않는다. 인터넷 세상에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 뉴스는 널려 있기 때문에 차분한 지식 축적에 시간을 투입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소통을 주도하기보다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에 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경우는 자신의 메시지를 주도적으로 전파하려고 노력했지만, 해리스의 경우는 트럼프에 대한 비난 공세에 편승했을 뿐, 자신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리는데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엘리트에 대한 혐오감이나 정치 양극화, 반응 일변도 태도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거의 동일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도 정치 발전과 국가 발전을 기대한다면 위에서 제기한 세 가지 문제점은 국가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소해야 하는 주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엘리트에 대한 혐오감 문제는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민중들을 교육 대상자로 보는 인식과 태도를 버리는 것이 핵심 과제다.
정치 양극화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장치를 세밀하게 마련하고, 민중의 정치 참여 플랫폼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반응 일변도 태도는 자기 주도 접근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자신만의 메시지 발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