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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제22대 국회 개원에 부쳐...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타협과 대화의 과정

 

 

앞으로 2028년 5월 29일까지 4년간 우리나라 입법부의 역할을 수행할 제 22대 대한민국 국회가 문을 열었다. 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비례대표를 포함한 총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선거구를 떠나 국민의 대표로써 국민을 위해 각자가 국가의 입법기관으로 활동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속 성장 시대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좋은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지 못하고 있고, 국민의 절반가량이 수도권에서 살면서 국내총생산의 52%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주택난과 교통난, 생활격차 등 총체적인 고통을 느끼는 반면 지방은 인구소멸, 지역소멸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 고물가에 국민의 생활경제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떨어져 국가공동체마저 소멸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기정사실화'(de facto) 단계로 접어든 가운데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나 안보적 차원에서나 격랑의 한 가운데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국회가 현재의 국가적, 정치적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고 있지는 않겠지만, 지난 여러 국회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는 국민으로부터 3류라는 소리를 들어왔기에 걱정에 앞서 필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국회에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제21대 국회를 이끌었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지난달, 22대 초선 당선인들을 만나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정당의 당원이 아니라 헌법기관으로 선출된 것”이라며 “여러분을 찍어 준 사람 중에 극단적인 팬덤 표는 1%도 안 된다. 국민으로부터 선택된 취지에 맞도록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의장은 “국회는 (당의 지시와 결정에 따르기보다) 원내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개진돼야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건강한 진보정당의 당론이 형성 된다”면서 “더 이상 자기주장만 강하게 하면 되는 시민단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당에 대해서도 “대통령에게 노(No)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대통령에게 의사를 전할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있다. 어떻게 자기 혼자만 편하게 살려고 행동하는가? 이번 총선 결과는 국민이 (그런) 실망감을 표로 나타낸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김 전 의장뿐만 아니었다. 역대 어느 국회의장들 역시 한결같았다. 그 어떤 경우든 타협과 조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다른 국민의 갈등을 조정하는 행위가 정치이고, 올바른 그런 과정이야말로 대의 민주주의의 표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국회의 타협과 조정 과정은 우리나라 국민이 보기에 비민주적이었다. 그래서 국민은 너나없이 한국 정치가 퇴보하고 있다고 한탄했고, 일부는 정치적 무관심층으로 잠행해 버리기까지 했다.

 

법령 제정의 숫자보다 법령 제정 과정이 중요

 

물론 모든 책임이 국회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 정당, 정치인의 자질, 언론, SNS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적 퇴보에 대해 누구의 책임이 크냐고 물어보시라. 그러면,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다수당과 소수당의 기준에 따라 그 책임과 대상, 그리고 책임의 논리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진영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요즘은 진영이 다르면 서로 식사조차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하는 데 오죽하랴.

 

이처럼 편이 다르면 서로 얼굴도 마주하지 않을 만큼 한국 정치가 위기를 맞게 된 데에는 뭐니 뭐니 해도 국회의원들의 책임이 가장 클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편의상 지역구를 나눠 국민의 대표로 뽑힌 사람이면서도 국가 전체를 위해 어떤 의제든 민주적인 타협과 대화의 기술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입법과정을 거쳐 제정된 법령은 3천여 개가 넘는다, 고 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의원들의 난상 토론과 대화를 통해 제정된 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과문한 탓에 필자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보자. 법을 많이 만들어서 국민들의 생활이 나아지고 개선된다면 국회의원 수를 수천 명씩 늘려 법을 많이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논리를 믿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무리 많은 법을 만들고 개정해 봐야 국민의 삶은 거의 나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 3천 달러에서 정체되어 있고,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이유는 법이 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극단적이지만 물가가 오른다고 법을 제정해서 낮출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법률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민생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산업발전을 위해 처리할 법안들이 얼마나 많은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지원법인 K칩스 법, 전력망, AI 기본법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할 그런 법령들이 막판까지 정쟁에 밀려있었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진 것은 그처럼 법률 제정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이 토론과 조정의 민주적 절차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법령안에 정성을 들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많은 여야 의원들이 서로의 의견을 청취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 대의정치를 하라고 국민의 대표를 뽑았다.

 

국민은 경청하며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원한다

 

이번 국회부터 입법과정에서 여야가 대화하고 토론하는 솔선수범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모든 법령에 대해 그렇게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몇 개 법령이라도 그렇게 해 주길 원한다. 누군가가 말했다. 남자가 해 봐야 할 3가지 일이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정치라고. 그만큼 정치라는 직업이 힘이 드는지를 알지만 그래도 경청하고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동아시아연구원장이자 연세대 국제대학원 손열 교수는 한 언론의 명예기자 리포트에서 미국 싱크탱크인 시카고 국제문제위원회가 국제문제 오피니언 리더 600명에게 미국의 최대 위협 요인을 물었더니 73%가 정치 양극화를 꼽았다고 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위협인 북한, 중국, 러시아를 크게 앞질러, 양극화가 의회정치를 마비시키고 정책 발전과 혁신을 저해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크게 손상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정치 세력 사이에 분노와 혐오, 대립, 반대를 위한 반대가 일상화된 ‘인물 심판’이 빚은 양극화 국가다. 특히 이념 정책 대결을 벌리는 선진국과 달리 반대편의 성공을 저지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정파적 양극화로 인해 대외 관계는 물론 국익마저 훼손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 국민은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층과 유산을 받을 게 없는 층으로 사실상 빈부의 격차가 커져가고 있고 대화도 단절되어 가고 있다. 모든 국민이 현실 세계와의 고립을 자초하며 디지털의 가상세계를 통해 소통한다. 전동차건 식당이건, 집에서건 모두가 휴대폰을 보고 있으니까.

 

소통이라고 할 때 소(疎)는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가 세상에 나오기 위해 머리를 자궁 쪽으로 향하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라고 한다. 통(通)은 자궁을 나와 세상을 향해 울음을 울 때를 말한다. 그러니까 소통이 안 되면 어머니도 태아도 죽고, 결국 모든 이가 죽는다. 여야의 소통이 없으면 정치가 죽고, 국회가 죽고, 나라가 없어지고 만다.

 

정치적 난제가 무엇이든 국회의원 스스로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품격을 갖추고 여야가 솔직하게 대화하고 소통을 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문화가 국회로부터 만들어지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내편 네편을 가리지 않고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나누며 우리나라가 맞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해법을 모색하는, 항상 정의의 편에 선 국회를 향해 4년 뒤 국민들의 박수를 보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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