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생태계 긴급점검 上] K-방산 호황에도 '저가 입찰’ 강요...대기업 횡포에 우는 中氣

  • 등록 2025.08.28 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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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이윤 규제 없어 국내보다 낮은 단가에 수출부품 공급
대기업 불공정 단가 압박에 하청업체 '역마진' 피해까지

 

 

국내 방산 산업이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5대 제조업에 새롭게 진입하는 등 호황을 맞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각국이 군사력 강화를 서두르면서, 뛰어난 가성비와 기술력을 갖춘 K-방산의 해외 수출이 급증한 영향이다.

 

지난해 방산업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13% 증가한 약 43조원으로 집계돼 사상 최대 규모의 ‘수퍼사이클’을 기록했다. 수출도 처음으로 200억 달러를 돌파하며 K-방산의 글로벌 입지를 공고히 했고, 최근 5년간 누적 수출액 500억 달러를 기록하며 1975년 첫 수출 이후 성과를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이러한 호황 속에서도 국내 방산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구조와 거래 관행 속에서 중소기업은 가격 인하 압박과 마진 축소에 시달리며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나온다.

 

국내 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원가 보존을 지원하는 정부 제도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출용 부품과 장비 공급 과정에서는 실질적인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호황 속에서 울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현실은 K-방산의 성과와 대비된다. 이에 산업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상생 구조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체계업체 ‘수퍼갑’...국내는 정부 관여로 안정적, 수출은 ‘단가 후려치기’

 

국내 방산업계는 방위사업청(방사청)의 원가 보증 제도를 통해 일정 수준의 수익을 확보하고 있다. ‘원가계산에 관한 규칙’에 따라 체계업체와 1차 협력업체는 사업 수행에 필요한 원가를 투명하게 제출해야 하며, 방사청은 이를 심사해 적정 단가를 산정한다. 노무비, 경비, 일반 관리비를 합산한 뒤 최대 12% 범위 내에서 이윤을 더해주기 때문에 중소기업도 손실 부담 없이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다.

 

반면 해외 수출 시장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체계업체(방산 대기업)이 무기체계 개발과 생산을 총괄하며 완제품 생산과 납품을 모두 주관하기 때문에, 협력업체에 대한 단가 요구 등 불공정성이 발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방산 중소기업들이 해외 수출 과정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시장과 달리 수출에는 '원가·이윤 규제'가 적용되지 않아 체계업체 요구로 국내 납품가보다 낮은 단가에 수출용 부품을 공급해야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국내 체계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M이코노미뉴스에 “체계업체들이 해외 수출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하청업체에 최소 마진 수준만 보장하도록 요구한다”며 “그 결과 하위 공급업체는 역마진 수준으로 납품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체계업체의 가격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며 “특히 해외에서 원재료나 부품을 수입해야 할 경우 단가 인상은 불가피한데,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해 손실을 떠안는 일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작년 환율 급등은 이러한 부담을 더욱 가중시켰다. 체계업체들은 환차익으로 이익을 본 반면, 하위 업체들은 단가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손해가 점점 불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결국 손실은 중소기업 몫이 되고, 체계업체만 환율 효과를 챙기는 불합리한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단순히 중소기업의 수익 악화에 그치지 않는다. R&D 투자 여력이 줄어 기술 혁신이 위축되고, 기업의 연속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는 “하도급 업체들이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사라진다면 방산 산업의 기반 자체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공급망 전반에 걸친 구조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오병후 창원방위산업중소기업협의회 회장도 이와 동일한 문제를 제기했다. 오 회장은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 방산의 뿌리는 대기업이 아니라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기술 축적에서 출발했다”며 “대기업이 성장한 배경에도 결국 중소기업들의 피와 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방산 호황의 성과가 대부분 대기업에 집중되고, 중소기업은 그저 하청만 바라보는 처지로 전락했다”며 “정부와 언론이 이를 마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과를 나누는 것처럼 비춰 국민에게 잘못된 인식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회장은 최근 대기업들의 불공정한 단가 압박 사례도 공개했다. 그는 “대기업은 이익이 커 성과급을 논의하지만, 중소기업은 납품 단가 때문에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며 “최근 한 기업은 수십 년간 납품해온 제품에도 ‘저가 입찰’ 조건을 강요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불합리한 단가 요구는 품질 저하와 신뢰 상실로 이어져 결국 방산 생태계의 건강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방산생태계, 처음부터 기형.... 최근 ‘저가 낙찰제’까지 등장

 

방산업계 불공정은 초창기부터 시작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협력 중소기업들은 수출 과정에서 원가 압박에 시달리며,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오병후 회장은 “수출 가격 구조가 국내 산업계와 정반대로 운영되면서 협력업체의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일반 산업 수출에서는 통상적으로 국내 납품가보다 일정 수준의 추가 수익이 보장되는 것이 상식”이라면서 “하지만 방산업계에서는 정부 납품가가 100원이라면, 수출 물량은 중소기업도 짐을 함께 지자며 95원, 심지어 90원 수준에 납품해왔다”고 밝혔다.

 

실제 사례로, 국내 대표 자주포의 터키 수출 시점부터 최근 폴란드 대규모 수출까지, 협력업체들은 정부 납품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업계 상황을 잘 아는 한 방산 전문가도 이에 동의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M이코노미뉴스에 “방산업계가 국내 시장과 수출 시장에서 마진 확보 방식이 정반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밝히며 “체계업체가 수출용 제품에서는 협력업체에게 원가 절감을 강하게 요구하고, 체계업체는 수출 마진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국내와 상반된 구조가 수익성을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경영 안정성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저가 낙찰제’까지 등장해 협력업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오 회장은 “대기업의 정부 납품·수출 실적 뒤에는 협력사인 중소기업의 개발·납품 역량이 깔려 있고, 그것 없이는 어떤 성과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럼에도 ”최근 한 체계업체는 이익 극대화를 이유로 20~30년간 납품해 온 품목들까지 전면 경쟁입찰로 돌리며 ‘저가 낙찰제’로 재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회장에 따르면, 이런 전면적인 ‘저가 경쟁체제' 전환은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그는 “3~4년 전부터도 대기업들은 개별 협력사에 10%~15% 등 구체적인 비율을 제시하며 단가 인하를 요구해 왔지만 그때는 일부 업체·일부 품목 위주의 ‘개별 압박’이었고, 지금처럼 전 품목을 저가 경쟁으로 몰아넣는 체계 방식은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정부 정규 물량은 방사청과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 심의 등으로 대기업이 마음대로 흔들기 어렵다 보니,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수출 물량’에서 공급업체 변경과 전면 경쟁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원자재와 환율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을 협력업체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지만 납품 단가 인상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방위사업청의 엄격한 원가·이윤 규제로 협력업체들은 최대 9% 미만의 이익에 묶여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해외 수출 물량의 경우에는 국내와 달리 원가·이윤 규제가 없어 체계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협력업체 단가는 오히려 더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이 같은 구조 속에서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의 ‘갑질’을 피하기 위해 눈치를 보며 불합리한 조건을 감수하고 있고, 이는 R&D 투자와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방산 수출의 성과가 진정한 산업 생태계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원가·이윤 산정 구조의 합리화, 장기·공정 계약 확대, 원자재와 환율 변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그리고 수출 이익의 공정 배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은주 기자 kwon@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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