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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00원을 1환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은 무엇?

-화폐 액면가 일정 비율로 낮추는 것…2015년 상반기 증시 관련 자금 1경1,134조원
-경제 규모 세계 11위이나 화폐 가치 200등 수준…“국격에 맞는 화폐 제도 갖춰야”
-“인플레이션? 낮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부담 낮아져”…발생 비용? 경제 활성화 효과
-신용카드 결제, 현금 결제의 두 배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 중…“굳이 필요한가?”
-“당장 리디노미네이션보다 통일·글로벌 화폐 등 미래 화폐 제도에 대한 고민 필요”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올해 3월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국은행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으로 ‘리디노미네이션’, 즉 ‘화폐단위 변경’이 금융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슈가 되자 이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바도, 추진계획도 없다”며 추진 가능성을 일축했고, 홍남기 부총리도 나서 이 총재의 말에 힘을 실었지만, 이를 둘러싼 세 간의 관심은 여전히 높다. 하지만 정확한 정보가 없고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아 ‘리디노미네이션이 이뤄지면 통화·예금이 동결되기 때문에 달러나 금을 사둬야 한다’, ‘돈의 가치가 평가 절하된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효과가 있다’는 등 각종 괴담과 가짜뉴스, 심지어는 ‘화폐개혁(통화개혁)’이라는 전혀 다른 개념이 혼재돼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카페나 음식점을 가보면 가격을 표시하는 데 있어 6.0, 12.0 등 1,000단위 숫자를 생략한 표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가계부 작성이나 회계업무에서 1,000단위에 대해서는 ‘0’을 표시하지 않고 ‘-’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도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이뤄지고 있는 ‘리디노미네이션’의 모습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국내에서 통용되는 모든 지폐와 주화의 실질 가치는 그대로 둔 채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로 낮추거나 새 통화 단위로 바꾸는 것, 곧 ‘화폐단위의 절하’를 의미한다.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는 이유는 경제성장과 물가상승 등 으로 경제 및 금융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발생하는 불편을 줄이는 한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억제하고 자국 화폐의 대외 위상 제고, 대금결제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반면, 화폐단위 변경에 따른 국민적 불편과 불안심리 확산, 새로운 화폐 제조 및 각종 시스템 교체에 따른 막대한 비용, 검은 돈 확산 가능성 등의 단점도 있다. 장점은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나타나지만, 단점은 짧은 기간에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도 요구된다.

 

그럼에도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이유는 한국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국가 위상이 높아진데 비해, 우리 화폐제도는 1962년 화폐개혁 이후 거의 그대로 멈춘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하면 그에 맞춰 옷을 바꿔주듯 나라가 성장하고 덩치가 커졌으니 그에 맞는 화폐 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5년도 국정감사에서 내놓은 ‘리디노미네이션, 지금이 적기다’ 정책 자료집에서 “2008년 기준 명목 GDP는 1962년 대비 약 3,024배(1962년 3,386억원 → 2008년 1,024조원), 소비자물가(2005년=100)는 1965년 대비 약 31배(1965년 3.5 → 2008년 109.7) 증가되는 등 마지막으로 화폐단위가 변경된 1962년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과 높은 물가상승 등으로 경제 및 금융거래 규모가 매우 큰 폭으로 확대됐다”면서 “또한 2015년 상반기 증시 관련 자금 규모가 무려 1경1,134조원이었고, 2014년 한국은행 금융망을 이용한 원화 이체만 해도 6경원이 넘었다. 어질어질한 숫자고, 국제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울 만큼 단위가 크고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세계 11등이지만, 화폐 가치는 200등에 가깝다. 1달러에 환율이 네 자리를 넘어가는 나라는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정도에 불과하다”며 “화폐와 경제 현실 간의 괴리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조속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경원은 1조원의 1만 배로, ‘0’이 16개다.
 

