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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 해답 아니다

구조개혁 철학부터 세워야

 

최근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혁하겠다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정책적으로 현실화 수순을 밟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에는 동의하지만 방법론적으로 정규직 고용안정성을 완화하는 방안에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노동계도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어떻게 추진해야 되는지 대해 짚어봤다.

최 부총리,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해야


지난해 11월2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한 정책세미나에서 “정규직이 과보호를 받다 보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기업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는 상황"이라면서 ”60세 정년 보장이 정규직 과보호의 한 사례”라고 발언했다. 이어 12월3일에는 경제인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면서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고임금, 고복지에 대한 다소간의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기업임금 총량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정규직을 새로 뽑을 수 없다”면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적절한 양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 직후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는 하향평준화’라는 비난이 일자 정규직 해고보다는 정규직 임금이나 근로시간의 경직성 완화 쪽으로 방향을 돌린 듯 했다. 그러나 경제관련 연구기관들은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해고 관련 규정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하며 최 부총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고용구조개혁 차원에서 노동시장 유연성과 안정성 제고를 위한 종합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고 노사정위 논의를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에 따라 지난 달 29일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대책의 주요 내용으로는 ▲정규직 해고 가이드라인 마련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 ▲35살 이상 비정규직 최대 4년으로 연장 ▲정규직 전환 시 임금인상액 50% 지원 등이 포함됐다. 이에 앞서 같은 달 23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정부 서울청사에서 제87회 본위원회를 갖고 비공식자리에 서 합의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5대 방향’ 합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노사정위는 “이 합의문은 상호 동반자적 입장에서 노사 간 및 현세대와 미래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시각과 노동시장 현실에 대한 책무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과 부담을 나눠가진다는 원칙의 합의”라고 밝혔다. 노사정위는 이 합의문에 따라 올해 3월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문제, 사회안전망 정비 등 3대 우선과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사정위에 참가하지 않은 민주노총은 “이날 합의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위한 억지 명분과 정치적 발판을 제공하는 목적”이라며 “이는 노동시장 전체의 고용불안과 임금삭감 등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밀어붙이려는 정치적 술수”라고 비판했다. 합의서 채택에 참가한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조차도 “정부가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노동정책을 발표해 상당히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정부가 노동계와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진행하면 앞으로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합의문이 채택되긴 했지만 노동계가 온전한 합의로서 인정하기 어려운 채택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비공개회의를 통해 정부 측 의견에 끌려간 ‘밀실합의’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처럼 정부는 노동계와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의 해고완화를 주축으로 이중적인 노동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동계,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하향평준화’

한편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 등을 통해 비정규직과의 차별을 없애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는 정부 측의 입장에 대해 노동계는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는 하향평준화”라며 각을 세웠다.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차별 해소의 가장 좋은 방법은 정규직 전환인데 정규직도 비정규직처럼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서 비정규직과의 차이를 줄이겠다는 것은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의 하향평준화”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노총은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이나 정리해고 요건 완화의 이유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얘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결코 경직돼 있지 않다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발간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관련 국제적 흐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1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다. OECD 평균은 10년이다. 한국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이 불안한 한국의 임시직 비율은 23.8%로 OECD 회원국 중 둘째로 높다. OECD 회원국 평균이 11.8%이니 한국이 두 배나 더 높다. 집단해고 지수는 OECD 회원국 중 3위, 일반해 고는 17위로 중간 수준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정년이 57~58세 정도라고 하지만 실제 정년 나이는 49세로 정년까지 가는 노동자는 드물다. 그 전에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을 당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이미 법적으로 경영위기 시에는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지난해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 숫자는 38만 명으로 IMF 경제위기 직후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상시적인 해고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노총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철폐, 저임금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및 노동기본권 보장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또한 정리해고 요건 완화에 대해 정부가 취업규칙 등으로 해고를 상시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것으로서 이러한 방향을 노동계와의 합의과정 없이 밀어붙인다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정규직 노동의 질 높여야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정규직 고용안정성 완화를 통해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로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개선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두 집단 간 임금격차 완화를 통해 비정규직의 고용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규직들의 실제적인 마지노선은 고용안정”이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있고 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지만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를 통한 해결은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뿐 답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성장이 주로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이 속해 있는 1차 노동시장에만 혜택이 돌아가고 비정규직·하청·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속해 있는 2차 노동시장에는 낙수효과가 점차 사라지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심화되고 왔다”고 전제했다. 그는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지속되면 될수록 사회적 공정성·차별·갈등을 야기하면서 한 국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사회통합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며 “최근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서비스화, 여성화 등 변화에 비추어 지속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중 장기근속자들이 생애 전체에 걸쳐 누리는 혜택은 임금 이외에도 각종 기업복지 등을 고려할 때 상당할 것”이라며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의 생산성과 인건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과 동시에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배 선임연구위원은 “무엇보다도 1·2차 노동시장 간의 소득격차 완화가 우선”이라며 “이를 위해 최저임금, 시중노임단가, 근로장려세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비 등을 전략적으로 잘 조합해 저임금근로자의 임금소득을 빈곤선 이상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공공조달계약에 대해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토록 하고 있으나 강제성이나 유인구조가 없어 2014년 고용노동부 점검 결과 33.4%의 공공기관이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었다”며 “이행평가를 기관평가에 반영하고 수주기업에 대해서도 이행여부를 점검해 불이행시 공공부문 입찰에 불이익을 주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근로유인 및 빈곤개선에 긍정적인 근로장려세제의 역할을 대폭 강화해 현재 78만3천가구인 지원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배 선임연구위원은 여객운송 선박 항공 철도 등에 있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핵심업무,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업무에는 기간제나 파견근로자의 사용을 제한하고 정규직을 고용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대신해 노동조합의 차별신청을 대리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 ▲원청업체 노사간 양보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및 하도급업체 근로자를 위한 고용개선기금 사회연대기금, 사내근로복지기금, 공동근로복지기금 등을 운영하도록 장려 ▲임금체불, 최저임금법 미준수, 초과근로시간 한도 위반 등 위반행위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등을 추진할 것을 제언했다.


