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카이치 총리 당선의 의미와 일본 정치

  • 등록 2025.12.20 16: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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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일본 국회는 자민당 총재 高市早苗(다카이치 사나에)를 제10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했다. 일본이 내각제를 시행한 지 약 14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국내외 언론 보도는 이 사건을 단순히 ‘젠더 장벽을 깬 역사적 순간’으로만 보지 않았다.

 

다수의 국제 언론들은 다카이치 총리의 등장 뒤에 존재하는 일본 정치의 이념적 변화, 우경화 흐름, 보수적 국가전략 재편이 라는 구조적 의미를 함께 지적하고 있다.

 

해외 언론 중 상당수는 이번 총리 선출을 두고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되었다—이는 일본이 우경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보도하며 일본 정치 지형의 변화에 주목했다. 일본 정치가 단순한 인물 교체가 아니라, 이념적 중심축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큰 변화를 겪고 있음을 명확히 지적한 것이다.

 

또한 그녀가 여성 장벽을 깼음에도 불구하고 성평등 정책을 우선순위로 삼지 않고 있다는 점을 함께 강조했다. 실제로 BBC는 “그녀가 성별 장벽을 깨뜨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총리는 성평등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내각에 여성 단 두 명만을 임명했다”고 지적하며, 일본 사회의 구조적 성평등 개선 기대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 여성 총리 탄생의 상징성과 그 이면

 

여성 총리의 탄생은 일본 사회 전반의 성평등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일본 정치· 경제·관료계는 남성 중심적 문화가 강하게 유지돼 왔다. 이러한 구조는 일본 사회의 젠더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여성 총리의 등장이 곧바로 제도·구조 변화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다카이치 총리가 걸어온 정치적 궤적은 일본 사회에서 성평등 혹은 다양성의 확대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랜 기간 전통적 가족제도, 국가주의적 이념, 보수적 도덕관 등을 강조해 왔고, 부부별성(결혼 후 부부가 서로 다른 성씨를 쓰는 제도) 제도나 성소수자 권리 확대 논의에 일관되게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해외 언론이 “일본이 성평등에서 뒤처진 사회이며, 새 정부의 남성 중심 내각 구성은 여성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총리의 등장은 ‘대표성 변화’라는 상징적 의미는 있으나, 구조적 변화를 반드시 담보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의 젠더 정책 변화는 단독 정치 지도자의 성별보다 더 깊은 구조적 요인—노동시장, 기업문화, 전통적 가족제 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자민당–유신 연립체제 성립과 일본 정치 중심축의 이동

 

다카이치 총리 등장이 갖는 더 깊은 정치적 의미는 자민 당이 공명당과의 오랜 연립을 종료하고 일본유신회와 새 로운 연립체제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 변화는 일본 정치의 중심축이 명확하게 우경화된 방향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해외 언론들은 이를 두고 “자민당과 유신회의 협력이 다카이치를 총리직으로 이끈 핵심 요소”라고 분석하며, 이번 연립이 단순한 연합이 아니라 일본 정치구조의 재편이라고 평가했다. 공명당은 자민당의 강경성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온 중도· 온건 세력이었지만, 유신회는 시장주의·개혁보수·강한 국 가관을 가진 정당이다.

 

유신회는 규제 완화·작은정부·경제 효율성·교육개혁을 강조하면서도, 역사·영토 문제에서는 강경하고, 전통적 문화·가치관에 기반한 보수정책을 선호한다. 아사히신문은 이를 “보수 두 정당이 결합해 새로운 정치구조가 탄생했다”고 해석했다. 이 변화는 한국에도 넓은 의미에서 중요한 파급효과를 가진다.

 

일본의 정치가 더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역사·영토 문제에서 일본 정부가 보다 단호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안보협력이나 경제 안보 문제에서는 일본이 더 많은 한국의 역할을 요구할 수도 있다. 즉, 한·일 관계는 ‘갈등의 리스크’와 ‘협력의 가능성’이 동시에 확대되는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 안보 중심의 산업·기술 전략과 동아시아 경제질서 변화

 

경제 안보는 다카이치 정권의 핵심 정책의 축이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AI·양자기술·배터리·우주 등 전략산업에 집중 투자하며 기술 주권 확보를 국가전략으로 삼고 있다.