박승 전 한은 총재 “‘0’ 3개 떼어 내는 것일 뿐”
 

가장 최근 한국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이 논의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세워진 때는 2004년이다. 한국은행은 리디노미네이션을 포함한 화폐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TF팀을 꾸리고, 관련 내용 검토 및 계획을 수립하는 등 구체적인 추진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5월13일에는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화폐개혁,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정책 토론회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첫 공론화의 장으로, 이원욱·최운열·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명재·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모두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이 자리에서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기본적으로 1,000원을 1환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3,920원은 3환92전이 되는 것”이라며 “화폐단위 변경은 ‘0’ 3개를 떼어 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국민을 설득하는데 가장 좋다”고 말했다. 또한 “신권과 구권을 1년 동안 동시 통용시키면서 신·구권의 가격 동시 표기를 의무화해 국민 인식 속에 구권과 신권의 ‘1,000대 1비율’이 반영, 습 관화되도록 하고, 돈을 바꿔 줄 때는 금액과 기간에 관계없이 무제한·무기명으로 바꿔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재는 2002년 한은 총재로 재직할 당시 화폐단위 변경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한국은행 내에 ‘화폐제도 선진화 추진팀’을 꾸려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 화폐는 지질이 나쁘고, 돈이 너무 커 선진국 사람들 지갑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위·변조가 쉬웠고, 고액권이 없는 등 화폐 제도가 후진적이었다. 그래서 화폐를 선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러던 중 당시 중국 중앙은행 총재로부터 ‘한국처럼 선진국이고 모든 것을 잘하는 나라가 왜 달러 환율이 1,000대 1이냐,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외국 중앙은행 총재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고, 화폐단위를 1,000 대 1로 바꿔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리디노미네이션 기대효과 5조원 이상 …인플레·비용은 관점의 문제

 

이후 정부는 지폐의 크기를 줄여 새 돈을 찍어냈고, 2009년에는 국회 주도로 5만원권이 발행되는 등 우리나라 화폐 제도에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당시 정부는 인플레이션 우려와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동의하지 않아 리디노미네이션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한은은 자금 관련 업무처리 간소화 등 무형적 비용 절감 효과 최소 2조원에, 자기앞수표 발행과 교환 및 보관 등을 위해 시중은행들이 연간 6,180억원 상당의 관리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5년 동안 약 3조원 규모의 경비를 줄일 수 있어 총 5조원 이상의 기대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게 되면 화폐 관련 지출비 용이 2조원에서 2조5,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대해 박 전 총재는 “현재 우리 경제로서 비용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비용은 투자고, 일자리”라며 “화폐단위 변경으로 발생하는 새 돈 인쇄비, 결제 시스템 변화, ATM기 교체 등이 갖고 오는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 따라서 이것을 비용 측면에서만 볼 것이냐, 경기적 측면에서 볼 것이냐에 대해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는 “당시 유로화를 조사한 결과 물가가 0.3%p 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약간의 인플레이션 효과가 있을 수 는 있다”면서도 “이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볼 것이냐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해서는 “아무나, 언제나 돈을 갖고 오면 바꿔주는 것이기 때문에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통해 자금을 빼내려고 한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치적 목적’의 두 차례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국민적 트라우마 남겨

 

당시 정부가 리디노미네이션에 상당히 신중한 모습을 보였지만, 우리나라는 과거 두 차례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1953년 2월과 1962년 6월에 추진된 제1·2차 통화개혁이 그것이다. 지금껏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적 목적의 리디노미네이션은 모두 실패했다.

 

배영목 충북대학교 교수의 ‘우리나라 통화개혁의 비교 연구 (2010년)’에 따르면 1953년 제1차 통화개혁은 UN대여금 상환과 외국의 원조 증대라는 당시의 현안을 해결하는 동시에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실시됐다. 당시 정부는 통화개혁을 통해 물가안정을 달성할 의지를 보이면 외국 원조의 증대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하에 화폐 단위의 호칭을 ‘원’에서 ‘환’으로 바꾸고, 100 대 1(100원=1환) 비율로 화폐 액면가를 낮추는 한편, 구통화 표시 화폐와 예금 등을 동결, 신권으로의 교환을 제한했다.

