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년째 접어들고 있는 데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판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고 걸프만 원유 및 가스전이 피격돼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사실상 경제 전쟁을 선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질서를 기반으로 한 자유무역 시대는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미국, 중국, 러시아의 초강대국 세 나라가 힘으로 자유 무역 질서를 어지럽히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신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이러한 글로벌 질서의 혼란을 일찍 예견한 미국의 지정학 전문가 피터 자히한은 ‘각자도생’ 시대라는 말로 현시대를 표현한 바 있다. 신제국주의와 각자도생의 경향성이 대세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시대에서는 국가와 기업·가계·개인이 스스로 살아남는 ‘생존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노사가 임금과 복지를 두고 협상과 대립을 반복하며 갈등을 벌이다가 파업으로 힘을 과시하고 벼랑 끝에서 간신히 협상하는 패러다임은 이제는 ‘사치’가 되는 것 같다.
기업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uncertainty)’의 위기에 노출돼 있다. 누가 초고층 두바이 빌딩이 드론과 미사일 공격으로 검은 불길이 치솟을 줄이야 예측했겠는가. 필리핀이 석유 공급 부족 사태로 국가 비상을 선언했다.
우리나라는 차량 운행 공공기관 5부제 실시를 시작했다. 일부 나프타 공장 가동 중단은 물가 상승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한국과 같은 미들 파워 국가들은 강대국을 탓하기 전에 우선 살아남아야 하고, 기업들은 더욱 생존이 절체절명의 목표가 되고 있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엊그제까지 21세기 피할 수 없는 가치이자 선택으로 여겨졌던 ESG, 인권, 다양성, 젠더 등의 구호는 갑자기 미디어의 안테나에서 사라져 버렸다. 친환경을 높이 소리쳤던 EU 국가들이 이제 원전과 석탄 사용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들의 빛이 바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지만, 문제는 가혹한 현실이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 새로운 노사 관계 패러다임 아젠다 던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정책 토론회에서 ‘원래 비정규직이 임금을 더 받아야 하고, 불안정한 대가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청소 노동자가 똑같은 장소에서 일을 하면 직고용과 하청의 경우 임금이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이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했다. ‘
원래 비정규직이 더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역시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역발상인 듯하다. 장기간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에 비해 한시적 고용 상태인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더 높은 것이 상식에 맞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정규직은 장기간 근무로 인한 회사의 고용 안정성 제공과 자발적인 업무 개선 및 연구개발 기여도 등을 고려한 수당 등 총임금은 비정규직보다 더 높게 책정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시간당 임금만큼은 비정규직이 더 받아야 하는 건 합리적이다. 예를 들면 정규직이 무슨 사정이 있거나 밀려드는 일로 인력이 필요할 때, 급히 비정규 직원들 불러 그 일을 대신하게 한다고 가정하자. 그럴 때 우리나라 현실은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보다 더 낮게 쳐준다.
이것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하던 일을 동일하게 해냈을 때 비상 상황에서 기여했다는 점, 한시적 고용으로 인한 리스크 감수 비용 등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고용 관행이 최초에는 그러한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어느 시점부터는 회사의 임금 절감 효과를 기대한 점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회사마다 고용 사정은 아주 다를 것이기 때문에 ‘동일 노동, 차별 임금’ 사례 현장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실제로 찾아보면 그런 곳이 많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그런 곳이 있다면 정부가 개입하고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 적용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비정규직의 자부심이 회복될 것이고 회사도 비정규직 고용 관행을 버리고 정규직 고용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곳도 점차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동일 노동, 차별 임금’의 현장 발굴은 노무사와 변호사의 손을 빌리면 된다고 본다. 고용노동부는 제도와 관행을 고치는 데 신경을 쓰고, 현장 개입은 산하기관이나 노무사와 변호사의 손을 빌리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겠지만 대한민국의 일터가 과거와 같은 가족 기업의 애사심 높은 근무 현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식 수익 위주 경영은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본다. 미국기업들이 수익 위주 경영을 하다가 중국에 제조업 다 넘겨주고 월가의 탐욕스러운 돈 잔치로 극소수의 계층만 배를 불려 왔다. 현재의 월가의 금융시장은 정상의 궤도에서 한참 벗어난 것으로 본다.
