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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광풍 뒤엔 냉풍' 철저한 시장 논리, 프로야구 FA 경제학

특급 인정 받은 선수에겐 한 없이 훈훈한 FA 시장
현실 파악 제대로 못하고 시장 나왔다간 냉정한 현실에 돌아설 수도

 

프로야구 FA 시장이 잠시 휴장에 들어간 모양새다. 개장 이후 6일 동안 412억 원의 계약이 쏟아지며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었다. 

 

올 스토브리그(프로야구 겨울 이적 및 연봉 시장)서 FA 자격을 신청한 선수는 모두 20명. 이 중 8명의 대형 계약이 이뤄진 뒤 나머지 12명의 계약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냉정한 시장 논리가 적용되는 FA 시장이다. 활발한 매물(선수)에 대한 러브콜은 집중적으로 쏟아지며 자연스럽게 가격(몸 값)이 올라간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매물은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렵다. 오히려 FA를 선언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FA는 철저히 경제 논리로 진행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몸 값은 올라간다. 반대의 경우는 제 값을 받기 어렵다. 

 

오버 페이 논란은 매년 반복된다. 매 스토브리그마다 "지나친 선수 몸값에 발목이 잡힐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지만 매번 시장이 크게 출렁이는 대형 계약은 나오기 마련이다. 자정 목소리 따윈 전력 보강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프로야구 FA시장. 그 속에 담긴 경제 논리들을 찾아가다 보면 시장 경제의 매서움을 들춰볼 수 있게 된다. 

 

◇시장 교란자? 판을 키우면 된다

 

올 스토브리그서 FA 대박 소식은 SSG에서 먼저 들려왔다. KBO리그 최다 홈런 기록을 갖고 있는 최정과 4년 110억 원의 대형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최정의 나이는 이미 3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SSG 구단은 4년을 보장하며 또 한 번의 대박을 안겼다. 최정이 세 번의 FA서 거둬들인 금액만 300억 원이 넘는다. 역대 최고 금액 FA 기록도 최정이 갖게 됐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는 수준이었다. 최정은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갖고 있으며 SSG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타 팀 이적시 쏟아지게 될 비난은 예상 할 수 없을 정도다. 엄청난 몸 값이지만 "그럴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진짜 오버 페이 논란은 한화가 만들었다. 선발 투수 엄상백에게 4년 총액 78억원(계약금 34억 원, 연봉 총액 32억 5000만 원, 옵션 11억 5000만 원)을 쏟아 붓더니 유격수 심우준에게는 4년 50억 원을 안겼다. 

 

엄상백은 이번 FA 시장 최대어로 꼽힌 선수는 맞다. 올 시즌 13승을 거두며 선발 투수로 제 몫을 다했다. 하지만 평균 자책점이 4.88이나 됐다. 수준급 성적이라 보기 어려웠다. 8월 이후 페이스가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특급이라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한화는 주저함 없이 엄상백에게 초거액을 안겼다. 

 

심우준도 마찬가지다. 수준급 유격수라는데 이견은 없다. 하지만 통산 타율이 0.254에 불과한 수비형 유격수다. 아무리 빼어난 수비력과 주력을 갖고 있다고는 해도 50억 원의 몸값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었다. 

 

A구단 단장은 "자기 돈이면 그렇게 썼겠는가. 모기업의 지원이 있으니 그런 돈도 쓸 수 있는 것이다. 시장 논리와 맞지 않다. 너무 많은 돈을 투자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한화가 지나쳤다"고 잘라 말했다. 

 

한화도 반론은 있다. 시장 가치가 치솟는 선수들이었던 만큼 큰 지출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또한 마케팅 효과 측면에서도 FA를 해석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모기업의 도움만으로 구단 운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계권, 광고 판매, 굿즈 판매, 입장 수익 등으로 조금씩 자립적 구단 운영이 가능한 시대로 가고 있다고 항변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올 시즌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팬들의 소비 규모도 커졌다. 입장권 수익과 유니폼 등 각종 굿즈 판매량도 치솟았다. 예전엔 장사 안되는 분야였지만 이제 구단의 든든한 자금원이 되고 있다. 

 

특히 한화는 내년 시즌 신구장에서 경기를 치르게 된다. 1만2000석의 조그만 구장에서 2만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구장에서 첫 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한화 관계자는 "올 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만원 관중이 30차례 이상 들어찼다. 내년에 신 구장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더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그에 걸맞는 성적을 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 전력 보강이 반드시 필요했다. 여기에 신 구장 시대를 맞아 구단의 로고와 BI, 색깔 등을 모두 바꿨다. 새로운 유니폼 및 굿즈 시장이 열린 것이다. 성적이 조금만 뒷받침 된다면 적지 않은 흥행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단의 수익 창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우리가 오버 페이를 하며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매년 나오는 낙동강 오리알

 

모든 선수들이 엄상백이나 심우준 처럼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선수들도 속출한다. 

 

원 소속 구단이 손을 내밀지 않는 선수들은 시장 가격이 폭락하기 일쑤다. 투수 최원태이 대표적인 예다. 최원태는 최근 8년 연속 100이닝 이상을 던진 선발 투수다. 모든 구단들이 선발진을 꾸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원 소속 구단인 LG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최원태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LG는 최원태를 잡는 대신 불펜 투수 장현식을 4년 52억 원에 붙잡았다. 최원태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조건도 주고 받지 않았다. 차근 차근 알아보겠다"고만 말했다. 다른 팀에 가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최원태에 대한 다른 팀들의 관심도 떨어지고 있다. 관심이 아예 사그러든 것은 아니지만 몸 값이 최대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구단들이 대부분이다. 

