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시작된 불안으로 곡물 가격과 농산물 자재비가 치솟고 에너지는 흔들리며, 그 여파가 우리의 밥상에 고스란히 닿고 있다. 곡물 자급률이 20% 수준에 머무는 우리나라는 이미 취약한 구조 위에 서 있다. 쌀값은 지난해보다 오르고 외식 물가는 줄줄이 상승했다. 국민의 소비 여력은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가 먹고, 입고, 사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다른 나라의 에너지 수입에 기대게 되었는가? 산업화와 세계화는 효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우리의 자립 기반을 허물어왔다. 값싼 에너지와 수입 곡물에 기대어 성장해 온 경제 구조가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심각하다.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 식량과 에너지, 공급망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유가는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물류비와 생산비가 급등하고, 결국 그 부담은 국민 모두에게 전가된다.
최근 존스 홉킨스 대학의 사하이 연구실(Mr. Sahay’s lab)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에너지 혼란에 대한 노출이 적은 것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장기적인 유가 상승을 시작으로 신중한 계획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래의 유가 충격은 불가피하며, "전력화는 충격 흡수 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휴스턴에서 열린 세계 최대 연례 에너지 회의에서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의 석유와 가스 생산 장려 노력을 일종의 인도주의적 프로젝트로 규정했다. 그는 "진실은 간단합니다. 에너지는 생명이며, 세계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 에너지 안보의 착각
그의 선언은 아이러니다.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겠다며 시작된 화석 연료 중심의 전략이 오히려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시민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최근의 국제 정세는 단순한 외교 문제를 넘어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에너지 구조 위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여전히 화석 연료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전체 에너지의 대부분이 석유와 가스, 석탄에서 공급되는 현실에서, 특정 지역의 갈등은 곧바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유가가 오르면 물류비가 상승하고, 이는 식료품과 공공요금 인상으로 연결된다. 에너지 문제는 더 이상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문제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흔히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대체 에너지를 확대하면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해법이다. 진짜 문제는 ‘어떻게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쓰도록 설계된 사회인가’에 달려있다.
현재의 경제 구조는 과도한 에너지 소비를 전제로 작동한다. 멀리서 생산된 식품이 장거리 운송을 거쳐 식탁에 오르고,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출퇴근과 주거 비용을 폭증하게 했다. 자동차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도시 구조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늘린다.
심지어 대량으로 생산된 음식이 소비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낭비된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리 재생에너지를 확대해도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총소비량이 줄지 않는 한, 에너지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생산 방식의 전환이 아니라 소비 구조의 혁신에서 시작된다. 음식물 폐기를 줄이고, 지역 내에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도시는 자동차 중심에서 벗어나 걷고 이동할 수 있는 구조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켜 전 지역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환경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국가 전체의 비용을 줄이고,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전략 말이다.
에너지 사용이 적었던 1960년대 이전의 사회는 비효율적이고 불편했지만 동시에 과도한 소비에 의존하지 않았다. 여기에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과 전기화, 자동화를 결합한다면 전혀 다른 형태의 미래 사회가 가능하다.
화석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탈피할 수 있는 해답은 분명하다. 더 많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 있지 않고 더 적은 에너지로도 유지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에너지 안보란 더 이상 공급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성장한 지금의 경제에서 거품을 걷어 낼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