미국 경제 모순의 뿌리는 수익 위주 경영, 가혹한 구조 조정의 관행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우칠 때가 됐다. 비정규직 고용 논리는 외국인 고용 증가 논리와 일맥상통 한다. 이대로 놔두면 한국의 노동 현장은 저임금 시장을 물론이고 최고 연봉 자리도 외국 노동자와 인재들에게 다 내줄 수도 있다. 비정규직 고용 관행과 논리를 이번 기회에 끊어내야 한다.
◇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증가는 미국의 잘못된 기업경영 벤치마킹이 원인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은 1997~98년 외환 위기 이후부터였다. 이 무렵 재벌 대기업들과 은행 등이 강제 구조 조정되면서 대량 실업이 발생했고, 미국식 경영론이 도입되면서 비정규직 고용 관행이 정착됐다.
미국식 경영은 수익 극대화와 끊임없는 혁신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것은 정규직의 정예화, 정규직의 비정규직 대체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빅테크처럼 정규직의 고연봉화 가 이뤄진 것은 극히 일부 대기업에 한정되고 산업 전반에 비정규직의 확대와 고착화로 자리 잡았다.
사실 지속적인 혁신은 정규직원들에게서 가능하다.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에 혁신은 무리다. 아무튼 대통령의 문제 제기를 기회로 삼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관행을 혁파하여 정규직이 대세가 되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미국의 첨단기술 패권이 엄청난 고연봉으로 지탱한다면 우리나라는 안정된 고용과 적절하고 공정한 임금 보상으로 기술 경쟁력을 지향해야 한다. 정규직의 안정된 고용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계속 교육과 훈련, 사내 대학원을 통한 인재 양성 등 새로운 고용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사내 대학과 대학원, 기업 연구원처럼 적극 권장 필요
AI와 로봇을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 인력이 대학에서 양성 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첨단기술의 기초 개념과 실험은 대학연구실에서 이뤄지지만,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양산 기술과 대량생산 공정 기술은 기업 현장에서 가능하고 그곳에서 축적된다. 이런 양산 기술이 공과대학의 교과 과정에 넘겨지려면 상당 기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자체 양성해 가면서 동시에 기술개발도 진행해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 HBM 칩 기술은 미국 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대학의 연구개발은 여전히 중요한데,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학협력을 형식상으로 하지 말고 실질적인 협력이 이뤄질 수 있는 제도와 지원책을 개발해야 한다. 이에 더 나아가 기업의 사내 대학 설립을 사내 연구원처럼 강력 권장할 필요가 있다.
사내 대학과 대학원은 고졸생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학위 과정으로 운영돼야 한다. 기업 사내 대학은 치열한 입시 경쟁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기업의 사내 대학이 늘어나면 대학교수 들과 연구원, 퇴직 기술자와 전문가 등의 고급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고 노련한 기술자들의 해외 유출을 방지하 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 로봇세, 시기상조인 듯
로봇과 AI 도입이 본격화되면 일자리가 확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로봇이 일 현장에 투입된다고 해도 사람이 로봇을 조작하고 작업 진행 과정과 끝마무리와 확인 작업까지 해야 하므로 실제로 로봇이 노동자들을 얼마나 대체할지는 의문이다.
로봇을 로봇이 제작하는 공장도 가정해 볼 수 있지만 그건 먼 얘기일 것 같고 일단 로봇 공장의 인력은 새롭게 창 출되는 노동이다. AI도 기존 인력을 대체할 거라고 난리지만 그것보다 AI가 기존 인력의 능력 향상과 확장에 더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요즘 한참 화두가 되고 있는 AI 에이 전트도 사용자의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지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체하는 개념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AI와 로봇이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도 아니고 일자리가 확실히 줄 것으로 보이지도 않은데, 로봇세를 기업에 부담 지운다면 기업들의 AI 도입과 일 혁신에 장애로 작용할까 우려된다. 지금은 정부가 기업들로 하여금 AI와 로봇 도입을 추동하고 직원들과 학생들의 AI 활용 교육을 촉진하는 정책이 더 필요해 보인다.
