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밭에서 꿈꾸는 장애인 마을복지

  • 등록 2026.03.16 17: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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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시대,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 느린 학습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들을 여전히 ‘예비범죄자’로 치부하거나, ‘홀로 설 수없는 존재’로 여기는 편견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들이 이웃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러한 편견을 해소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당사자들의 고유성과 상황이 존중되고 받아들여지는 지역사회공간이 주어질 때 비로서 이들에게 진정한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질문을 던졌다. 소규모의 집단주거공간을 기반으로 공동비지니스를 개발하며, 지역 주민과 어우러져 사는 마을은 만들 수 없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서귀포 상효동 농장에서 시작했다.

 

◇5천평 귤밭에 분양된 500그루의 희망

 

3월 26일 오후 2시부터 서귀포시 상효동의 제주트립티팜 농장에서 열리는 가족축제는 그 희망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축제 당일에 제주트립티팜 농장에서 음악이 곁들인 작은 기념식을 하려고 한다.

 

어려운 경기 속에서도 기꺼이 귤나무 분양에 동참해주신 분들, 현재 치료에 전념하느라 마음으로 함께 하며 뜻하는 선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겠다는 분, 제주도에서 친지들이 귤을 많이 보내와 귤은 필요없으니 후원만 하겠다는 분, 멀리 미국에서 소식을 듣고 참여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분, 그리고 회사에서 단체로 여러 그루를 분양한 분, 일부러 제주도를 방문하여 수고한다고 식사를 대접하며 귤나무를 분양하는 분 등. 이렇게 소중한 분들의 이름과 소원을 담은 이름표를 귤나무마다 정성껏 부착할 예정이다.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초보 농부 최정의팔, 30년 동안 귤밭을 일군 농부 최건승, 로컬 페어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트립티 대표 박미성, 도시농업을 꿈꾸는 관광학박사 강성일, ‘상상을 현실로 구름을 모아 비를 만드는’ 서명갑 등 여러 활동가가 서귀포시 상효동에서 5천여 평 귤밭에 귤농사를 지으면서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이곳에서 발달장애인, 조현병환자 등과 소중한 만남을 하고, 앞으로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치유공간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 풍림무약(주)은 회사창립 햇수에 맞추어 귤나무 51그루를 분양하고 장애인직업재활시설 ‘핸인핸 부평’의 장애인들과 함께 귤을 따고, 맑은샘 정신재활센터 당사자들이 직접 농장에 와서 귤을 수확한 것이 그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네분들과 자유롭게 여행하는 꿈이 이루어졌어요." 맑은샘정신재활센터 장명찬 원장이 정신장애당사자 등 13명과 함께 지난해 11월 제주트립티 귤농장을 방문하여 한 고백이다.

 

제주도에 온 일행은 공항에 도착, 곧바로 서귀포에 있는 제주트립티 귤 농장에 왔다. 귤 따는 방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들은 후 일행은 각자 귤밭으로 들어갔다. 모두 열심히 따고 귤을 운반하니 한 시간이  되지  않아 본인들이 갖고 갈 귤을 땄다. 정신장애당사자들과 함께 일자리를 만들어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것을 잘 아는 장원장은 장애인들에게 자립과 독립을 지원하려는 우리의 비젼에 기꺼이 참여해서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을 통한 인간존엄성 회복

 

지역사회에 통합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소규모의 집단주거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 인간에게 존엄성과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본적 활동이다.  장애인의 취업과 고용 유지는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미비로 인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으며, 이는 곧 그들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포함한 국제 인권 규범은 모든 개인이 차별 없이 노동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한다. 장애인에게 노동은 경제적 자립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회복 과정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핵심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경험하는 고용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가장 큰 장벽은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다. 기업들은 장애인에 대해 능력 부족,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조직 적응의 어려움 등 근거 없는 우려를 가지고 채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함께 일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차별 없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며, 우리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통합의 시작이 될 것이다. 

 

오래 전에 이러한 통합의 길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일본의 훗카이도 무라카와라는 작은 바닷가 동네에 있는 ’베델의 집'을 소개한 책이었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마을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그러나 스스로 공동 주거와 작업장, '유한회사 복지숍 베델'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특산품인 다시마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들을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에서 출발하는 베델의 집

 

정신분열증, 우울증 등의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베델의 집'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구속하는 사회적 명령에서 벗어나 삶의 어려움과 인간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데에서 출발하는, 자신과의 화해와 유대야말로 진정한 인간 회복을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베델의 집은 최소한의 관리를 통해서 자신만의 강점과 건강한 잠재력 능력의 향상을 통해 정신장애인 스스로 회복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며, 자발적인 선택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 준다. 자활훈련이나 직업훈련, 나아가 취업까지 고려하여 다양한 사업전개를 통해 지역사회 내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거주하며 생활하도록 하며, 사업이나 작업 등을 통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는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일본 베델의 집을 벤치마킹해서 ‘벧엘의 집’을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 '벧엘의 집'은 일반적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이나 노숙인 쉼터 등 사회복지시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경기도 고양시 소재의 장애인 생활공동체와 대전 소재의 노숙인 선교센터가 대표적이다.

 

고양에 있는 벧엘의집은 1991년 서울에서 시작해 1997년 경기 고양시 사리현동으로 이전한 생활공동체로, 지적장애인들이 거주하며 생활하는 시설이다. 대전 벧엘의집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노숙인 무료급식으로 시작된 사회선교센터로, 쉼터 및 자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부천 벧엘의집 요양원은 어르신들을 위한 소형 요양원 및 노인요양시설이다.

 

◇제주에서 그리는 새로운 마을공동체 복지의 미래

 

우리의 고민은 이제 시작이다. 이렇게 다양한 ‘베델의 집’을 보면서, 우리는 제주에서 어떤 형태로 해야 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장애인의 삶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의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베델의 집 출발도 기본적으로 공동주거에 의한 집단적 결속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이를 토대로 공동작업, 공동공장 및 회사의 설립 등과 같은 자조적 활동을 진행했다.

 

장애인의 자발적이고 집단적인 노력, 비장애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장려하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지원도 대단히 중요하다. 장애인, 비장애인, 지자체 등이 상호 협력할 때 장애인과 함께 사는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사회지지체계는 최적화될 수 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사는 ‘정의로운 통합사회’로 나아가는 큰 발걸음의 되기를 소망해 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란히 귤을 따면서 서로의 약함을 긍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이 작은 시작에 여러분의 따뜻한 동행도 부탁드린다.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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