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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M경제매거진] 정통 벨칸토 김철호 교수의 오페라 사랑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삼육대 김철호 교수는 늦깎이로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은퇴한 성악가로부터 정통 벨칸토 창법을 전수 받았다. 귀국 후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오페라단을 만들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오페라 보급 운동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김철호 교수는 2009년과 작년에 GS 자이 아파트와 우루사 광고에 나올 정도로 스타 성악가이기도 하다. 김철호 교수를 만나 그가 품고 있는 한국오페라의 꿈을 들어봤다.

 

 

Q. 언제부터 오페라 보급 운동을 펼쳤지요?
김철호 교수 : 2005년 구리시 오페라단에서 시작했습니다. 구리와 남양주에 거주하는 동료 성악가들과 함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오페라 공연, 갈라 공연, 음악회 등을 열면서 성악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로원, 중·고등학교, 청소년 센터 등을 찾아가는 공연도 해왔습니다. 구리시 양로원에는 두 달에 한 번씩 정기공연도 합니다. 그러다가 3년 전에 구리시의 경계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활동을 해보자, 나아가 해 외공연도 정기적으로 추진하자고 해서 ‘K-Met 오페라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단체 등록도 했습니다. K는 Korea란 뜻이고 Met는 메트로폴리탄의 약자입니다. K-팝, K-컬처라는 말이 요즘 많이 쓰이잖아요, ‘K-Met 오페라단’은 우리 성악가 들이 오페라 한류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웃음) 
 
Q. 오페라는 의상이라든지 무대장치라든지 해서 한 번 공연을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철호 교수 : 그렇습니다. 양로원이나 마을 센터를 찾아가는 공연은 무대 장치와 조명 장치 없이 노래로만 하는 갈라 콘서트를 주로 합니다. 오페라 작품도 그랜드 급이 아닌, 라트라비아타, 라보엠, 피가로의 결혼, 마적 등 중간급작품들을 공연 합니다. 완전한 형태로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주 못합니다.

 

오페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출연 성악가들은 자기가 입는 의상들을 가지고 오거나 단체로 빌리든지 해서 경비를 최소화합니다. 분장도 본인들이 하거나 또는 실비로 해주시는 분들에게 부탁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오페라단장으로 있으면서 한 가지 실천한 것은 주역과 조역, 단역에 따라 노래를 부르시는 분들에게 꼭 개런티를 드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오페라단들은 성악가들이 돈을 내고 부르거나 표를 많이 팔아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부담을 주지 않고 개런티를 챙겨 드리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대가는 액수가 적더라도 가져가서 성악가로서 자존심을 지켜드리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요.

 

정말 싼값에 천만원으로 오페라 무대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시에서도 적은 금액을 도와주시고 우리도 외부에서 후원을 받아 오페라를 공연하면 다들 놀랍니다. 시 관계자는 적은 비용으로 알찬 무대를 만드는 것을 보고 만족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오페라단은 이제 자리가 잡혔다고 할까요, 예산에 큰 걱정 없이 공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찾아가는 오페라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김철호 교수 : 대도시에 살아도 오페라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습니까. 우리 오페라단은 지방 작은 마을의 폐교에 가서하는 음악회, 면 단위 주민 센터에서 하는 음악회를 공연 했습니다. 제가 유학 갔다 와서 강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20년 동안 전국에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다녔는데요. 시골 마을에 가서 공연을 하면 평생 한 번도 클래식 공연을 본 적이 없다고 많이 그래요. 할머니와 아저씨들은 이런 작은 마을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그러고, 아이들은 자기도 장래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힘들더라도 보람을 느낍니다. 

 

 

Q. 해외 공연도 나간다면서요.
김철호 교수 : 작년 여름에 이태리 남쪽 레체현 알레사노에서 우리 멤버 8명이 초청된 갈라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해외 공연을 가지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이태리 밀라노에서 열린 브래샤 국제성악콩쿠르와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아시아국제음악 콩쿠르에서 각각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이태리 Cassarano시가 제정한 성악가상도 수상 했습니다.

 

 

Q. 오페라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요.
김철호 교수 : 오페라는 그야말로 서양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과 미술 등 서양공연예술의 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전 세계의 공연예술로서 한때 세계인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중음악의 물결에 밀려 요즘 다소 주춤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태리의 베로나에서 오페라 축제가 열리면 유럽 각지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몰려들 정도로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 오페라 붐이 일어날 것으로 봅니다.

