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M&A에 실패하는 경우가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에서 생존전략을 뛰어넘어서 이제는 성장전략, 투자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에 이러한 현실은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 벤처창업 지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금회수가 어렵다는 점이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M&A가 활성화되어 있어 자금회수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당시 너무 헐값에 팔린 회사들이 있어서 M&A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M&A시장을 잘 알면 제 값을 받고 적기에 팔 수 있다는 게 한국M&A거래소의 설명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명품 브랜드 회사를 사들여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기업들도 이미 외국의 M&A시장에 진출해있고 또 그 반대로 외국 기업들도 국내의 M&A시장에 들어와 있다.
전 세계 M&A 시장 ‘들썩’
저금리 기조 속에 주가가 안정세를 유지하면서 전 세계 M&A 시장이 올해 들어 2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한해 전보다 53% 증가한 것이고 지난 2007년 이후 최대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올 상반기 M&A 시장이 지난 2004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활기를 띤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국내 M&A 시장 규모는 446억 4천만 달러(482건)로 집계됐다. 이는 한해 전보다 52.9% 증가한 것이고 지난 2004년 이후 가장 큰 거래 규모이다.
자본 유입 규모는 124억 달러(59건)로 전년 동기 대비 552.8% 늘었다. 안호이저부시인베브가 58억 달러에 OB맥주를 재인수한 것이 가장 큰 거래였다. 반면 자본 유출거래는 13억 달러(70건)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77.2% 줄었다. 해외부동산 투자가 활발했던 작년과 달리 올 상반기에는 LG화학이 미국의 수처리 필터업체인 ‘NanoH20 Inc’를 2억 달러 규모로 취득하는 거래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M&A 시장이 급성장한 원인은 지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가 발생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업황이 나빠진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이 컸지만 낮은 이자율로 인해 실제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실시된 기업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금리가 정상화되면서 구조조정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여론이 확산돼 한계상황에 빠진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국내 M&A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내 증권사는 삼성증권뿐이라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삼성증권은 올 상반기 M&A 자문시장에서 62억 1,100만 달러(5건)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지난해보다 7계단이나 높은 전체 4위(거래금액 기준)를 차지했다. 삼성증권은 삼성SDI·카카오 등 대형 M&A 자문을 맡아서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35억 3천만 달러에 인수하는 작업과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카카오를 약 23억 6천만 달러에 합병하는 거래를 모두 성사시켰다.
그러나 하반기에도 이러한 여세를 몰고 갈지는 의문이다.
올 하반기에도 우리은행 매각 계획이 구체화되고 정부 지분 규모만 5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장의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또 대기업 구조조정도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M&A 시장에서 상반기 못지않은 거래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적절한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투자금융 업계의 전망이다. 매물이 있어도 인수자가 없다면 거래는 진행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거래건수보다 한 건당 거래금액이 증가하고 있는 시장의 흐름을 본다면 인수자 입장에서 매력이 별로 없는 중소기업 매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서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M&A 시장에 나온 구조조정 매물은 현대·한진·동부그룹 등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들이다. 현대는 현대증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동부는 동부발전당진, 동부하이텍, 동부특수강 등에 대한 매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현대증권 매각의 경우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가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으면 거래가 진전되기는 어렵다.
생존형 M&A에서 기술형 M&A로 금융투자업계는 M&A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M&A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사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침체됐던 세계 M&A시장은 최근 들어 글로벌 경기회복세를 타면서 다시 활황을 기록하고 있다”며 “이는 세계 각국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M&A를 통한 산업 구조조정 및 성장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전략적인 M&A 비중을 확대해 나가는 추세에 있어서 글로벌 M&A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는 기업을 사는 편이 신사업개척이나 신기술 개발보다 리스크가 적다는 인식 때문이다.
반면 지난 2010년 이후 감소세로 전환되던 국내 M&A시장은 특히 지난해에는 크게 위축됐다. 이는 M&A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정 사장의 설명이다.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을 살 때에는 우리나라가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을 하거나 국내기업이 외국기업을 살 때에는 법인세를 피해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식이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헐값에 사는 거 아니냐’는 등의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있어서 외국계 기업에게 인수될 때에는 국내기업이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신규 사업 확장을 위해서 M&A를 시도하기 보다는 한계기업이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M&A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서 그동안 M&A는 생존형이 많았다.
이제는 M&A에 대한 인식을 바꿔서 생존형에서 기술형으로 M&A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게 정 사장의 주장이다.
이 외에도 M&A에 관한 시장정보와 노하우 부족, 금융규제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해외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데, 이 경우에는 기업문화 차이 때문에 인수합병 후 통합 과정상에 어려움이 많이 있고 사모투자펀드(PEF)에 대한 규제, 해외 M&A할 때 국내 IB나 PEF 역할 등도 제한돼 있는 상태이다.