 

최원태의 통산 성적은 78억 투수 엄상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낳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최원태에 대한 관심은 차갑게 식은 상태다. 기복 있는 성적과 큰 경기에서의 약점, 부실한 워크 에식(훈련 충실도)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은 12명의 선수 중에서도 끝까지 팀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제법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매년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유격수 하주석 또한 좋지 못한 사례다. 

 

하주석은 올 시즌 타율 0.292 1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경기 출장수가 64경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한화에서도 주전 경쟁에서 밀린 선수다. 그런 하주석이 FA를 신청했다. 그러자 한화 구단은 심우준을 영입해 빈 자리를 아예 봉쇄해 버렸다. 하주석을 잡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 하주석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구단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모든 선수들이 에이전트를 두고 있다. FA 시장에선 에이전트 역할이 중요하다. 많은 돈을 받게 이끌어 주는 것이 첫 번째 임무지만 선수의 헛된 꿈을 자제 시키는 것도 에이전트가 할 일이다. FA 시장에서 환영 받지 못할 선수라면 말리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선수들은 현실 파악이 잘 안될 수 있다. 그런 선수들을 현실의 틀 안으로 끌어 들이는 것도 에이전트가 해야 한다. 특급 선수들에 대한 FA 광풍이 지나간 뒤 빠르게 찬 바람이 불고 있다. 냉정한 현실 앞에 많은 선수들이 서 있다. FA 신청은 절대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팀 전력 약화시키는 것도 전략

 

LG는 불펜 투수 장현식을 4년 52억 풀 개런티로 잡았다. 불펜 투수를 성적에 대한 옵션 없이 전액 보장 금액으로 잡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불펜 투수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 해 무리를 하면 다음 해는 쉬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현식에 대해서도 같은 시선이 존재한다. 장현식은 올 시즌 무려 75경기에 출장해 75.1이닝을 던졌다. 이전 두 시즌에 비해 20경기 20이닝 이상 늘어난 수치다. 분명 적지 않은 체력적 부담과 팔의 부담이 생겼을 것으로 예상 된다. 하지만 LG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풀 개런티 계약을 안겼다. 그만큼 장현식에 대한 믿음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도 해석해볼 수 있다. 

 

LG는 매 시즌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다. 당분간 리빌딩 시즌 같은 걸 생각하지 않는다. 우승만이 유일한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장현식 영입은 적지 않는 힘이 될 것으로 예상 된다. 

 

장현식은 올 시즌 우승 팀인 KIA의 핵심 불펜 투수다. 그런 투수를 빼 왔다는 건 KIA의 전력을 약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KIA는 내년에도 LG 등과 함께 우승을 다툴 팀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팀의 핵심 투수를 빼 왔다는 건 두 배의 전력 상승 효과를 꾀할 수 있는 선택이다. 또한 장현식을 노렸던 또 하나의 팀이 삼성이라는 점에서도 장현식 영입은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삼성은 젊은 야수들의 약진으로 타선이 많이 보강 된 팀이다. 약점은 불펜이다. 장현식이 삼성으로 갔다면 대단히 큰 전력 보강 요인이 됐을 것이다. LG는 이마저도 막아섰다. 삼성 역시 내년 시즌 우승을 노리는 팀. 라이벌 팀 전력 보강을 막아냈다는 점에서도 장현식 영입은 신의 한 수 였다고 할 수 있다. 

 

◇FA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

 

FA서 승자가 되는 선수들은 정해져 있다. 리그에서 수준급 성적을 보여준 선수들은 큰 문제만 없다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분수를 잘 파악하고 수준에 맞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롯데와 계약한 마무리 김원중과 불펜 투수 구승민이 좋은 예다. 

 

김원중은 원 소속 구단인 롯데와 4년 54억(옵션 11억 원), 구승민은 2+2년 총액 21억 원에 계약 했다. 둘은 롯데에 꼭 필요한 선수들이었다. 둘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면 롯데는 큰 전력 손실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인기 있는 매물은 아니었다. 들쭉 날쭉한 기량을 보였거나(김원중), 에이징 커브(구승민)가 걱정되는 선수로 꼽혔다. 

 

시장 평가가 높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롯데는 그 수준에 맞는 제안을 했다. 팀이 필요로 하는 만큼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조건을 제시했다. 김원중과 구승민은 오래지 않아 롯데의 제시액에 사인했다. "시장에 나가보겠다"고 큰 소리를 치며 몸 값 상승을 노려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런 페인트 모션을 취하지 않았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욕심에 다 차지는 않겠지만 자신들을 원했던 롯데에 남는 것을 택했다. 

 

한 에이전트는 "올 스토브리그의 진정한 승자는 김원중과 구승민일 수 있다. 자존심과 실리를 챙기면서도 맘 고생을 크게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이 돈 욕심을 지나치게 부리면 FA 시장에서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객관화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에이전트와 협의해 자신의 현재 가치를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FA 시장은 한 없이 폭발력 있어 보이지만 약자에겐 철저하게 억압적인 시장이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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