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세계로 회귀하는 국제 질서, 우리나라의 선택은?

  • 등록 2026.01.09 08: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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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토요일 기자회견에서 미군이 민주주의, 정의, 베네수엘라 국민의 자유, 그리고 미국인의 안전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그의 부인을 납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조롱에 가깝다. 납치는 국제법상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없고 납치로 인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선포되었던 법과 정의, 인권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 질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니 말이다.

 

그는 또, 국민적 지지와 국제적 명성을 가진 베네수엘라의 야당 지도자이며 노벨상 수상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폄훼했고, 여러 번에 걸쳐 "미국이 이 나라를 운영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 나라 국민을 해방하기 위한 임무였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존재가 러시아의 주권 수호에 결코 위협이 되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나라(정확히는 러시아와 동일시하는 소련)가 건설한 기반 시설을 불법적으로 점유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이는 마치 마두로가 미국 기업들이 건설에 이바지한 석유 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미국 재산 강탈을 저질렀다고 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주장과 유사하다. 물론 선거 조작으로 권력을 유지해 온 독재자 마두로와 우크라이나의 합법적이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침략자인 트럼프와 푸틴 사이의 유사점이다.

 

푸틴은 수년간 소수의 강대국이 세계를 영향권으로 나누는 비전을 주장해 왔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 즉 소련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서방이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열망에서 배제되었던 냉전 시대로 되돌아가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이러한 세계 분할을 트럼프가 본능적으로 오래전부터 공유하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러한 세계관은 지난해 12월에 공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반영됐다. 이로써 미국은 2세기 동안 서반구-북미, 중미, 남미 대륙 전체-를 ‘자기네 앞마당’이라고 주장해 온 먼로 독트린(1823년, ‘유럽은 미주 대륙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선언)을 "돈로 독트린"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운영"하는 방식, 그러한 통치에 드는 비용, 또는 이 지역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관한 질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대부분 미국이 베네수엘라 유전에서 뽑아낼 석유에 관한 이야기로 대답했다. 그런 걸 보면 그의 정치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즉 이로운 자원을 확보하려는 욕망의 정치다.

 

트럼프와 푸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가 지향했던 협력, 정의, 인권이라는 가치를 경멸한다는 것이다. 푸틴의 연설은 이러한 경멸로 가득 차 있으며, 트럼프의 국가 안보 전략 또한 그러하여, 트럼프로 하여금 원하는 아메리카 대륙 어느 곳이든 차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듯 보인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푸틴에게 원하는 만큼 유럽을 차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고 베이징에도 비슷한 메시지를 주는 것이리라.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수 있다면, 시진핑 주석도 대만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국제 규범과 다자 질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중견국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무대였다. 그러나 힘이 우선하는 세계에서는 미국·중국·러시아 같은 강대국의 선택이 곧 질서가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기대기 어려운 더 위험한 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경제와 안보 역시 분리되어 있지 않아 단 한 번의 외교적 선택이 국내 산업과 일자리, 민생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연일 중계되는 마두로의 재판 모습을 TV로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한 질문은 힘의 세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질서 속에서 스스로가 설정한 좌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둘 가운데 하나다. 우리에겐 감정적 진영 논리나 단기적 이익 계산이 아닌, 냉정하고 장기적인 국가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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