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기후 위기가 도시 안전을 위협한다고?

  • 등록 2025.11.01 22: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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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침수방지법」 전면 개정해야
전문가들 “홍수 관리 대책, 부처별로 분산돼 상호 연계성 낮아”
생태습지 조성, 홍수 피해 예방과 생태 관광자원으로 활용
22년 강남역 일대 강수량 110mm/hr...시간당 95mm인 방재 성능

 

최근 기후 위기로 국지적 집중 호우와 게릴라성 폭우가 빈번해지며 홍수에 대비하는 국가적 대응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2024년 광주 도심 수해 등 연이어 발생하는 침수 피해는 더 이상 ‘이례적 재난’이 아닌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경고다. 기존의 재난 대응 체계는 한계에 다다랐음을 말해준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도시침수방지법 전면개정 및 AI 기술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박창근 전 국정기획위원회 기획위원(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은 ‘도심하천 공원화’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기획위원은 "도심하천을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생태 공간으로 만들어 주민의 삶은 향상시키고 홍수 피해를 막자"고 제안하며 "양재천, 안양천, 오산천, 경포천 등의 사례처럼 도심하천 공원화(수변생태벨트) 사업을 통해서 사전에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기획위원은 "서울시가 강남역 일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강남역, 광화문, 도림천, 과천-이수 복합 터널) 공사를 하는데 약 2조 원이 든다"며 "하천 관리 정책 정합성을 검토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도심침수방지법을 전면 개정해 홍수 위험이 증가하는 도심하천 정비 사업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경포천은 2002년부터 3년 연속 홍수 피해가 났지만, 제방유실 농경지를 매입해 생태습지를 조성한 후 홍수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집의 앞마당 개념을 도시에 적용해 생태 관광자원으로 하천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민 안전기본사회컨퍼런스 공동대표(전 국정기획위원회 AI과학기술소위 특별보좌역)는 "일 년에 내리는 강수량의 60~70%는 대부분 6~9월 사이에 집중된다"며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도시의 배수 능력을 초과하는 폭우가 발생하면 침수 피해로 직결된다"고 진단했다. 

 

김 공동대표는 "인구와 상업시설이 밀집된 도심에선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고 단시간에 하천이나 배수로로 집중되고,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심각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며 "2020년대 들어 시간당 100mm를 초과하는 집중호우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내리면서 인명 피해와 막대한 재산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하수도 및 수자원 시설의 홍수 방어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의 구조적 리스크로 인식해 도시의 방재 체계 전반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지금과 같은 홍수 관련 업무를 환경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여러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점을 들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수질 및 하천 환경 중심의 수자원 관리 정책은 환경부가, 도시 계획 및 하수도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국토부가, 재난 관리 및 복구를 관장하는 일은 행안부가 하면서 부처별 정책과 법정 계획은 상호 연계성이 낮고, 유역 단위 통합 관리는 물관리기본법의 취지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의 홍수 관리 대책은 주로 하천 제방 강화, 배수 펌프장 확충, 저류지 설치 등 구조적(Structural) 방재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의 폭우 양상은 공간적·시간적 집중도가 매우 높아 기존 인프라의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가 잦다. 그러면서 단순한 물리적 시설 확충만으로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김 대표는 "비구조적(Non-Structural) 대책, 즉 홍수 예·경보 체계의 고도화, 실시간 수문·기상 정보 연계, 도시 계획 단계에서의 침수 위험 반영, 지하 공간 이용 제한, 시민 참여형 대응 매뉴얼 구축 등 다양한 수단이 병행돼야 한다"며 "도시하천 유역에 대한 통합 홍수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유역 전체의 물 순환 체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Sponge City(스펀지 도시)’ 개념의 도입이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 부처 간 협조 안 되며 피해는 국민 몫으로... 

 

도시 홍수의 원인은 크게 ‘외수 범람’과 ‘내수 범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외수범람은 도시하천의 수위가 상승해 하천수가 제방을 넘어 시가지로 유입돼 발생한다. 반면에 내수범람은 하수관의 용량을 넘는 집중호우로 내리면서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시가지가 침수된다.

