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와 역사 속에 깃든 문자 정신

  • 등록 2025.06.29 12: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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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51)

 

인류 역사에서 문자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5천~7천 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자 역사에서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문자를 만든 사람이 밝혀진, 몇 안되는 사례 중의 하나다. 박창원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국어사대계 서설」에 따르면, 한글 사용 인구 는 6천3백만 명 정도로, 세계 언어 중에서 사용 인구 순위로 보면 12위에서 13위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박창원 교수는 한국어가 현재의 확산 추세를 유지 한다면 미래 국제어로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 했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기적적인 일

 

한민족은 실로 오랜 시가에 걸쳐 말과 글이 달라 소통의 장애와 문명 발전의 지체를 겪어왔다. 우리말은 빌려 쓴 한문의 어순과 달랐다. 우리말은 조사를 많이 쓰지만 한문은 조사 없이 뜻글자의 조합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이 쓰는 단어들도 중국과는 다른 환경이었던 까닭에 속 시원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세종대왕이 아무리 애민 정신이 깊었다고 해도 새로운 문자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참으로 미스터리할 뿐이다.

 

더욱이 새로운 문자가 글자마다 뜻이 다른 표의문자보다 훨씬 진보한 표음문자를 창조한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더 말을 찾을 수 없다. 더욱이 당시 사대부와 선비들은 모두 한문을 사용하고 있었던 탓에 반대가 극심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었다.

 

새로운 문자를 쓰게 하는 것은 이민족에게 무력으로 새로운 종교를 강요하는 것보다 더 지난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과연 훈민정음 창제후 지배층과 선비들은 거의 사용 하지 않고 백성과 여인네들이 면면히 이어왔다. 마침내 고종이 한글로 공문서를 작성하도록 칙령을 내렸다. 그리고 주시경의 주도 아래 한글 표준화 작업이 시작됐으며, 1933년 조선어학회에 의해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마련됨으로 써 한글이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초석을 갖추게 됐다.

 

한글이 조선 시대에 민간에서 제법 많이 사용됐다고 하나, 문자는 소통의 도구이면서 학문과 기술, 지식과 정보의 기록으로 축적되고 전해져야 하는데 그런 용도로 한글이 사용되지 못했다. 고종이 그 길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 사용은 위축됐다.

 

마침내 1938년 이후 해방까지 일제 당국은 학교에서 한글 사용을 금지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은 한글 박해의 아픔을 겪었다. 우리말을 되찾은 해방 이후에도 국한문 혼용 기간이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됐다. 한글 전용이 일반화된 것은 컴퓨터 자판과 인터넷 정착, 한글 전용 일간지 등장에 의해 힘입은 바 크다.

 

인류 최초의 문자는 쐐기 문자와 상형문자로 기원전 3천 300~3천년 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에서 쓰였다.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자가 나타난 시기는 기원전 1천200년경으로 추정된다. 문자 기원이 이토록 오래됐다고 하면 그간 많은 문자가 만들었을 거리라고 짐작하겠지만, 실제로 발명된 문자는 약 400종, 현재 지구상에 사용되는 문자는 30여 종이라고 한다.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문화론」, 88, 김덕호 등) 한글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문자 중에 포함돼 있으며 사용 인구의 상위권에 든다고 하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 그간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려 애써온 국어학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한글 사용과 한국인의 정체성

 

한 민족 혹은 한 국가의 정체성은 다른 국가와 민족과 구분되는 말을 가짐으로써 동질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말만 가지고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들 집단이 자기만의 문자를 가지고 그 문자를 가지고 자기의 역사를 기록하고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고 문화로 표현하면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일구어 나가는 역량을 보여줄 수 있으며 나아가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받게 되는 것 같다.


2천 년 대 이후 한류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정도로 우리의 지식과 기술, 문화의 역량이 부쩍 성장한 데에는 한 글 전용의 문자 생활에서 적지 않은 긍정적인 효과에 있었 을 것이라고 본다.

 

한자를 혼용해서 쓰던 문자 생활은 아무래도 전통 회귀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뜻글자는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완고함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울러 한자가 갖는 애매모호함과 구체성의 결여를 피할 수 없다. 한글 전용은 새로운 문화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가져다 준 것 같다.