 

제2차 통화개혁은 재정·금융확장 정책에 의해 누적된 과잉 통화를 흡수하고 퇴장자금을 끌어내 경제개발계획에 필요한 산업자금으로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다. 역시 정치적 목적의 리디노미네이션이었다. 화폐단위는 ‘환’에서 다시 ‘원’으로 변경됐고, 액면가 비율은 10 대 1(10환=1원)로 낮췄다. 제2차 통화개혁은 제1차 통화개혁에서 봉쇄 대상이 아니었던 1년 미만의 저축성 예금까지 봉쇄하는 등 더 광범위 하고 강력하게 설계됐지만, 정부가 기대했던 퇴장자금의 산업자금화와 통화개혁에 따른 신용경색 및 경기 위축의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배 교수는 “두 차례의 통화개혁은 예금 동결을 핵심적인 정책수단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신용경색과 생산과 유통의 위축부터 초래했다”며 “또한 그 충격이 민간부문에 집중됐기 때문에 민간의 경제활동이 통화개혁으로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반면에,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은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아 그 효과도 작고, 통제의 실효성도 작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경제 내 불균형은 더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화개혁에서 예금 동결이 단기적으로 금융 실물부문에 주는 충격은 물론 그 교란이 심각하기 때문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전개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이 정책수단은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불가피한 경우라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처럼 과거 두 차례의 통화개혁은 국민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박 전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 자체보다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깨는 일이 더 어려웠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과거에 화폐개혁을 두 차례 하면서 돈을 바꿔줄 때도 모두 바꿔준 것 이 아니라 70%만 바꿔주고 30%는 동결했다. 그리고 실명으로 바꾸게 함으로써 누가 돈을 바꿨는지 다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굉장히 큰 고통을 겪었고, ‘무조건 반대’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며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민 여론을 듣고 공개적으로 추진해 국민이 갖는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디노미네이션, 과거 통화조치와는 구분되는 것

 

관련해서 임동춘 국회 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은 현 화폐에 대한 ▲강제 환수 ▲화폐교환 제한 및 예금 동결 등의 비상조치가 수반됐던 통화조치와는 구분되나, 현재 ▲평가절하 ▲디벨류에이션 등 과거 통화조치에서 이것이 병행된 사례가 많아 일반인들은 물론 경제학자들도 헷갈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임 팀장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이뤄졌던 통화조치와는 달리 공개적인 국민 여론 수렴과 수년간의 홍모 및 준비 기간을 거치는 등 투명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거치고, 예금봉쇄 및 화 폐교환 제한조치가 없으며, 고인플레이션 악순환 단절을 위한 후진국형이 아닌 물가가 안정된 선진국형 화폐 제도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실제로 많은 뉴스 보도에서 전달되는 내용 중 오도된 것들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론화되면서 지식이 많이 공유될 필요가 있다. 또한 리디노미네이션은 1년, 2년으로 끝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08년 우제창 당시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던 ‘화폐기본법(임기만료 폐기)’은 새 화폐단위를 ‘환’으로 규정하고 액면가 비율을 1,000 대 1(1,000원=1환) 으로 하며 2010년 1월1일부로 시행, 구권 교환 기간을 10년 (2020년 12월31일까지)으로 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
 

만약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이 결정된다면 국회에서는 ‘한국은행법’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리디노미네이션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그러는 사이 정부는 ▲새 화폐 제조 및 보관·현송 ▲구화폐 회수 및 폐기 ▲회계 처리 및 지급 결제 관련 전산시스템 변경 ▲새 화 폐 이용 가능한 현금취급기기 개체(改替) 등 사전 준비에 들어간다. 임 팀장은 여기에 최소 3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사전 준비와 법 개정이 완료, 시행되면 새 화폐가 국가 통화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고, 모든 채권과 채무, 재화, 서비스 등 일체의 금액은 새 화폐단위로 표시된다. 다만, 새 화폐의 조기 정착, 신·구 화폐의 혼용에 따른 국민 혼란 방지 등을 위해 일정 기간 신·구 화폐가 병행 통용되고, 물품 가격도 신·구 화 폐단위로 표시하는 이중표시제가 실시된다. 신·구 화폐의 교환은 기간이 설정되지만, 교환 기간이 지나도 한국은행 창구에서는 교환업무를 계속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서 이뤄져야 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 다. 경제학자나 전문가들도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려면 ‘국민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고,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78년부터 리디노이네이션에 대한 논의가 정계 일각에서 계속 이뤄졌고, 1998년 6월부터는 의회를 중심으로 엔화 단위를 100 대 1로 낮추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국민적 합의가 모아지지 않아 시작도 하지 못했다. 당시 일본 의회는 ▲엔화 강세로 엔·달러 환율이 100엔 선까지 내려갔다는 점 ▲달러화와 1 대 1 가치를 가진 유로화가 새로 출범했기 때문에 국제통화로서 엔화의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 ▲내수회복과 생산증대를 통해 일본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왜 해야 하나? - ① 현실 속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어
 