 

Q. 어떻게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요?
김철호 교수 : 제 기억으로는 5살 무렵에 교회 야외 예배에서 특창을 했습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내가 남들 앞에서 떨리지 않고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른 것은 고등학교에서 남성 아카펠라 중창 팀에서 세컨드 테너를 맡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아카펠라가 주는 화음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선생님들로 부터 ‘너, 미성이다’라는 칭찬도 듣고 우리 아카펠라 팀이 경연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았습니다.

 

고3때로 기억합니다. 친구가 성악 레슨을 받는데 따라갔습니다. 레슨 선생님이 너 중창을 한다니 노래 한 번 불러보라고 그러고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그 뒤에 선생님으로부터 레슨을 몇 번 받고 나니 그냥 학생들끼리 부를 때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 하게 되었습니다. 학사를 마치고 석사까지 땄습니다만 그때 까지는 성악으로 두각을 나타내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노래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면 잘 부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흔히 재능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중요하죠, 그러나 재능이 없다고 해도 노래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연습을 꾸준히 하면서 보이스를 개발하면 잘 부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잘 부르는 보이스에 확 빠져들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석사를 마치고 학사장교로 4년을 군대에서 보내고 서른 살쯤인가, 문득 노래로 한 번 끝장을 내보자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태리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서른 살 이면 제 성악 동기에 비해 꽤 늦은 편이었습니다. 

 

Q. 어디서 공부했지요?
김철호 교수 : 피렌체에서 어학 공부를 하면서 성악 개인 교습도 받았습니다. 제 나이가 서른 살이라서 이태리 대학에서는 나 이 제한 때문에 1학년부터 다닐 수 없었습니다. 이태리 사람으로부터 남부 레체에 옛날에 엄청나게 유명한 테너가 은퇴를 해서 국립음악원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 니다. 이태리 말 잘하는 한국인 친구랑 무조건 내려갔지요. 그 학교를 찾아가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나의 스승이 되는 ‘주세페 지스몬도’라는 시칠리아 사람입니다. 제가 그분에게 당신의 이름을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더니 저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 같았어요. 입학시험을 치렀는데, 어디서 듣고 왔는지 시험 보러온 사람들 중에 한국인 학생들도 있었어요. 합격자 중에서 한국인은 저 혼자였어요. 한국 석사과정을 인정 받았는지 3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는 벨칸토 중에서 아름답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유명한 전설적인 성악가인 티토 스키파의 이름을 딴 곳입니다. 티토 스키파의 무덤이 학교 교정 안에 있습니다.


피렌체나 로마에서 지스몬도 교수로부터 배운다고 그랬더니 다른 교수들이 그 분이 굉장히 유명했던 대가라고 놀라더군요. 저 혼자서 ‘내가 학교와 스승은 잘 만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숨은 도인을 만나면 크게 성공할 거란 소리를 들었거든요. 저 역시 이태리에 가서 대가 급을 만나서 제대로 배우고 싶었는데, 그런 꿈같은 일이 제게 일어난 겁니다. 지스몬도 스승님은 시칠리아 출신인데 전통적으로 시칠리아와 나폴리 사람들이 목소리가 우렁차고 좋아서 훌륭한 가수들이 많습니다.

 

지스몬도 교수뿐만 아니라 또 한 분의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보이스 트레이닝을 잘 가르쳐주는 코치 선생님을 소개받았습니다. 보이스 트레이닝은 대가들만이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고 테크니컬하게 그것만 잘 가르치는 분들 이 있어요. 마리오 카나나라는 선생이었는데요, 이태리 친구들이 소개해줬습니다. 지금 82세이신데, 피아노를 잘 치고 테 너 보이스 훈련을 잘 지도해주셨습니다. 지스몬도 스승님은 지금은 돌아가셨어요.

 

 

Q. 이태리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국내 성악계를 보고 느낀 것은 없었는가요?
김철호 교수 : 유학을 갔다 와서 보니, 근래 유학이 자유로워져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성악가나 음악가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 인프라가 잘 갖춰지고 실력도 향상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노래만 부르면서 생활하기엔 너무 어려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태리에 유학 가서 그쪽 무대에 섰을 때 작은 금액이지만 개런티를 받았는데, 한국의 실정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관객들이 표를 사가지고 오는 개념이 약하지 않습니까. 이태리에서 돌아와서 현실적인 벽에 많이 부딪쳤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직과 노래를 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유학에서 막 돌아왔을 때의 실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성악가는 노래에만 전념해야 하는데, 그런 걸 허용하지 않는 게 현재 한국의 실정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한국은 시행착오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태리에서 교수는 무대 경험이 많고 연륜을 쌓은 사람들이 주로 합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서둘러서 가르치지 않고,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가면서 스스로 소화 하는 시간을 주면서 가르칩니다. 반면에 한국은 유학을 막 갔다 온 분들이 의욕이 앞선 나머지 학생들을 급하게 자기 식대로 가르치려 들어요. 무대 경험이 적은 젊은 교수들이다 보니 더욱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저도 처음에 그런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알고 있는 것을 다 학생들에게 전해주려고 했지요. 학생들을 무리하게 가르치면 오히려 나중에 목소리를 망칠 수 도 있습니다. 이제 20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만 학생들에게 ‘과도하게 욕심을 내지 마라.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라’고 꼭 말해 줍니다.

