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세계 각국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동맹국들에 군함 파견을 요청했지만, 주요국들이 잇따라 난색을 보이거나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18일 주요 외신과 국내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한국, 일본, 독일, 영국, 중국, 프랑스 등에 호르무즈 해협 경비를 위한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독일, 영국, 일본 등은 참여에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역시 직접적인 표현은 피했지만 “적대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아직 "내부 검토 단계"라는 입장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군함을 파견하는 문제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아직 공식 요청이 오기 전이며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주둔 미군·원유 수입 비중까지 거론하며 압박…과장된 수치 논란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우리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미국은 대부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으로부터 중동에서 이란의 테러 정권에 대한 군사 작전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그들의 행동에 놀라지 않는다”며 “나토가 매년 수천억 달러를 들여 이런 나라들을 보호하는 일을 그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군대를 초토화했다”고 주장한 뒤 “우리는 더 이상 나토 국가들의 지원이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일본, 호주,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엑스(X·옛 트위터)에 “방금 대통령과 호르무즈 해협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유럽 동맹국들이 자산 제공을 꺼리는 문제에 대해 대화했다”며 “살면서 그가 이렇게 화가 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동맹국들의 참여를 노골적으로 압박해왔다. 특히 자국 내 미군 주둔 규모를 거론하며 미국의 안보 지원에 상응하는 협력을 해야 한다는 식의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지난 1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과 한국에 각각 4만5000명, 독일에 4만5000~5만명 수준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나라들을 방어하고 있는데, 우리가 ‘기뢰 제거함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글쎄, 우리는 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수치는 실제와 차이가 있다. 주일미군은 약 2만8500명, 주독미군은 약 3만500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각국이 들여오는 원유 수입 비중에 대한 그의 언급도 실제 통계와는 차이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95%, 중국 90%, 한국 35%라고 말했지만,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62%, 일본은 69%, 중국은 49% 수준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과 주요 교역국들의 협조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수치를 과장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그의 발언 수위가 사실상 협박성 압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는 끔찍한 외부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줬지만 그들은 그리 열의가 없었다”며 “그 열의의 수준은 나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곧 군함 파견 요청 철회를 의미하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주말까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이 공개적인 약속을 내놓도록 촉구하고 있다”며 “현 단계에서는 구체적 기여 내용보다 입장 표명 자체를 백악관이 더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 전쟁 발언 오락가락 속 국제유가 100달러대…인플레 부담에 트럼프도 민감
전쟁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점도 혼선을 키우고 있다. 그는 전쟁 초기에는 충돌이 4~5주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가, 지난 9일에는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공화당 의원 모임에서는 “여러 면에서 승리했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언급해 상반된 메시지를 내놨다.
전쟁의 향방 역시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란이 항복을 선언할지, 반대로 미국이 공격 수위를 조절하거나 중단할지 모두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해군과 공군 전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지만, 이란의 공습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중재국 두 곳을 통해 전달된 휴전안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도 모즈타바가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급등한 국제유가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6일 기준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0.21달러를 기록했다. 전쟁 전 브렌트유 가격이 68~69달러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큰 폭으로 오른 셈이다. 이후 한때 120달러까지 치솟은 뒤 등락을 거듭하며 최근에도 1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국제유가 급등이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는 유가와 관련해 “전쟁이 끝나면 유가는 매우, 매우 빠르게 내려갈 것이고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란 전쟁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입장 변화 하나하나가 국제유가와 금융시장, 외교 지형에 연쇄적인 파장을 미치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식 화법’이 세계 경제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은 그의 입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위기, 국제유가 급등이 맞물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군사·외교 이슈를 넘어 글로벌 경제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