리디노미네이션은 왜 해야 할까?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카페나 식당 등에서 가격을 간단하게 표시하는 등의 모습으로 그 필요성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제도에서 오는 불편함과 변경의 필요성을 경제주체들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가 전혀 바뀐 것이 없는데도 경제주체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뭔가 불편하고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정치권이나 제도권, 행정부는 이것에 대해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살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 연구위원은 “가장 우려를 낳는 것이 우수리 문제로 인한 물가상승이다. 가령 1,000원을 1환으로 변환하는 경우 950원이던 과자가 1환이 되거나 9,500원이던 피자 가격이 10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작은 화폐 단위를 일일이 반영하지 않으면서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을 과거 유로화 출범 시 유럽에서도 나타났다”면서도 “눈여겨봐야 할 것은 최근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압력이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 번도 전년 대비 0%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6%에 불과하다. 여전히 1%에 미치지 못한다. 한은의 물가 상승률 목표치는 2%”라고 말했다. 결국 과거에 비해 물가상승에 대한 부담이 낮아졌다는 점은 리디노미네이션 시 우려되는 환경적 부담이 완화됐다는 주장이다. 우수리란 일정한 수나 수량에 차고 남는 수나 수량을 말한다.

 

또한 “ATM기도 바꿔야 하고, 새로운 화폐도 찍어야 하고, 금융기관 전산시스템도 바꿔야 하는 등 많은 비용이 수반 되는데, 경제학적으로 보면 어떤 주체의 비용은 그 반대 측의 수익”이라면서 “매출과 투자가 생기고, 고용이 생길 것이다. 즉, 경제부진 상황에 빠져 있는, 점점 그쪽으로 가고 있는 우리 경제 흐름을 감안하면 이것이 단지 마이너스만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건비가 오르고 경 단위 숫자가 나오는 우리 경제 안에서 회계 처리와 거래 등을 전산에 입력하는 시간에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조 연구위원은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해 제기되는 우려와 반대 주장 모두 일리가 있지만, 이를 큰 혼란 없이 이뤄낸 나라도 있다”면서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고 배워 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제도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보완해나가고 경제 주체에 대한 신뢰, 시간적·경제적 비용을 감안한다면 그 시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해야겠지만, 우리는 경제 쪽으로 접근하는 만큼 그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왜 해야 하나? - ② 언젠가는 할 일, 제도 보완해서 시작해야

 

리디노미네이션이 말하는 또 다른 찬성 이유는 이것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니 지금부터 준비해서 가급적 빨리 시작하자는 주장이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코노미스트는 “‘짜장면’ 을 기억할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짜장면’이라고 하는데, 방송 등에서는 ‘자장면’이라고 해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결국에는 2015년에 ‘짜장면’도 표준어가 됐다”면서 “만약 지금이라도 제도 등의 변경을 시작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원화 자체에 대한 신뢰도 상당히 낮아지는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수리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는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되고 나서 2~3개월 정도 물가상승이 조금 있었는데, 그 원인을 보면 화폐단위를 변경해서 물가가 올랐다기보다 유로화가 도입될 것을 기대하고 물가를 올리지 않고 있다가 도입 후 한꺼번에 올려서 그렇게 보였다 는 분석이 잇따랐다”며 “단위 변경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왜 하지 말아야 하나? - ① 사회적 비용·부작용 과다

 