 

 

Q. 이태리 발성법 ‘벨칸토’의 특징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김철호 교수 : 저의 석사 학위 논문이 ‘국악 전통 발성법과 이태리 벨칸토 발성법의 비교 연구’였습니다. 판소리에서 득음이라 고 하면 맑은 청성뿐만 아니라 탁성도 정신적인 스피릿이 있으면 대가로 인정됩니다. 이태리에서 벨칸토 발성이라고 하면 아름답고 물이 흐르듯 부르는 청성이라야 합니다. 벨칸토 발성은 목소리가 인체와 잘 공명이 돼서 마이크 없이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차이는 있습니다만 공통적인 부분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Q. K-Met 오페라단은 성악가 중심이라고 했는데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김철호 교수 : 우리 단체는 성악가들로 구성된 멤버십이 장점입니다. 단장이 모든 걸 책임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이 공동으로 의논해 참여해서 결정하는 시스템입니다. 성악가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참여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걱정해 주고, 개런티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K-Met 오페라단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요?
김철호 교수 : 우리 단체의 출발이 클래식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이니까, 클래식 음악을 접하지 못한 분들을 찾아가는 공연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오페라는 최소 일 년에 한 번 이상 무대에 올리려고 합니다. 성악교실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분들 중에서 잘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을 중심으로 아마추어 오페라를 만들어 볼 계획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Q. 요즘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놓고 논란이 뜨겁습니다만, 우리나라 오페라는 1948년 조선오페라단에 의해 베르디의 < 라 트라비아타>가 시공관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이래 이미 우리 예술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근래 오페라 공연이 침체되어 주목 을 받지 못한 탓도 그런 논쟁거리를 제공한 것 아니지 않은가 생 각해봅니다. 한국 오페라의 활성화 방안을 갖고 계신지요?
김철호 교수 : 한국 오페라가 국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저 혼자 오래도록 생각해온 게 있습니다. 한국 성악가들이 외국에서 실력을 갖추고 들어와도 한국에서는 몇 년에 한 번 정도밖에 무대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지방 도시에도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 버금가는 극장들이 있습니다. 정부가 10개의 오페라단을 공모로 선정해서 이들에게 하나의 작품을 일 년 동안 전국 10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공연하게 하는 겁니다. 한 오페라단에 15억원 안팎의 제작비를 지원하는 것입니다. 10개 오페라단에 각 15억원씩 전체적으로 150억원 정도 지원하는 거는 크게 어렵지 않다고 봅니 다. 각 오페라단은 하나의 작품만을 반복해 공연하기 때문에 성악가의 실력도 점점 향상되고 무대 장치나 의상, 분장, 소도구 등 제반경비도 많이 절감되므로 15억원 정도면 순회공연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렇게 되면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수준 높은 오페라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10개 오페라단들이 서로 경쟁을 통해 수준도 높아질 것입니다. 성악가들도 레슨 할 필요 없이 노래로만 생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페라단 선정과 관리, 감독은 공신력 있는 위원회 등을 설치하거나 국립오페라단이 하면 될 것입니다. 이 위원회에서 공연 성과가 저조한 오페라단은 탈락시키고 새로운 오페라단에게 기회를 줘야 하겠지요.

 

이태리나 유럽의 성악가들은 작품의 배역이 대체로 전문화 돼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성악가라도 모든 배역을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공립 오페라단이 극히 적다 보니 공연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올리고 있습니다. 10개의 오페라단이 위와 같은 식으로 공연한다면 세계적인 성악가,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오페라단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성악의 종주국을 제칠 정도로 성악가들의 자원이 풍부합니다. 10개 도시에서 수준 높은 오페라공연을 늘 볼 수 있다면 관광 상품화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관광버스 타고 좋은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고 외국에서도 오는 거죠. K-팝이 있듯이 K-클래식, K-오페라로 한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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