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생존에 필수요소인 물까지 위협하면서 안정적인 물을 공급하려면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AI가 변혁하는 미래 물관리 방안)에서 참석자들은 경험과 통계 중심에서 벗어나 AI 기반 예측 체계의 물 관리로 빠르게 전환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토론회 발제에 나선 송호석 기후에너지환경부 수자원정책관은 "최근 시간당 100mm 이상의 극한 호우, 100년 빈도를 넘어 200년 빈도 강우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우려하며 “진짜 위협은 ‘증가’가 아니라 ‘예측 불확실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댐 절반 이상이 30년을 넘었다”고 짚은 뒤 “새로운 물 관리 시스템이 정말 중요하다. 그 답은 AI 기반 물관리”라고 말했다.
송 정책관은 “기존 물관리는 물리 모형을 기반으로 수학적 계산을 거쳐 예측하게 되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정확성도 떨어졌다. 하지만, AI 물관리는 예측값을 도출하면서 홍수 예보 시간까지 단축하고 있다”며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댐 방류나 홍수 등은 가상공간의 시뮬레이션도 가능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수장과 하수처리장에서는 AI가 약품 투입량과 에너지 사용을 자동으로 최적화하고 이상 징후도 사전에 감지되고 있다”며 “시범 운영 결과 전력 사용량은 약 7%, 약품 사용량은 10% 이상 줄어 들었다. 오는 2030년까지 광역 정수장은 완전 자율 운영 체계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AI 분석을 통해 녹조 관리 또한 시간을 단축할 뿐 아니라 정확도도 높이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초분광 센서를 통해 실시간 감시 체계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과제로는 △빅데이터 기반 고도화 △스마트 수문조사 △물산업 AI 생태계 조성 등을 꼽았다.
◇ 물 정보,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가?
물 정보 활용이 미래 경쟁력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노준래 한국수자원공사 AI혁신처장은 "전국의 물관리 시설 약 110만 개의 센서를 운영하고 있는 수자원공사는 하루에 생성되는 데이터만 해도 약 32억 건에 달한다"며 “기존의 물관리 역량에 AI, 디지털 트윈, IoT 같은 첨단 기술을 결합해 기후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혁신처장은 “최근 10년간 여름철 집중호우에도 큰 피해 없이 대응하며 실질적인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히며 “해당 기술은 이미 2024년 사우디에 수출해 1단계 구축을 완료했고,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 정수장 기술은 약품 투입·에너지 사용, 설비 상태를 실시간 분석해 최적 조건을 자동으로 도출하게 되면서 운영 안정성은 높이고 생산 원가를 낮추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 구글, 2018년부터 AI 기반 홍수예보 서비스 시작
과거 재난 예보는 국가의 고유 영역이었지만 지금은 민간 기업이 글로벌 단위로 예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글이다. 구글은 2018년부터 AI 기반 홍수예보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현재 100개국 이상, 수억 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최대 7일 전 홍수 예측도 제시하고 있다.
황석환 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이는 기존 물리 기반 예측 한계를 뛰어넘는 접근”이라고 짚으며 “앞으로 재난 예보를 누가 책임지고 누가 통제할 것인가. 민간 플랫폼이 전 세계 재난 정보를 제공하는 구조가 되면 ‘공공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황 연구위원은 “한국은 인프라·통합 물관리·행정 집행 역량이 매우 강하다”며 “댐·하천·도시 침수 통합 제어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플랫폼 규모의 데이터·클라우드·AI 연산 역량은 민간 빅테크가 압도적”이라며 “우리가 단순히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차별화 전략을 취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놨다.
유일상 한국수자원학회 회장을 좌장으로 진행된 종합토론회에서는 지구 온난화는 어떤 특정 산업 분야의 이슈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는 데 공감했다. 물 문제는 그 변화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이다.
