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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건희 회장 별세 …그가 말했던 ‘신경영’

- 10월 25일 향년 78세로 별세
-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
- “처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20년 앞서는 선견지명 보여
- 백혈병 노동자·자동차 사업 실패·경영권 승계·무노조 등 과(過)도

 

[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25일 별세했다. 이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에 취임한 뒤 그룹을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이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내놓은 ‘신경영’ 선언은 지금의 삼성을 있게 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은 신경영을 대표하는 표현이면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이 회장의 결단이었던 셈이다. M이코노미는 생전 이건희 회장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통해 그가 말한 신경영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봤다.

 

신경영의 출발은 ‘변화’

 

1993년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 신경영실천위원회는 ‘삼성 新經營’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회장이 신경영을 시작하면서 했던 말을 정리한 것으로 사내 직원들에게 교육용으로 제공한 책이다. 이 책에는 이 회장의 ‘신경영’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 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3개월 뒤 나온 이 책에서 이 회장은 ‘변화’ 또다시 강조했다. 세기말을 앞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데 착각과 자만에 빠져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당시 진단이었다. 이 회장은 “과거 우리는 사업을 일으켜 겉으로는 망해 본 적이 없었으며 항상 제일주의를 지켜왔다”면서도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국내판이었다”라고 했다. 이 회장은 “질 분석해 보면 실제 1등이 아닌 것”이라며 “우리는 자기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커다란 착각에 빠져 있다”라고 했다.


이 회장은 변화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데 “‘변하자’는 것은 그동안 그룹에 만연해 온 양(量)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 ‘나 자신’부터 질(質)위주로 철저히 변함으로써 우리 18만 삼성 가족이 모두 힘을 합쳐 21세기 초일류 기업을 이루고 ‘질 높은 삶’을 누리자고, 여러분을 향해 외치는 간절한 호소”라고 적었다. 또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나 자기 자신”이라며 “나 자신부터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게 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책에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있던 그날을 ‘삼성이 새롭게 태어난 날’로 규정했다. 이 회장은 “국가 전체를 우리 뜻대로 바꿀 수가 없는 것이고 보니 삼성만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또 삼성을 2류라고 진단했고, 그대로 있으면 3류, 4류로 가고 망할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래서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바꿔야 하고, 바꾸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하겠다고 시작한 것이 프랑크푸르트 회의”라고 했다. ‘처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삼성헌법’을 지켜 초일류 기업으로

 

결과적으로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변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변화는 나부터 시작해야 조직이 변할 수 있는데 급변하는 국제 경쟁 사회에서 그래야 살아남을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책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삼성헌법’이다. 이 회장은 변화가 시급한 과제는 인간미와 도덕성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인간미, 도덕성, 예의범절, 에티켓 이 네 가지를 ‘삼성헌법’이라고 명명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이 삼성헌법을 ‘한 방향’으로 지키자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나부터 변하자. 인간미·도덕성을 회복하고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철저히 지키자. 개인의 질 높은 삶을 출발점으로 초일류 기업을 향하여 한 방향으로 가자”라며 “이것은 바로 삼성의 개혁”이라고 했다.

 

이 회장이 나름의 ‘헌법’까지 만들면서 삼성을 이끌고자한 이유는 바로 초일류 기업 실현에 있었다. 이 회장은 초일류 기업을 단순히 돈 많이 버는 회사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 회장은 초일류 기업에 대해 “인제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서 인류사회에 공헌해 보자는 것”이라고 썼다. 즉 “개인 생활의 질에서부터 시작해 상품의 질, 조직의 질, 회사의 질, 국가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최상의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업, 이런 기업이 내가 생각하는 초일류 기업”이라고 했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이 회장이 생전에 사내 교육용 서적 이외 대중을 대상으로 출판한 책은 딱 한 권이 있다. 지난 1997년 동아일보사에서 나온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에세이집이다. 회장 취임 10년째 되던 그해 일간지에 연재한 글 100여 편이 담겨있다.

 

이 책에도 이 회장의 신경영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서 언급한 사내 교육용 책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이 책에선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은 물론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자로서의 이 회장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회장은 새롭게 바뀔 패러다임을 예견했는데, 그는 “디지털 기술은 사회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사고방식까지도 변화를 요구한다. 여기에 적응
하지 못하면 개인도 국가도 살아남지 못한다”(디지토피아)라고 강조하는 한편, “업의 개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누가 먼저 정확하게 변화하는 업의 개념을 잡느냐가 기회 선점의 관건이다”(만들지 않는 제조업)이라고 적었고, “디자인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수가 될 것이다”(디자인이 결정한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 회장이 말한 것들이 오늘날 삼성과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미국 애플사가 대부분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이 외에도 이 회장은 “앞으로는 공해 없는 기업, 지구와 자연을 해치지 않는 기업, 인류에 해가 되지 않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공해를 배출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후손에 대한 범죄 행위다”(환경을 생각하는 녹색 경영)에서 그린뉴딜을, “오늘날 자동차는 부품가격으로 볼 때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물론 누구도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그때 가면 아마 전자기술,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자동차는 전자제품)에서 지금의 자동차 시장을 예견했다.