◇ 일자리 정책과 상담, 총론에서 각론으로 세분화해야
청년 실업률이 지난해 11월 5.5%에서, 12월 6.2%, 올해 1월 6.8%, 2월 7.7%로 나타나 8%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청년 실업자들 상당수는 본인이 원하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대기하는 인력이 차지할 것으로 짐작된다. 대기업은 한두 번 도전해 보고 안 되면 대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을 수 있는 차선의 중소기업에 일찍 들어가는 것이 현명한 입사 전략이라고 판단된다.
무작정 대기업 입사만을 바라보고 직장 진출을 미루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배우고 시험공부를 한 것은 아주 기초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고 진짜 능력은 직장에 들어가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알지 못하고 직장 바깥에서 몇 년 빙빙 돌다 보면 전문성을 얻는 기회를 상실할지 모른다. 부모의 과보호와 입시 공부에 매달려 온 우리나라 청년들은 대체로 자신의 꿈과 목표를 가지고 일찍부터 그 꿈을 향하여 노력하여 자신만의 직업설계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저 장래에 대한 불안만 크고 뚜렷한 자기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직업 인기 트렌드를 쫓아가기 쉽다. 의대 지망성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과 전공 선택부터 잘못할 가능성이 크고, 대학 생활도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이래되면 시험 공부로 들어갈 수 있는 대기업과 공무원 등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대학입시와 같은 경쟁 구조가 나타난다.
입사는 전공과 면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무슨 시험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있는 어떤 직업도 쉬운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지만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의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은 굉장히 힘든 직업군에 속한다. 힘든 직업군일수록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지 않으면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직업 선택의 첫째 단추라고 본다.
지금은 대기업도 안심할 수 없는 시대이니만큼 청년과 중 장년층, 노년층 등 세대별로, 또 제조업, 서비스업, 전문기 술업 등 각 산업과 업종별에 따라 커리어 상담 프로그램을 정부가 운영을 기획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커리어 상담 프로그램과 유사한 것들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경제 단체 등에서 운영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의 비중이 유난히 높은 것은 중장년들이 실직한 뒤에 재취업을 하기 어려운 이유도 적지 않다. 재취업을 하지 못한 중장년 층들의 자영업 개업은 거의 실패로 귀결되기 쉽다. 이들의 전직 알선과 커리어 관리는 가계 부채 증가의 근본적인 원인을 완화하는 대책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커리어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직업과 경제 및 산업환경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직업 보수 교육처럼 매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이것을 직업능력개 발원 같은 곳에서 개발하여 노무사와 변호사, 행정사, 직업상담사 등에게 보급하고 보수교육을 받도록 하는 제도로 운영해 보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커리어 상담 프로그램 을 위한 새로운 자격증을 만들면 또 실효성 없이 부실한 운영이 되기 쉽다. 기존 제도와 사회적 도구를 잘 활용하 는 방안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다.
◇ 고용 유연성은 일종의 허구, 따뜻한 일터에서 혁신이 일어날 것
각자도생 시대야말로 서로 보듬고 뭉쳐야 한다. 현대 경영학은 이성과 합리성이란 냉혹한 관념에 기초해서 ‘노동자 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횡포를 부리는’ 논리를 은연 중에 개발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입만 열면 주장하는 ‘고용 유연성’은 일시적으로 기업의 부담을 덜지 모르지만 사기를 떨어뜨리고 직원들을 직무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서 결국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자멸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혁신’도 노사 한 몸의 환경에서 가능한 것이다. 일부 정예 정규직만으로도 혁신은 가능하겠지만 ‘혁신의 확산 과 폭발’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따뜻한 일터는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노사대결의 모습을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경영학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도덕적 경제철학과 너무 멀어져 버렸다. 오늘날 강대국들이 평화를 깨고 전쟁을 일삼는 것은 종교적 신앙심을 잃어버리고 얄팍한 이성과 이기적인 감정의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 경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일으켜 세워서 함께 가는 경제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 감으로써 각자도생의 험한 파고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