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력시장에서 지방 도시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는 언제 작동하는가’다.
2024년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제도 시행 이후 1년이 가까워지도록 전기요금 체계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법은 생겼지만 가격은 바뀌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제도의 취지는 단순하다. 산업과 인구가 밀집돼 전력 수요가 집중된 수도권에는 전력 사용의 비용을 더 정확히 반영하고, 발전소·원전·재생에너지원이 밀집한 지역에는 공급 부담에 상응하는 보상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전력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불균형을 가격에 반영하자는 논리다. 그러나 현실의 전력요금 체계는 이 논리와 거리가 멀다.
경북·전남·충남 등 비수도권은 전력자립도가 전국 최고 수준임에도 전기요금은 서울과 큰 차이가 없다. 수십 년간 유지돼 온 한국전력 중심의 단일 요금 체계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 ‘전력 생산은 지방, 전력 소비는 수도권’이라는 패턴은 고착화됐고, 중앙집중형 전력시장이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반복돼 왔다.
◇ 숫자가 말하는 불균형...전력자립도 ‘200%’ vs ‘10%’
전력 수급의 지역 격차는 수치로 확인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24년 6월 발간한 ‘2024 지역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지역별 전력자립도는 경북 215.6%, 충남 213.6%, 강원 212.9%로 가장 높았다.
반면 대전 3.1%, 광주 9.3%, 서울 10.4%는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밖에 전남(197.9%), 인천(186.3%), 부산(174%), 경남(123%), 세종(99.4%), 울산(94.4%), 제주(78.2%), 전북(71.7%), 경기(62.5%), 대구(13.1%), 충북(10.8%) 순으로 지역별 편차가 뚜렷했다.
그럼에도 전기요금은 전국이 같다.
2024년 기준 산업용 전기요금 평균 판매단가는 168.17원/kWh로, 지역 구분 없이 동일하게 적용됐다. 산업이 밀집돼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수도권과, 발전 설비가 집중된 지방이 같은 요금 체계로 전기를 사용하는 구조다. 특히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가 진행 중인 지방에서는 “전기를 만들고도 요금에서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누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서울은 매년 ‘순유입’...44TWh가 보여준 지방·수도권 의존
서울의 전력 구조는 이러한 불균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 등 각종 통계를 토대로 추산하면, 2024년 서울로 유입된 전력량은 약 44TWh에 달한다. 서울의 연간 전력 사용량 약 50TWh에서 자체 발전량 약 6TWh를 제외한 수치다.
이는 서울이 1년 동안 외부(지방 및 수도권 타지역)에서 송전받아 사용하는 최소 순유입 전력 규모로, 같은 해 호남권 전체 발전량(약 88TWh)의 절반 수준에 해당한다.
송전망 구조 역시 수도권 의존도를 보여준다. 서울연구원이 2025년 8월 발표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시행에 따른 서울시 산업·경제적 영향 분석과 대응전략 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중부와 강원 지역 대규모 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전력은 765kV, 345kV 초고압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집중 융통되고 있다.
수도권 내부에도 인천 영흥, 경기 북부(파주·동두천·포천 등)에 대규모 발전단지가 위치해 전력 수요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외부 전력 의존도는 구조적으로 높다. 특히 보고서는 서울에만 전력 수요가 높은 데이터센터 약 50곳이 집중돼 있어, 향후 수도권 전력 수요와 외부 의존도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 ‘가격의 위치 정보’를 둘러싼 논쟁...제도는 있지만, 일정은 없다
보고서는 대안으로 △수도권·비수도권·제주로 요금을 나누는 권역별 전기요금제(Zonal Pricing) △송전 혼잡과 전력 손실을 가격에 반영하는 지역별 한계가격제(LMP) △송전망 각 지점별로 가격을 세분화하는 노드별 한계가격제(Nodal Pricing)를 제시했다. 특히 노드별 한계가격제는 송전 비용과 계통 혼잡을 가장 정교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유정민 서울연구원 연구원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지역별 요금 차등의 근거가 포함된 것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전력 비용 구조를 바꾸려는 정책적 문제 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며 “수도권 중심의 전력 소비 구조로 인해 송배전 비용과 발전 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지역별 요금 신호를 통해 비용 부담을 보다 합리적으로 분산시키려는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권역 단위 요금제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유 연구원은 “수도권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을 경우, 전력자립도가 200%가 넘는 인천과 소비 중심의 서울 간 비용 차별성이 사라질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보다 세분화된 노덜 프라이싱(Nodal Pricing) 방식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권역별 요금제를 먼저 도입한 뒤, 점진적으로 노덜 가격 체계로 발전시킬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책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짚었다.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도 시행 시점을 공식화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M이코노미뉴스와 통화한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정부가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시행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다”며 “제도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지, 시행 시점을 공식화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 제도는 요금만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전력시장 구조, 도매시장 분리, 한전의 요금 인가 구조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며 “도매시장부터 지역별로 나누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지자체와 발전사 측에서 도매·소매를 동시에 봐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면서 일정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26년 중 소매요금 설계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은 있지만, 시행 시점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지역별 이해관계와 요금 변화에 따른 사회적 반응을 고려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