반면, 리디노미네이션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이 과다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는 입 장이다. 만약 꼭 해야 한다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위해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이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0’이 많다고 하는데, 그 원죄는 ‘전(錢)’이 없다는 것이다. 달러 화를 보면 달러가 있고, 센트가 있다”면서 “그렇게 보면 100원을 1달러로 한 화폐개혁 이후 50~60년 동안 우리 돈은 사실 10배 정도 올라간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데, 우리 화폐에서 ‘전’이 없기 때문에 ‘0이’ 많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즉, 인플레이션이 너무 빨리 진행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학자가 볼 때는 ‘0’을 없애든 붙이든 큰 문제는 없다. 우리나라 화폐가 0이 없으면 국격이 올라간다거나 0.0001로 하면 나라가 잘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며 “더 큰 문제는 균일하지 않은 재화의 가격 조정에 따른 소득 재분배 효과”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장사가 잘되는, 협상력이 높은 업체는 5,200원짜 리 물건이나 음식을 6.0환으로 올릴 수 있고, 협상력이 낮은, 시간당 6,800원짜리 임금을 가진 사람들은 6.0환이 될 수 있 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메뉴를 다시 쓸 때 가격변화가 일어난다고 얘기하는데, 그것이 대부분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면서 “화폐의 기능 중 하나가 ‘가치의 단위(Unit of account)’로서 세분화하는 것, 즉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있다는 것인데, ‘0’을 떼기 위해 올림이나 내림, 반올림하는 과정에서 손해 보는 사람들과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과연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얘기하는 소득 재분배의 방향과 일치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 5만원권을 발행할 당시 제기됐던 것처럼 ‘검은돈’ 유통이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만약 1,000원 을 1환으로 하면 어쨌든 화폐단위가 지폐에서 4~5가지는 있어야 한다. 1환까지, 10환짜리 두 개만 만들어놓고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10환이면 현재 1만원이고, 50환이면 현재 5만원, 100환이면 10만원이다”며 “결국 고액권 발행에 따라 자산의 사장이 용이해지고 검은돈의 유통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돈만 찍어내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계약서를 다 바꿔야 한다. 5,000만원을 꿨다면 5만원 꾼 것으로 계약서를 변경해야 한다. 그 사회적 비용이 적지만은 않다”면서 “여러 가지 비용을 고려하고, 그래도 ‘0’이 많은 것이 불편하고 좋지 않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왜 하지 말아야 하나? - ② 요즘 누가 현금 쓰나?…화폐개혁, 글 로벌 흐름 속에서 생각해야

 

리디노미네이션을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는 현금을 쓰지 않는 사회, 즉 ‘현금 없는 사회’에서 화폐단위 변경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 세계 및 한반도 상황 의 변화에 따라 향후 두 번의 화폐개혁의 기회가 올 것인 만 큼 지금은 그때를 위한 준비를 할 때지, 리디노미네이션을 추 진할 때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최양호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은 “카페나 음식점에서 가격 표시를 5.0, 6.0 이렇게 표시하는 것을 얘기하는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결제를 카드로, 현금을 안 쓴다는 것이다. 환전도 얘기하지만, 요즘 누가 해외 나갈 때 환전을 하나? 나가서 카드 긁는다”며 “지금은 화폐단위 변경 등의 적기가 아니고, 예고된 두 번의 화폐개혁에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고문은 “적기론(리디노미네이션 찬성)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물가상승 부담이 축소된다는 부분인데, 박승 전 총재가 2004년도에 적기라고 했던 근거와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것이 똑같다. 물가가 굉장히 안정적이기 때문에 적기라는 것”이라면서 “이것이 이유였다면 지난 15년간 됐어야 하는데,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물가는 적기의 이유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 환경이 어렵고 외국인 투자가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 도가 낮고, 불안정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이 리디노미네이션의 적기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며 “정치와 경제가 얼마나 안정되느냐에 따라서 화폐단위 변경은 성공 여부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정치·경제적 상황은 리디노미네이션의 적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최 고문은 한반도에는 필연적으로 두 번의 화폐개혁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그에 대비한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 두 번은 ‘남북통일’과 가상화폐·현금 없는 사회· 디지털 결제 등 ‘글로벌 화폐’의 등장이다. 그는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현금 결제의 두 배에 육박하는 등 우리 사회 는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화폐가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또한 한반도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남북통일이 되면 2체제로 가더라도 종국에는 단일화폐를 써야 한다. 다음에 ‘글로벌 화폐’로 가는 흐름에서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화폐 제도는 어떤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주변은 날씨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가 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 고문은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지하경제를 양성화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지하경제는 그 규모가 2~45%까지 있다. 수치 하나 바꾸면 변하는 것이 지하경제 규모”라며 “하나 확실한 것은 지하경제라고 해서 쌓인 부를 분석해보니 현금은 6%밖에 안 됐다. 나머지는 다 자산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리디노미네이션이 지하경제 해소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왜 하지 말아야 하나? - ③ 성공한 사례가 없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 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홍 이코노미스트는 G20, OECD 회원국 중 지난 15년간 유일하게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 터키를 예로 들었다.