 

지난 2023년 발생한 오송차도 참사는 ‘외수 범람’, 2024년 발생한 광주 홍수 피해는 ‘내수 범람’의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도시홍수 발생의 원인별 예방 대책이 분산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환경부, 행정안전부,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대책을 추진하면서 사업의 효과는 떨어지고 예산은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외수 범람을 막으려면 컨트롤타워 지휘 하에 환경부(각 하천 관리소)-행안부(각 지자체)가 긴밀히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고, 내수 범람을 막으려면 100년, 2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홍수 예방 시설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안부-지자체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면서 하천을 관리하는 환경부와 긴밀한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천 정비뿐만 아니라 배수 시설까지도 종합적으로 살펴서 내수·외수 범람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률안을 만들어야 하고, 지금과 같이 혼재된 관리 체계를 정리해 그 어떤 재난관리법보다도 이 법을 상위에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재난의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 집중

 

홍수 피해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게 된다.  특히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반지하 주택은 폭우 시 배수 역류와 침수의 위험이 높다. 2022년 서울 반지하 침수 사망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도시 구조의 불평등이 재난의 불평등으로 이어진 비극이었다.

 

김 대표는 "도심지 침수 문제는 단순히 토목공학적 해결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정의와 도시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홍수로부터의 안전’은 시민의 기본권이자 도시의 공공 서비스로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러한 내용을 담은 법률안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며 "'도시침수방지법' 전면 개정을 통해 다시는 홍수로 인해 사람이 죽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개선을 철저히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KAIST 교수는 "재작년에 나온 6차 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 활동이 기후시스템의 온난화를 비롯해 대기·해양·빙권, 생물권에 걸쳐 빠르고 광범위한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은 명백하다"며 "이전 보고서까지는 온난화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인간활동의 영향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는 표현을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박진희 충북도의원은 “오송 참사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에 더해, 총체적인 행정 부실과 관리시스템의 미흡함이 결합돼 대형 인재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라며 우리 사회의 복합적인 시스템 부실이 낳은 비극"라고 주장했다.

 

기존의 침수 방지 대책과 법,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 환경과 도시 구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도의원은 "기존 수방 시설(하수관거, 펌프장 등)은 과거 강우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50년, 100년 빈도' 같은 확률에 맞춰 설계돼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극한 호우에 취약하다”며 “재난 위험이 예상되는 시설에 대한 조치를 요청해도 복잡한 행정 절차를 이유로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도 개선과 함께 AI 기술을 도입하면 도시 침수 방지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며 △데이터 인프라 구축 및 분석 고도화, △다중 센서 및 IoT 활용, △디지털 트윈 구축, △다중 소스 데이터 융합 등의 방법을 제시했다. 또, AI 모델을 활용해 침수 발생 시점과 범위를 예측, 골든타임을 확보하고 AI가 펌프장 가동 등 최적의 침수 방지 대책을 자율적으로 결정, 실행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방재 시설 점검하고 대책 마련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중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시급한 것은 실효성 있는 단기적인 처방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정달성 광주광역시 북구의원은 “기존 방재 시설의 기능을 즉시 점검하고 강화해야 한다"며 "막힌 하수관로와 빗물받이를 수시로 청소, 준설하고 하천의 퇴적토와 잡목을 시급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습 침수 구역에는 대형 배수 펌프 설치를 적극 검토해 강제 배수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스마트 기술을 활용한 예·경보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실제 상황 발생 시 주민들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훈련과 안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주민 스스로 최소한의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각 가정과 상가에 모래주머니, 방수포, 소형 양수기 등을 포함한 수해 구명함 또는 폭우 대응 키트를 보급하고, 건물 특성에 맞는 차수판 설치 추가 지원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광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청주 서원)은 인사말을 통해 “2023년 오송 참사와 2024년 광주 수해는 기후 위기의 현실을 절감하게 만들었으며 국지성·예측 불가능성의 특징을 갖는 최근 폭우 양상에 기존의 국가 재난 시스템이 총체적 재정비가 시급함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하며 “오송 참사에서 하천(환경부), 재난관리(행안부), 지하차도(흥덕구청) 등 관할 기관이 분리돼 국민 안전 보호에 구조적 취약성을 명확히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최동환 기자 photo7298@m-e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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