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종이 화폐에서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디지털화폐 등장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 2024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초기 단계의 시장 질서 확립과 이용자 보호를 목표로 삼은 이래, 올해 6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되며 가상자산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전반을 포괄하는 통합 규제 프레임워크의 구축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의 ‘은행 51% 룰’ 발언은 은행법과 금산분리 조항간 충돌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전 세계적 은행 시스템의 변화 가운데 한국형 디지털자산 규제체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자리 잡을지 귀추가 모이고 있다.
◇디지털자산법 내 ‘은행 51% 룰’은 무엇을 목표로 하나
국내 최초 가상화폐 규제안인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2024년 7월 시행됐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가상자산시장의 투명하고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어 올해 6월에 ‘디지털자산기본법안(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됐다.
앞서 제정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시장의 초기 단계에 대응하기 위해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규율에 집중된 ‘1단계’ 법률이라면,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디지털자산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단계별 진입규제 시스템 도입과 함께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는 등 디지털자산시장 전반을 포괄하는 통합 프레임워크 구축을 목표로 한다.
디지털자산기본법에서 논의되는 ‘은행 지분 51% 룰’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이달 1일 국회에서 금융위원회와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시중은행이 지분 51%를 보유한 컨소시엄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주목받게 됐다. 은행이 화폐 기능을 갖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지분 과반(51% 이상)을 보유해 통제권을 가져야 금융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시작됐다.
한국은행 측은 지급결제 시스템과 통화정책 안정성을 이유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구조를 은행 중심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이후 여당 내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가 이 문제를 논의에 포함시키면서 국회 발의안과 정부안 모두에서 핵심 논란으로 자리잡았다.
◇스테이블코인 규제, 중앙은행과 정부의 뚜렷한 시각차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화폐’라는 새로운 유형의 화폐 기능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화폐 발행과 통화신용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은행인 만큼 디지털화폐와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영역까지 총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현행 은행법은 비금융회사 지분을 15%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고, 법률상 은행이 단독으로 51%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비금융회사 지분 15% 이상 소유 금지 우회를 위해 최소 4개 은행이 모여 각각 15%씩 참여해 60%로 보유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으나, 의사결정이 복잡해져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체가 속도를 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금융회사로 지정해 은행법 적용을 피하면서 제도권 관리 아래 두려고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은 현재 금융상품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이나 금융상품 관련 규정에서 가상자산은 ‘금융상품’이 아니라 단순한 투기영역으로 분류되고 있고, 디지털 자산으로 취급되는 만큼 법적 모순도 낳고 있다.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금융회사로 지정한다고 하더라도, 지정된 금융회사에서 발행하는 (가상)자산이 금융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또 금융회사로 지정된 만큼 금융상품에 따른 규제를 적용해야 하지만, 가상자산은 법적으로 금융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적용하지 못한다.
결국 ‘금융회사’에서 발행하는 ‘비금융상품’으로 법적 지위와 규제 항목이 논리적으로 불일치하는 꼴이 된다. 이 같은 논리로 금융감독기관은 금융회사를 규제해야 하지만, 금융회사 내 상품은 금융상품이 아니어서 법을 집행하는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한국은행 측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과 지급결제 위험 관리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지분의 51% 이상을 은행이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금융위원회는 핀테크·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과도한 규제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 유럽연합(EU)과 일본 사례처럼 개방적 구조를 강조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가 한국은행의 ‘은행 51% 룰’ 논의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정부안’과 ‘의원안’ 모두에서 이 조항을 포함할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금산분리 원칙과 ‘51% 룰’의 충돌, 감독 권한 배분 딜레마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대상으로 한 ‘은행 지분 51% 이상’ 요건은 현 은행법(비금융회사 지분 15% 제한)과의 충돌, 감독 권한 배분, 시장 진입 장벽 등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과 통화정책 측면에서 은행 주도 구조를 선호하지만, 금융위원회는 혁신 저해를 우려하며 고정지분율 법제화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행 은행법 제37조의 금산분리 조항이 ‘51% 룰’과 직접 배치되며, 이를 우회하려는 예외·컨소시엄 설계가 난관을 겪고 있다.
먼저, 안정성 논리에서 금융안정·통화정책과 연계해 은행 중심 통제권이 있어야 원화 가치 연동의 신뢰성과 통화정책의 파급을 관리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은행은 은행 지분 51%를 넘는 컨소시엄에만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또 내부통제·건전성 관리 역량이 검증된 은행에 주도권을 두면 운영·유동성·준법 리스크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근거를 든다.
‘은행 지분 51% 이상’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자본력이 약한 핀테크 분야로의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져 산업 활성화가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세계적인 추세에서도 유럽연합(EU)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 포괄적 가상자산 기본법)에 근거해 다수의 가상자산 발행사가 전자화폐기관이고, 일본에서도 JPYC(제이피와이씨)라는 핀테크 회사가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올해 8월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기관으로 허가를 받는 등 개방적 구조가 확산되는 것도 인용되고 있다.
법적 모순도 따른다. 먼저 ‘은행 51% 룰과 은행법 15% 제한의 충돌’이다. 금산분리 원칙을 반영한 현행 조항상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비금융회사로 분류되면 한 은행의 과반 지분 보유는 불가능하다. 금산분리 원칙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를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핵심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금융회사가 일반 기업 지분의 15% 초과 소유, 대기업의 은행 지분 4%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제한하는데 여기에 위배된다.
두 번째는 ‘금융회사 지정의 난점’이다. 가상자산이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되지 않은 가운데 가상자산 발행사를 금융회사로 지정하면 금융사가 비금융 상품을 취급하는 규범적 모순과 지배구조법 등으로 인해 규제가 심화되고 사업 확장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감독규정 예외의 한계’다. 발행사를 은행 자회사 업종으로 예외 인정하는 방식이 유력하지만, 발행사는 금융사가 아니어서 은행 수준의 내부통제를 강제할 근거가 미약해진다. 네 번째는 ‘인가·감독 권한 배분’이다. 한은은 관계기관 ‘만장일치 합의 기구’와 검사 권한 확대를 주장하지만, 금융위는 과도한 조직이라며 반대한다. 현재 국회 발의안·정부안 초안은 가권을 금융위로 보는 흐름이지만, 권한 배분을 둘러싼 이견이 크다.
◇감시체계 허점 보인 스테이블코인...규제 강화 목소리 커져
이번 이슈의 핵심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규제 준수 의지와 검증 여부다. 아직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 회피와 불법 가능성의 차단을 위한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금융당국과 업계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준홍 한국은행 결제정책팀장은 “현행 외국환관리법은 내-외국인 간 원화거래를 신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규제를 회피하거나 불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며 “특히 호스티드 지갑에서 개인 지갑으로 자금을 인출한 뒤 여러 차례 스테이블코인을 전송하면 추적과 신원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을 통한 외환거래는 송금 사유와 관련 서류 제출 등 외국환관리법을 철저히 준수해 최소한의 규제 틀을 유지하지만, 빅테크·핀테크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모니터링에 소홀할 가능성이 있어 규제 준수와 감시 체계가 허점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고경철 전자금융팀장은 “규제 준수와 감시 체계 미흡 등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디지털자산법과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 논의 과정에서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발행 구조를 만들고, 합의기관을 통한 협의체 방식으로 운영할 것 등 두 가지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은행 한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장점도 많지만 리스크도 존재한다”고 밝히며 “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중앙은행과 정부가 긴밀히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