 

일본의 유력 경제지인 닛케이는 다카이치 총리가 경제안보촉진법 개정을 지시했다는 보도를 내놓으며, 경제·안보의 통합 흐름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금융 언론에서는 다카이치 총리 임명 이후 일본 주식시장이 크게 상승했음을 언급하면서, 일본 산업전략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확인했다. 해외 언론은 “다카이치 총리 임명 소식이 전해지자 니케이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하며 그녀의 경제 이미지가 보수·산업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일본 내부에서 ‘기술 재도약’ ‘산업경쟁력 회복’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은 상황을 보여준다. 한국에게 이 변화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일본의 전략산업 강화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 기회를 확대할 수 있으나, 반대로 공급망 재편과 경쟁 심화라는 위험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 반도체 장비·소재 분야에서 일본 기업이 힘을 회복한다면 한국 기업은 공급망 리스크를 재점검해야 하고, 전략적 기술 투자와 공동 R&D 기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 안보 정책 흐름을 단순한 경쟁으로만 보지 않고, 장기적인 기술·산업 전략 속에서 다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중국·대만 정세 변화

 

다카이치 총리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기존 일본 정부보다 더 분명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선출 직후 그녀가 “일본의 방위력을 강화하겠으며, 미국과의 동맹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일본이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더 큰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최근 중국과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그녀는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일본이 미국과 함께 대응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으며, 이에 중국 정부는 그녀가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러한 긴장은 동아시아 안보지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이 자위대 역할 확대와 미·일 공동 군사훈련 강화를 추진할수록 한국의 전략적 선택지는 더욱 민감해진다. 한국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자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정교한 균형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또한 미국·중국·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삼각 경쟁구조 속에서 한국이 어느 위치를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전략을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다.

 

 

◇일본 사회의 젠더·다문화 정책의 한계와 현실

 

BBC는 다카이치 총리의 내각 구성과 정책 성향을 분석하며 일본 사회의 젠더·포용성 정책이 단기간에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놀라울 정도로 남성 중심인 내각 구성과 보수적 사회정책 이력 때문에 일본 여성들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북유럽 국가들 수준의 여성 정치 대표성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여성 두 명 만을 임명했다”며, 그녀의 젠더정책 약속 이행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일본의 젠더 격차는 단순히 제도 부족 때문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사회문화·기업 관행·노동시장 구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일본에서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낮은 임원진 참여율, 장시간 노동문화, 육아·돌봄의 여성 편중 등은 구조적 문제로 단기간 정책 수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과의 사회·문화 교류에도 영향을 준다.

 

일본이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에 소극적이면, 청년층 교류·교육협력·기업 인재교류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의 사회정책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면밀히 관찰하면서 교류 전략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질서 재편 속 한국의 전략적 선택

 

일본의 최초 여성 총리의 탄생은 일본 사회 전반의 성평등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보수정책이 강화되는 일본 정치·경제·안보의 전반적인 재편을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BBC 일본어판 역시 같은 관점에서 보고했다.

 

BBC 일본어판은 “젊은 여성들에게는 분명히 희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다카이치 씨를 변혁의 옹호자로 보지는 않는다”고 표현하며, 상징적 변화와 실제 정책 방향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일본 내부에서도 공유되는 평가다.

 

아사히신문 또한 이번 총리가 ‘여성’이라는 점보다 ‘보수파 결집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이처럼 상징과 현실의 간극은 일본 사회가 직면한 젠더·사회정책 문제의 복잡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보수정책으로의 방향은 현재 동아시아를 둘러싼 전체적인 질서 재편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은 보다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국가 경쟁력과 외교적 자율성, 경제적 기회는 유지하되, 일본과의 관계에서 사안에 따라 유동적이면서 보다 세밀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글 현재균 교육학박사(쓰쿠바대학 특임연구원)

편집국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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