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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호소력 짙은 보이스로 팬들 사로잡는 가수 이명주

50년 노래 인생을 콘서트로 담아내려고 해요!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그중 노래를 불러서 상대방을 흥겹게 해주는 직업이 가수다. 어디든 부르면 달려가 열정을 노래한다는 가수 이명주. 올 하반기 신곡을 내놓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50년 노래 인생을 담아 콘서트도 열 계획임을 밝혔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변화는 많은 것들을 바꿔 놓고 말았다. 특히 노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여기며 사는 가요계의 변화가 눈에 띈다. 트롯가요도 신세대 가수들로 세대교체가 되면서 기성가수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죠? 실감하고 있어요.(웃음)”


변화의 물결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는 가수 이명주는 그러나 불러주는 곳이 있고 기억해 주는 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내년이면 가수의 길을 걸어온 지 50년이 된다는 이 씨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 같으면서도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다고 했다.

 

가수 이명주는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전주예고에서 국악을 전공했다. 지난 1974년 전주 MBC 전속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 이씨는 두해 뒤인 1976년부터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1987년 ‘당신은 아시나요’라는 곡을 내놓으면서 방송에 데뷔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각 방송국들이 전속 가수를 뽑았는데 경쟁률이 대단했죠.”


어릴 때부터 노래만 부르면 행복했다는 이 씨는 중학교 시절 군산에 있는 군산 최초의 민간 방송국인 서해방송 (SBC 1969년 10월2일 개국)이 개최하는 노래자랑에서 수백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1위에 등극한 저력도 있다. 


“난리가 났었죠. 하춘화 선생님의 ‘물새 한 마리’로 1등을 거머 쥐었으니 동네방네 소문이 나서 노래바람이 완전히 들었죠. 공부는 뒷전이었어요. 노래 부른다고 여기 저기 쫓아다녔으니 부모님 속이 오죽했겠어요. 가수는 안 된다고 반대가 심하셨는데 방문 걸어 잠그고 죽겠다고 버티니까 할 수 없이 허락하 시더라고요.”


판소리로 다져진 독특한 발성법 


무명시절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심청가〉보유자인 성창순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사사받은 가수 이명주는 독특하고도 시원한 발성(發聲)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판소리를 배우면 단전에서부터 소리를 끌어 올려서 노래하게 돼죠. 제 노래를 들은 팬들께서 가슴이 시원해진다고 하시는 데 바로 이러한 발성 때문인 거 같아요.”


호소력 짙은 보이스가 매력인 가수 이명주는 시원시원한 목소리에 맛깔스러운 창법으로 팬들을 사로잡는다. 지난 90년대 내놓은 가수 이명주의 ‘백갈매기(1994년)’와 ‘짐이 된 사랑(1997년)’은 당시 가요방송에서 방송 횟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좋은 가사로 선정되는 행운도 얻었다. 자신만의 특별한 색깔을 만들어내면서 저녁 술시가 되면 전국에서 전화가 빗발칠 정도로 인기를 실감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늘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졌을까? 결코 평탄치 않았던 무명가수 시절 훔친 눈물만 해도 하늘의 별만큼이나 된다는 이 씨는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가시밭길이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다만 말없이 동 행해준 남동생이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가수 이명주의 노래 ‘어머니(2008년)는 남동생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곡이다. 


“사연이 있죠. 이 노래를 부르면 저도 모르게 눈물부터 나니까요.”


누구나 들으면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어머니라는 존재. 이 노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가감 없이 그대로 담아낸다. 절절한 가사 때문일까. 많은 팬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함께 울고 웃는다. 


“몇 년 전 KBS 가요무대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었는데 가사가 너무나 공감된다며 제 손을 잡고 우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한편으론,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묻힌 노래들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하필이면 왜(2001 년)’라는 곡이다. 

 

그 많은 정을 주고 떠나가시면 이 몸은 어찌하나요

이렇게 헤어질 사랑이면 차라리 만나지나 말 것을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처럼 흔적 없는 사랑인 걸

하필이면 내 곁에서 머물다 가셨나요

사랑은 아픔인가요


반면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보고 싶어요」라는 곡이다.

 

‘어디선가 꼭 한 번만 만나고 싶어요~ 가사로 시작된 이 곡은 어디를 가든 잊지 않고 꼭 부르는 애창곡이라고. 무명가수 시절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이 씨는 하루 저녁에 많게는 9곳을 다니며 노래를 불렀는데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그 행복감 때문에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운 좋은 가수 이명주 


사실 이명주 씨는 운이 좋은 가수다. 1987년 가수 하춘화 씨 등과 일본 11개 도시에서 순회공연도 다녀왔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무명시절이었다.


“우리와 일본이 문화교류 차원에서 한국 가수들을 초청해서 행사를 했어요. 하춘하·김부자·오승근 이렇게 세분이서 가기로 돼 있었는데 포스터에 하춘화 선생님 얼굴만 대문짝만 하게 나오니까 기분이 나쁘셨던 것 같아요. 안 가겠다고 하시니까 민요와 가요를 부를 수 있는 가수를 급하게 섭외했어요. 운 좋게도 제가 뽑혔던 거죠. 정말 대성공이었어요. 11개 도시의 공연 장마다 관객이 빼곡히 찼으니까요. 일본의 국민적 가수 미야 코 하루미 씨와의 인연도 그렇게 맺어진 것이죠.”

 


재능기부와 봉사활동도 적극 


사회봉사단체인 한국연예인한마음회 회원이기도 한 이명주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여러 봉사활동에 동참한다. 범죄예방(연예인분과위원), 환경보호(연예인협회회원) 등 활동 범위도 다양하다. 문화관광부 장관상과 재능기부를 해서 받은 공로상은 그 의미가 크다. 


가수 인생 50년, 보람과 아쉬움은 없을까? 


“다시 태어나도 노래하는 가수가 될 겁니다. 슬프면 슬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어디를 가든 위로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의 취미는 다도(茶道)다. 집 안에 차방을 만들어 놓고 찾아오는 이들과 차를 마시면서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눈다. 이명주 씨는 다도를 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힐링이 된다며 기자에게도 적극 권했다. 가수로 무대 위에 서면 관객을 휘어잡는 열정의 에너지는 그러한 정신수양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인터뷰라기보다는 거리낌 없는 대화를 두어 시간 나눈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또 만나야죠?”라며 웃음으로 훗날의 만남을 기약했다. 50년 노래와 함께 걸어온 가수 이명주의 신곡이, 그리고 콘서트가 기다려진다. 나에게도 초대장을 보내올 거라는 그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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