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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24년 미국 대선 ‘초박빙’ 오판...무엇이 잘못됐나?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필자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 최근 몇 차례 외교 문제 전문가라는 명목으로 방송 출연이나 칼럼 등을 통해 이번 대선은 역대급 초박빙 선거라는 점, 그리고 최종 승자는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판세가 초박빙이 아니라 비교적 넉넉한 표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 후보가 아니라 해리스 후보를 지목했기 때문에 부정확한 분석과 해설을 제공한 셈이다. 독자 여러분과 시청자 여러분에게 혼선을 안겨준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분석과 해설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생산적인 방법으로는 향후 동일한 오류를 재연하지 않기 위한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국 대선 분석에서 필자를 포함해 일부 전문가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미국 대선을 면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처음이었다. 국제부 기자로서 수 개월 동안 미국 대선 동향을 보도한 것이 계기였다.

 

2000년 선거는 개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결국 연방 대법원이 대통령을 결정하는 등 미국 역사에서도 큰 논란 대상이었지만, 한반도 운명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 선거였다. 선거 당시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협력해서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했고, 한반도 평화 체제의 문이 열리기 직전 상황이 조성됐다.

 

만약에 민주당 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이 승리했다면 북미 외교 관계 수립과 북핵 문제 해결 등 대형 외교 이벤트가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신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오히려 압박하는 정책 기조를 택했다. 그 와중에 9.11 테러 사건이 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중단됐고,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로 이어지면서 북핵 문제 해결 불가능 상태로 전개됐다.

 

2016년 11월 선거는 필자에게 자괴감을 안겨준 흑역사였다. 당시 필자는 3년 간의 워싱턴 특파원 임무를 마치고 6월에 서울로 돌아와서 통일외교 전문기자 자격으로 미국 대선을 집중 보도, 해설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필자는 미국 주요 언론을 참고해서 대선 상황을 보도했고, 투표 당일까지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97%라고 해설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라서 막말 대왕으로 불리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번 미국 대선은 트럼프 후보가 세 번째로 도전하는 선거라는 점에서 같은 실수를 재연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면서 선거 추세를 면밀하게 관찰했다. 미국에서 열리는 대선을 서울에서 분석해야 하는 만큼 필자는 주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하고 누적해서 발표하는 realclearpolitics.com(RCP) 지지율 지표를 참고했다.

 

지난 4월 이후 매일 지지율 변화 추세를 지켜봤고, 투표 당일에는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0.1% 포인트 앞섰지만, 경합주 7개주에서는 0.5% 포인트 뒤진다는 지표를 보면서 마지막 분석을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50개주와 워싱턴DC 중에서 20개는 해리스 지지로 선거인단 226명, 24개는 트럼프를 지지해서 선거인단 218명이 사실상 확정됐고, 경합주 7개만 유동적이어서 93명의 향배가 미정인 상태였다. 이중에서 미시간과 위스콘신은 0.5%와 0.4% 격차로 해리스 승리를 예상했고, 펜실베이니아의 경우 0.4% 격차로 트럼프 승리를 예상했다.

 

단순하게 보면 트럼프 후보 승리를 예상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해리스 후보의 막판 상승세가 있었기 때문에 재역전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결국 해리스 후보가 두 곳에서 승리하고 펜실베이니아에서 마지막날 역전극을 펼쳐서 선거인단 44명을 더해 승리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달랐다. 펜실베이니아 1.9%, 미시간 1.6%, 위스콘신 0.8% 격차로 트럼프가 모두 승리했고, 남부 조지아 등 4개 경합주도 모두 3% 전후 격차를 보이면서 트럼프 후보가 승리했다. 이런 결과는 지난 6개월 간 진행된 여론조사 추세와 상당히 다른 것으로 경합주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 후보 지지가 평균적으로 1.5% 정도 과소평가된 것이 확인됐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샤이 트럼프" 효과로 인해 예측이 빗나갔다고 설명한다. 미국 인구 절반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후보 지지를 밝히는 것이 부끄러워서 여론조사에서 말을 하지 못한다는 가정은 과도하게 순진하다. 오히려 미국 사회 기득권을 불신하며 여론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일반 대중이 - 이들을 ‘엘리트 혐오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트럼프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힘을 보여줬다는 해석이 설득력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의 반감을 전략적으로 활용했고, 반면에 민주당은 ‘엘리트 혐오자’ 존재를 몰랐고, 존재를 모르니 정확한 대응을 할 수 없어서 참패한 것이다.

 

대중의 불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면 선거 공약과 슬로건 채택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선에서 핵심 관심사는 경제 문제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고, 특히 2022년 이후 살인적인 고물가에 따른 충격파가 가시지 않았는데도 민주당은 트럼프 후보가 민주주의 파괴자라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 문제에서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분노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불법 이민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흑인과 히스패닉 남성 유권자들의 일부가 트럼프 지지로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를 차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없었다.

 

트럼프 후보가 여전히 막말을 일삼고 인종차별 발언을 지속하면서 미국인의 자존심을 실추하고 있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또 승리를 거둔 것은 민주당의 무능과 무기력에 따른 패배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일반 대중과의 소통이 단절됐다는 점이 특별히 중요하다.

 

바이든 대통령이나 해리스 후보의 발언 중에 극도의 불만을 가진 대중의 불만을 위무하는 발언은 없었고,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일부 국민에 대한 경멸만 언급됐다. 미국 민주당은 선거에 패배했지만, 4년 뒤 대선, 또는 2년 뒤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지금이라도 대중과의 소통 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와 그의 추종세력이 어떻게 일반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했는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트럼프 세력은 기득권 세력의 일부지만, 기득권층 하부를 구성했기 때문에 기득권 상층부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일반 대중과 공감하고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고쳐서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는 화법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일반 대중 가운데 일부를 엘리트로 편입시켜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방법이 될 것이다.

 

필자를 비롯해 미국 문제 해설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은 미국 사회를 분석할 때, 미국 대중의 절반 정도, 어쩌면 대다수는 기득권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고, 따라서 미국 사회는 엘리트와 대중 간 갈등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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