배 선임연구위원은 “연공주의 인사제도가 한국 경제의 저성장시대, 사업체의 고령화 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개혁할 필요가 있다”며 “직종, 직군별 인사·임금체계시스템으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희망퇴직, 명예퇴직 등 해고회피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상 비자발적 퇴직까지 감안하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내지 퇴직은 문제가 된다”며 “무분별한 정리해고 남용 방지 필요를 위한 실체적 요건 강화, 우선재고용업무 확대 등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 경우 정리해고자에 대한 임금소실보험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사회안전망 확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회보험법 수급권자 범위를 현행 근로기준법 의존적 체계에서 독자적 사회보험법 정의 체계로 전환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해서도 사회보험을 적용해 일정한 지휘권을 가진 사업자나 종사자단체에게 사용자 부담분 보험료를 납부토록 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기존에 재취업 촉진 등을 목적으로 운영되던 실업급여를 근로자의 감소한 임금을 보전하는 임금보험 성격으로 전환하고 피보험자의 관리, 수급자격 인정, 실업인정 및 부정수급 관리 등 실업급여제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재설계할 것을 강조했다.


인본자본주의 철학, 특정집단 아닌 시스템 변화 유인


한편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철학과 비전이 필요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분법적인 방식이 아닌 노동시장 전체 구조가 선순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고용 불안, 소득격차 확대 등 복합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한국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고, 비정규직의 비중이 크고,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도 인적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돼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그는 “한국은 그동안 복합적인 노동시장 문제를 비정규직 문제 등 특정이슈에만 주목했으며 고용노동시스템이 산업구조와 인구구조의 변화와 괴리되는 문제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업의 고용비중이 70%인데도 고용노동문제의 해법은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중소기업 고용비중이 90%에 가까운데도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구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하나의 직장에서 평생 일한다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기 교수는 “새로운 고용노동시스템은 구조개혁의 철학과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사람 중심의 인본자본주의를 근본철학으로서 지향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이익, 노사 어느 한쪽이 아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구조개혁을 위한 변화에 있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 특정 사람이나 집단이 아닌 시스템의 변화를 유인해야 한다”며 “유인은 인센티브 매커니즘, 거버넌스, 재정지원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효과적인 유인체계가 구조개혁의 성공여부를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교수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공정노동 기준과 정부 조달자격을 연계하는 방안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그는 “임금 체계를 호봉제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고정급보다 성과금과 같은 변동 급여에 세금을 우대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면서 “그래야 생산성도 높이고, 고용 안정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조개혁 철학부터 세워야


최 부총리의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 대책은 성장 없는 고용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자리부족 문제 해결과 정규직·비정규직 차별해소 차원에서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과 정규직·비정규직·파견근로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노동시장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국가경제의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만으로는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정부가 대국민 차원의 합의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한 철학과 명분부터 차근차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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