M&A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해외 M&A 활성화 추진, M&A 매칭펀드 등을 활용한 금융지원, PEF 투자 활성화를 위한 국내 투자은행의 역량 강화 등이 필요하다.
M&A보다 계열사 신설 선호
국내 기업들의 강한 소유경영 의식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선제적인 기업구조조정 방안으로서의 기업매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어서 적기를 놓쳐 적절한 유동성마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10년 동안 대기업들은 M&A보다 신설을 통해 규모를 확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말 기준 30대 그룹의 계열사 편입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04년 이후 신규 편입된 계열사는 총 860개로 이중 60.3%에 해당하는 519개가 신설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M&A는 341개(39.7%)였다.
신설 기업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한진과 OCI였다. 두 그룹 계열사 중 10년 새 새로 편입된 계열사는 각각 32개와 16개였고 이중 각각 28개와 14개가 신설기업이어서 비중이 87.5%에 달했다. 3위는 금융투자사를 대폭 늘린 미래에셋이 21개로 비중으로 따지면 80%에 달했다. 현대와 대림은 각 11개(78.6%), 두산 13개(76.5%), 부영 6개(75%), 코오롱 17개(73.9%), 삼성 22개(73.3%), 한화 19개(73.1%) 등이다.
신설기업이 M&A 보다 많은 것은 2, 3세로의 자산승계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데 M&A보다 기업분할과 대주주 지분 취득이 쉽고 생존율도 높기 때문이다.
반면 M&A 비중이 높은 기업도 적지 않았다. CJ는 M&A 기업수가 37개로 전체 신설법인의 63.8%를 차지했다. 현대백화점 14개(60.9%), 신세계 12개(60%) 등도 M&A 비중이 60%를 넘었다. LS 30개(58.8%)와 현대차 20개(58.8%)는 4, 5위를 차지했다.
우회상장 규제 풀어야 할까
국내 기업들의 투자자금의 선순환을 위한 M&A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면 우회상장과 관련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금융당국은 투자자 피해의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내 M&A 발생건수는 2000년대 초반에는 400~600건에 머물렀으나 지난 2005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10년에 1,000건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 후 건수가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700건 수준으로 3년 만에 30% 줄었다. 이 때문에 M&A 전문가들은 2010년에 막힌 우회상장 규제가 해소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회상장이란 비상장기업이 상장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법(역합병)을 통해 증권시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상장기업이 상장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질적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자격 요건을 갖추기 쉽지 않고 증권사 상장주선인 선정 시 비용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M&A 추진계획이 사전에 노출돼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국내 M&A 시장이 위축된 이유는 2010년에 들어선 질적심사, 상장주선인 선정 등 우회상장에 대해 생긴 규제 때문이므로 질적심사를 간략화시켰고, 자문 변호사나 회계사, 감사인 등이 있기 때문에 상장주선인은 폐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금융위원회는 ‘기업상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합리화 방안’을 발표해 코스닥시장 질적심사기준을 55개 항목에서 25개 항목으로 줄였지만 우회상장은 아직도 규제하고 있다.
현재 우회상장 규제는 지난 2010년에 발생한 네오세미테크 사태 등으로 폐단이 심해 관련 규제가 만들어졌는데, M&A시장만을 활성화 시키겠다고 규제를 푸는 것은 어렵다. 네오세미테크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봤는데 우회상장 규제를 풀 경우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 M&A 매물 쏟아져
최근 중소기업 M&A 매물이 쏟아지는 가운데 신한은행이 M&A지원전문팀을 신설해 중소·중견기업 M&A 과정 전반에 걸쳐 전문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0년부터 M&A 자문 서비스를 해왔던 것에서 나아가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자문 서비스는 먼저 신한은행이 M&A 의사가 있는 중소·중견기업들을 직접 발굴하거나 자문을 요청하는 기업을 찾아내고 이후 해당 기업을 분석해 자산 평가와 정리를 하고 잠재 인수후보와 협상 과정도 중개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올해 상반기 매각 가격이 50억~1천억 원인 국내 중소·중견기업 경영권 매각은 총 67건으로 2조 4,707억 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1조 2,744억 원(46건)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큰 기대는 이르다. 전체 매물 건수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는 인수자의 관심을 끌 정도로 인수가치가 높은 매물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M&A 시장에 중소기업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현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국민들의 인식이나 기업가의 인식도 부정적이고 정부의 규제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도 해외기업을 사들이는 미국기업들에게 미국정부의 높은 법인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장기불황으로 인한 생존형 M&A가 많을 수 있어서 그 결과에 따라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