 

특히 이 책에서 이 회장은 자신의 이른바 ‘정치는 4류 발언’에 대해 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 회장은 1995년 4월 베이징에서 특파원들과의 오찬 기자간담회를 가지며“행정력은 3류급, 정치력은 4류급, 기업경쟁력은 2류급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회장은 “정부는 행정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 정권 들어서고 나서도 크게 완화된 게 없다. 자동차 허가도 부산시민이 반발하니까 내준 것뿐”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북경(北京)발언 유감’이라는 글을 통해 당시 중국 지도부와 만나며 “일본은 이미 겅제대국으로 자리 잡았고, 중국도 지도부가 앞장서서 경제 발전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데, 우리 행정과 정치는 아직도 규제와 권위주의라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국민·정부·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열심히 노력해야 하며, 국가 경영도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것이 간담회의 요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내 심정을 나타낸 것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이 있다는 말이었다”라며 “발언의 취지와 의도는 덮어둔 채 마치 정부를 비판하고 정치권을 매도하는 내용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파문이 일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라고 토로했다. 이 회장은 “21세기가 불과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라며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정치, 행정, 언론, 기업이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당시 청와대는 불만을 쏟아냈고 이 회장의 발언은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 100억 원을 전달한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선고받으며 부
메랑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백혈병 노동자 문제·자동차 사업 실패

 

이처럼 이 회장은 분명 두수 세수를 앞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공허한 말에 불과했던 경우도 많았다. 이 회장은 ‘여성 없이 미래 없다’라는 글에서 “앞으로 여성의 역할이 늘고 파워도 강해진다. 몇 년만 지나면 여성 인력 중에서 경영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여성 인력 활용이 선진국의 척도가 된다”라고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를 가져다 놓으면 이 회장의 이런 발언은 힘을 잃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LCD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암 등으로 인한 피해자는 2007년 고 황유미씨 사망 이후 총 229명의 제보자와 79명의 사망자로 기록된 상태다.

 

피해자들은 삼성과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외롭게 싸웠고, 2018년 11월 삼성이 조정위원회의 최종 중재 내용을 결국 받아들이고 나서야 투쟁을 끝낼 수 있었다. 자동차 사업 역시 회장의 선견지명이 빗나갔다. 이 회장은 자동차 사업 진출을 오랫동안 고심했다. 일각에서 자동차 마니아인 이 회장의 기호가 반영돼 자동차 사업에 진출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그리고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자동차 사업은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며 “삼성이 70년대 전자산업, 80년대 반도체 산업으로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듯이, 90년대에는 자동차 산업을 일으켜 21세기 국가 중흥에 앞장서야 한다”(자동차 사업에 거는 기대)라고 했다.

 

이 회장은 “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 세계 웬만한 자동차 잡지는 다 구독해 읽었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 경영진과 기술진을 거의 다 만나봤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10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해왔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회장은 결국 자동차를 포기해야 했다. 1997년 터진 외환위기로 삼성그룹은 이듬해 구조조정을 해야 했고 삼성그룹 계열사는 65개에서 45개로 줄었다. 그러면서도 1998년 3월 닛산 맥시마의 설계와 라이센스를 사들여 만든 첫 양산 모델 SM5를 출시했다. 하지만 삼성자동차는 차 한 대를 팔 때마다 150만 원의 손실이 나던 사업체였고, 삼성자동차는 1년 3개월 만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채권단에 증여하며 삼성자동차를 포기했다. 삼성자동차는 2000년 르노에 인수됐다.

 

‘산경영’은 이루고 떠나
 

이건희 회장의 생각과 말들을 정리한 글들을 보면 국가와 민족에 대한 걱정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불신을 자주 드러냈고, ‘노동’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
들었다. 이 회장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많이 했지만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2008년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조성 의혹 폭로로 경영권 편법승계에 이용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배임), 조세포탈 등의 혐의를 받으며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끝까지 고수했던 ‘무노조 경영’은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체제에서 삼성그룹 노조가 설립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분명하다. 공도 많고 과도 많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 회장 별세 후 “고인께서는 고비마다 혁신의 리더십으로 변화를 이끌었고, 그 결과로 삼성은 가전, 반도체, 휴대폰 등의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라고 평가한 뒤 “그러나 고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조세포탈, 정경유착 같은 그늘도 남겼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앞선 책 ‘삼성 신경영’에서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힘들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이룩하여 후세에 넘겨주어야 할 지고의 가치이자 목표이다. 나는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 나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명예를 다 바칠 것을 분명히 약속한다”라며 글을 마쳤다. 이 회장은 적어도 자신이 약속한 ‘산경영’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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