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에게 권한다’는 지주택사업, 45년 만에 '사기꾼' 손볼까

  • 등록 2025.07.18 14: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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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618곳서 '총 293건' 분쟁 발생...정부, 전면 실태조사 진행
주택조합연합회, 사업계획승인 요건 완화·지주조합원제 등 제안
전문가 "업무 대행사·사업자 자격, 조합업무 투명성 등 강화해야"

 

정부가 지역주택조합 제도(이하 지주택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 조사와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약속한 가운데, 현행 제도를 근본부터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8일 국토교통부는 6월 20일부터 7월 4일까지 진행한 전국 지주택사업 분쟁 현황조사를 발표하면서 “8월 말까지 전수 실태점검을 통해 제도 및 운영상의 문제점을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분쟁과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현황조사에서는 현재 전국에 618개의 지역주택조합이 존재하고, 이 중 30.2%인 187개 조합에서 293건의 각종 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지주택사업 관계자들은 토지 확보의 어려움, 사업운영 및 관리의 불투명성, 추가 분담금 부담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전국지역주택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이번 제도개선에서 ▲사업계획승인 요건 완화(현행 95%→80%) ▲지주조합원제도 도입 ▲조합장·추진위원장 자격제 도입 등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지난 9일 ‘국토이슈리포트 제89호’를 발간하고 정책적 대안으로 ▲표준계약서 도입 ▲공사비 검증제 의무화 ▲분쟁중재위원회 등 공사비 갈등 중재 ▲공사비 증액 적정성 판단 기준 마련 및 불이익 부과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공사비 검증 요청권 보장(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표 발의 됐고, 사업계획승인 요건 완화(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의 내용을 담은 주택법 일부개정안은 발의를 앞두고 있다.

 

◇ 서민 ‘내집 마련 꿈’ 실현 시켜줄 것 기대했지만...

 

연합회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의 한 지역주택조합 가입자 A씨는 조합원 자격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추가 분담금을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합 측은 “제명된 조합원은 기 확보된 지분에 대한 권리를 상실한다”는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이는 조합원 가입을 위해 냈던 돈을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용증명은 A씨에게 협박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문제는 해당 조합은 조합설립인가조차 받지 못한 상태인데다 토지 지주의 20% 이상이 이미 동의서를 철회하거나 매매 계약 해지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합 측은 A씨에게 분담금 납부를 독촉한 것이다.

 

현재 이와 같은 사례들이 비일비재한 지주택사업은 지난 1980년 처음 도입됐다. 무주택자의 주택 마련과 주택공급 촉진을 위해 도입된 제도로, 사업예정지역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합을 결성해 토지를 공동 매입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주택을 건설하는 방식이다.

 

주택 매수 의사가 있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조합을 결성하고 사업을 시행함으로써 절감한 사업비만큼 일반분양 대비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매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업추진의 불확실성, 토지확보 등의 어려움, 사업시행 단계에서의 공사비 증가 등 여러 한계점도 가지고 있어 사업 성공 확률이 매우 낮아 '원수에게나 권하는 지주택', ‘지옥주택조합’ 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 과도한 사업계획승인 요건, 공사비 증가·공사 지연 초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연합회는 제도개선 방안으로 사업계획승인 요건 완화를 제안했다. 사업계획승인은 착공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다. 승인을 받기까지 시간이 길면 길수록 사업 기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공사비도 증가해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

 

현행 주택법상 사업계획승인은 사업부지의 95%에 달하는 토지소유권을 확보해야 가능하다. 재건축사업은 80%, 재개발사업 75%인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도 맞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사업 구조상 토지주의 동의를 얻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기준이라는 것이다.

 

가혹한 기준으로 인한 폐해는 통계로도 나타났다. 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지역주택조합 사업장 수는 2024년 기준 300여곳(약 20만 가구)에 이르며 이중 조합설립인가 이후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한 채 장기간 표류 중인 사업장 비율은 50%에 이른다. 토지확보율이 80%를 초과했으나 법령상 95% 요건을 충족하지 못 해 사업 진행이 불가능한 조합 수는 130여곳(약 8만5,000가구)으로 나타났다.

 

연합회 관계자는 “이들은 모두 합법적으로 조합을 설립했지만, 비현실적인 ‘토지 95% 확보’ 조건 때문에 좌초됐다”면서 “이 조항만 80%로 완화해도, 곧장 수만 호 주택이 공급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국회에서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토지확보 비율을 95%에서 80%로 하향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주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 준비중이다. 현재 공발 상태로 10명 이상의 의원이 동의하면 해당 법안은 공식 의안으로서 효력을 갖는다.

 

◇ 사업 운영 맡는 추진위원회·조합장·업무대행사 자격 제한 필요

 

또한 연합회는 지주조합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현행 주택법에서 조합 설립의 요건으로 사업 대상지의 ‘토지 사용승낙 80% 이상’과 ‘소유권 확보 15% 이상’을 요구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토지소유자는 조합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조합원은 돈을 내지만, 땅은 남의 것이라는 구조가 일반화되어 있고 이는 사업 지연, 지주 철회, 소송, 사업 무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면서 “이제는 토지소유자와 자금 부담자를 일치시키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재개발·재건축에서 이미 적용 중인 방식이며, 지역주택조합도 소유권 기반의 참여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운영 주체들인 추진위원회, 조합장, 업무대행사 등의 자격 제한을 둬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들에 대한 자격제 도입과 교육이수 의무화 등을 제안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사업 추진 전반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사람들이 법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로, 조합원은 정보 비대칭 속에서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조합원이 조합 업무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야

 

실제로 업무대행사가 지역주택조합 임원들과 공모해 조합원들의 소중한 납입금을 횡령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어떤 업무대행사는 모집수수료를 더 많이 받으려고 무리하게 조합원들에게 가입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심할 경우 조합원의 가입계약이 무효로 될 수도 있다.

 

배성권 법률사무소 송지 변호사는 업무대행사에 대한 제도적 규제 방법에 대해 “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업무대행사들도 일반적인 회사이다 보니 법적으로 규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조합과 업무대행사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조합원들이 상세히 알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조합원 모집을 위해서 공사비, 토지비 등을 낮게 책정하는 업무대행사들이 많다”면서 “이는 조합원 분양가와 일반분양가의 차이를 크게 만들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조합원들 모집을 많이 해 수수료를 챙기려는 기만 행위라는 것이다.

 

현행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폐지하거나 초고강도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권대중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서 이 사업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제도를 완전히 바꿀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재도개선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조합 등 사업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자격요건을 아주 강화하든지 아니면 재개발·재건축 사업처럼 토지 소유자들이 끌고 가능 방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철중 기자 almadore75@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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