유 회장은 “가뭄과 홍수가 동시에 심해지고 기존의 예측 방식이나 운영 체계만으로는 대응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AI가 물관리 기반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또 지금 구조에서 무엇이 한계고 무엇이 문제인 지, 국가 차원에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 지 등을 함께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술을 어떻게 제도와 연결하고 의사결정 체계와 통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김두일 대한상하수도학회 회장은 “정확도도 중요하나 양적 성과 지표가 필요하다"며 “유수율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에너지가 얼마나 절감됐는지, 사고가 얼마나 줄었으며 안전사고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등에 대한 수치가 나와야 AI가 정책과 예산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짚었다.
개인정보 보호와 AI의 충돌 문제 관련해서는 "AI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좋아진다. 현행 제도는 최소 수집·목적 제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스마트미터(수도계량기) 같은 데이터는 수요 예측과 이상 탐지에 매우 유용하지만 동의 문제와 목적 제한 때문에 전국 단위 통합 학습이 어렵다. 가명이나 익명 데이터의 연구 활용 확대와 공공 AI 특례·샌드박스 도입과 디지털 트윈 기반 가상 데이터 활용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국가 중요 정보로 분류돼 외부 반출 등 어려워
물관리 데이터가 국가 중요 정보로 분류돼 외부 반출이나 클라우드 활용이 어려운 점도 지적됐다. 유 회장은 "유량·압력·제어 로직, CCTV 정보 등이 보안 데이터로 묶여 있어 과도하게 일괄 보안 처리된 데이터가 많다"며 "데이터 등급 구분 관련해 △외부 반출 금지(1등급), △조건부 반출(2~3등급), △연구 목적 개방(4~5등급) 등으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조건부 반출과 연구 활용을 허용하고 보안을 유지한 상태에서 AI를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유 회장은 "금융·국방 분야에서 이미 운영 중인 내부망에 AI 서버 설치 및 모델과 코드의 조건부 반출 허용, 전용 보안 데이터 센터 구축, 연구자는 원격 접속만 허용 등은 물관리 분야에도 도입이 가능하다"며 "보안을 유지하면서 AI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 공공형 AI와 민간형 AI로 분리해야
이어진 토론에선 AI를 공공형과 민간형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성표 한국물관리학회 회장은 "공공형 AI의 목표는 수익이 아니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물복지"라면서 "AI 정수장이나 운영 자동화가 정말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부터 봐야 한다. 공공 AI라면 더 필요한 곳에 먼저 작동하도록 설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자체마다 예산에 따라 AI 수준이 달라진다면 지역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법·제도는 분명히 AI 발전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며 회색지대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법의 잣대만으로 해결하기보다 이해관계자 간의 거버넌스와 합의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는 “공공 AI는 거버넌스를 통해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 통제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하수 속 카페인 농도 데이터, 상권 분석이나 지역 활성화 지표로도 활용될 수도
민간 AI는 더 자유롭게 실험하고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하수 속 카페인 농도 데이터는 단순 오염 정보가 아니라 상권 분석이나 지역 활성화 지표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것처럼 물 데이터는 새로운 산업과 파생상품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민간 영역에서는 규제 샌드박스나 실험 공간을 열어 다양한 가능성을 시험해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AI 산업이 유발하는 물 수요 대응이나 예방 중심 재정 구조 전환, 예측과 의사결정의 연계 강화, 시설물 유지관리 AI 확대, 인프라·법제도 기반 확충 등이 함께 논의되면 물관리 AI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형수 인하대학교 교수는 “AI 발전은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 확대와 직결되고 결국 대규모 물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면서 “지금 AI를 물관리에 활용하는 것뿐 아니라, AI 산업 자체가 유발하는 물 수요를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우려를 전했다.