 

 

임동춘 팀장에 따르면 터키의 경우 1975년 시작된 경제위기와 1980년대 가속화된 인플레이션 때문에 리라화의 대외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가장 낮은 화폐단위가 5만 리라였고, 가장 큰 화폐단위가 2,000만 리라였는데, 2,000만 리라로 영화표 4장을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터키는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추세를 확인한 후 리라화 단위를 100만 대 1 비율로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했는데, 2004년 1월31일 관련법을 공포 하고, 1년 뒤인 2005년 1월1일 이를 시행했다.

 

홍 이코노미스트는 “5월12일자 기준 터키의 은행 간 금리가 25.5%다. 사실상 외환위기 중”이라면서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해 지속적으로 환율이 급등하는 가운데, 글로벌투자 자본들이 터키에서 빠져나가고 있어 그 자본을 묶어주기 위해 정책금리를 25%까지 올리는 상황이다. 이전에는 5%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시장으로부터의 ‘낙인효과’를 우려했다. 그는 “화폐단위 변경이든 화폐개혁이든 한 나라들이 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선진국이며 국가 경제 전체 차원에서 뭔가 잘 돌아가는 나라가 한 사례가 있느냐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 나라 왜 화폐개혁 하지? 무슨 문제가 있나 봐?’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이 더 무섭다. 화폐단위 변경 논의 자체가 글로벌 금융시장 참여자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몇 위인가 등 다른 나라로부터의 평가에 예민하고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트라우마 문제도 지적했다. 홍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는 1950~1960년대 있었던 화폐개혁으로 경제주체에 상당한 트라우마를 줬다”면서 “최근 인도가 추진한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해 전(前) 미경제분석국에 있었던 한 이코노미스트는 ‘심각한 현금부족사태로 미 연준이 마치 연방기금 금리를 200bp, 2%p 인상한 것과 같은 경제적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트라우마가 재생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 발권국장 “언젠가는 해야 하는 문제”
 

이처럼 찬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한은은 언젠가는 해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운섭 한은 발권국장은 “언젠가는 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10여년 이상 진행을 해왔던 것”이라며 “다만, 추진하는 과정에서 2004년에 한 번 했을 때 제대로 진도가 안 나갔던 경험이 있어 지금은 국회에서 얘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하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이런 논의가 당사자가 한 번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저희가 역할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해를 해줬으면 한다”면서 “나머지 내용에 대해서는 잘 숙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취지가 좋아도 그것을 추진하는데 있어 방법이나 시기 등을 잘 맞추지 못해 나타나는 심각한 부작용을 우리 사회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제도와 각 경제주체 간 이해관계 조정 등 실질적 합의가 이뤄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는 제도 시행 전 어느 정도 예상이 됐었다.

 

반면 리디노미네이션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에 우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여러 순기능과 역기능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부작용과 문제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도 안정적이지 않고, 정치적 상황 역시 불안하기만 하다.

 

많은 경제학자와 전문가들의 말처럼 리디노미네이션을 포함한 화폐제도의 변화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예상되는 화폐의 위상 속에서 우리의 화폐제도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지를 먼저 고민하고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화폐개혁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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