김 교수는 “기후변화로 홍수와 가뭄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요 증가까지 겹친다면 공급 안정성에 대한 중장기 대책이 더 정밀하게 필요하다”며 “최근 예산 구조를 보면 예방 사업비보다 복구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기후위기 대응은 사후 복구가 아니라 사전 예방이 핵심인데, AI 예측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면 예측을 기반으로 예방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재정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현재 많은 AI 예보 지점이 수위 중심 예측을 하고 있지만, 수위 정보가 실제 지역 리스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사결정자가 어떤 기준으로 행동해야 하는지까지 구체화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단순한 예측 정확도 향상을 넘어서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댐 여수로 손상, 부속 시설물 관리, 구조적 안전성 분석 등 물리적 유지관리 영역에서도 AI 적용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 분야는 데이터 축적, 전문 인력 양성, 교육 체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측면이 있는 만큼, AI 도입만큼이나 유지관리 인재 양성과 교육 체계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로봇·센서·라이더 기술이 발전하면 범람 면적, 하천 수심 등 기존에 측정이 어려웠던 데이터도 범용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데이터 확보가 확대되면 AI 예측 정확도도 비약적으로 향상될 가능성이 있다. AI 기술 발전은 알고리즘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 인프라, 데이터 공개 수준, 법적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국가 간에도 데이터 공개 범위가 다르고 정보 공유에 한계가 있는 만큼 기술 문제라기보다 정책과 제도의 문제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 AI로 전환하려면 무엇이 먼저인가?
노성진 금오공과대학교 교수는 이어진 토론에서 “수자원 분야의 AI 학습시킬 데이터는 충분한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도시 홍수 분야의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노 교수는 “일본·미국·유럽 등에서 이미 운영되고 있는 강수 정밀 측정 고성능 레이더가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지적하며 “하늘에서부터 데이터 구멍이 뚫려 있는 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최근 몇 년 사이 폭우로 인해 도시 침수 피해가 잦아지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침수가 시작됐고 어떻게 전파되는 지에 대한 관측 자료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노 교수는 “수백 개 센서 중 몇 개에서만 데이터가 확보되더라도 그 데이터는 AI 모델 학습과 정확도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가 ‘도시 침수를 그 정도까지 투자해서 측정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등의 나라들에서는 1m 이하 고해상도 지형 데이터를 자유롭게 다운로드 받아 AI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우리는 고해상도 지형 데이터, 일부 수문 데이터들이 보안 또는 제한 자료로 묶여 있는 상태다. 노 교수는 “최근 AI 학과를 만들면 해결될 것처럼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데 AI는 모든 도메인에서 써야 한다”면서 “수자원, 수문, 도시계획, 재해관리 각 분야 전문가가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노후 하수처리장과 데이터센터의 복합 개발, AI 기반 설계·운영 시스템 전환과 관련된 발언도 이어졌다.
최문진 BKT 대표는 “우리나라 하수처리장 상당수가 30~40년 이상 된 노후 시설인데 이를 개선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며 "지자체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짚었다. 그는 “노후 하수처리장을 그린 데이터센터와 결합한 복합 인프라로 전환하자”고 제언하며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냉각수가 필요하고 하수처리장은 도심 내 입지, 안정적 수자원, 에너지 회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두 시설을 결합하게 되면 하수처리장이 ‘돈을 쓰는 시설’이 아니라 재정 자립이 가능한 전략 인프라로 전환될 수 있다"며 “집약화 기술과 열 회수 기술을 개발해 실제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기술도, 사업 모델도 준비돼 있다. 필요한 건 부처 간 협력과 제도적 기반과 시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나의 쇼케이스만 만들어도 내수 시장 활성화와 해외 진출 기반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AI 설계 자동화 설계는 많은 시간과 인력, 휴먼에러를 동반하는 데 8년간 투자해 AI 기반 3D 자동 설계 시스템을 개발했다. AI 운영까지 가려면 △3D 설계 △계측 설비 △실시간 데이터 축적 △디지털 트윈 그리고 그 위에서 작동하는 AI, 이 모든 것이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AI 물관리의 필요성을 크게 공감하면서 인프라는 경직돼 있고, 부처는 분절돼 있고, 신기술 진입 장벽은 너무 높다는 것을 지적했다. 여기에 기업이 R&D를 해도 현장 적용까지 가는 길이 너무 어렵다는 현장의 어려움도 읽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정애 국회물포럼 회장은 “우리나라는 AI 정수장, 홍수가뭄 예측, 디지털 트윈 물관리 등 그간 축적해 온 기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물관리 전반의 AI 전환을 가속화하고 이를 모델화하여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다”면서 “국회물포럼은 대한민국 물관리 AI 전환을 위해 입법·정책적으로 뒷받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