 

한글 전용은 또 표음문자답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틀에 박힌 표현에 서 탈피하여 창조적 사고를 촉진하는 이점을 안겨준 듯하다. 국한문 혼용이냐, 한글 전용이냐를 놓고 논란이 오랫 동안 지속됐는데, 한글 전용으로 돌아선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단 생각이다.

 

◇한글 콘텐츠 시대 열어가야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문명이 먼저냐, 문자가 먼저냐 어느 것이 문명 발전에 더 깊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놓고 학자들 간에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문명의 요소로서 문자가 없는 곳은 허상에 가깝다. 문자가 없다면 국가 단위로서 정체성을 북돋우고, 국가 재정과 군대를 동원하고 문화를 꽃피울 수 없다.

 

그렇지만 한때 강성했던 문명도 힘을 잃어버리면 문자로 사라진다. 인류 역사에서 400종을 넘나들었던 문자들이 지금 30여 종밖에 남지 않은 사실이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듯하다.

 

인류의 문자 역사로 보면 한국은 신생 국가이자 신생 문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유구한 5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한글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 80년이 고작이고 한글 전용 시기로부터 치면 겨우 20여 년이 됐다. 이제 한국이 번영하여 세계 문화에 기여하려면 한글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너머 한글 콘테츠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우리나라 작가인 한강 씨가 작년에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전부터 한류 드라마와 팝, 영화가 뜨고 있었고, 요즘에는 뮤지컬,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콘텐츠라고 하면 창작물만을 연상하기 쉬운데, 다큐, 논픽션, 기록물 등 사실 영역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콘텐츠는 내용 면에서는 완성도가 중요하고 형식 면에서는 논리성, 정확성, 다양성, 객관성, 실험성 등이 주요한 요건이 된다.

 

먼저 한글 사용의 형식 면에서 대담하고 참신한 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까지 국어학자들과 국어운동가들은 표준 문법에 어긋날 경우 날카롭게 지적하며 맞춤법과 표준 틀 안에 숨 막히게 가두어 두고자 경향이 강한 편이었다. 맞춤법과 문법의 통일을 기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한글 사용의 확장성과 새로운 언어 영역으로의 발전 이란 면에서 과감한 실험과 변용의 여지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한국어는 주어와 목적어가 나오고 문장의 마지막에 서술 동사가 나오는 구조여서 앞이 무겁다. 특히 주어와 목적어 앞에 모두 수식어가 중첩적으로 붙을 경우 더욱 그렇다. 이럴 때는 목적어를 주어로 하고 피동태를 쓴다.

 

대부분의 국어학자들은 피동태의 사용을 피하라고 조언하는데, 피하려고만 들지 말고 정면으로 피동태를 능숙 하게 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영어식 표현처럼 어떤 대상을 주어로 놓고 바라보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강 조점도 달라진다. 한사코 사람을 주어로 삼기를 권장하는 것은 시선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

 

한국어는 생략을 남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영어 문장처럼 반드시 주어를 쓸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긴 문장을 쓸 경우 주어를 분명하게 표기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언어 생활을 내용 면에서 살펴보면, 현재 우리 정치와 사회 등 여러 부문에서 극한 대립을 보이는 것도 콘텐츠를 잘 만들지 못하고 오남용하고 왜곡하기 때문 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언어 오용은 미국과 유럽 등 서양 선진국이 우리보다 더 심한 듯하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조화와 통합을 추구해 온 사상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불교가 그러했고 성리학이 서로 다름을 인정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도 궁극적으로는 백성들이 의사소통을 통해 답답함을 풀고 억울한 일을 해원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한글 정신은 조화와 통합을 위한 소통이 그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한글 창제에서 또 배울 점은 세종대왕의 과학적 연구개발 법이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사람의 입술 모양과 혀, 이, 구강, 비강, 목구멍 등 인간의 조음 기관을 철저히 파악하여 최상의 숫자로 간략한 문자를 새로 만들었다. 이들은 형이상학적 사고로 문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말이 나오는 조음 기관을 깊이 관찰하고 이리저리 실험하여 기하학적 도형 형태의 문자를 연상한 것은 탁월하다 못해 신비로울 뿐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당시 모든 문자 자료 를 섭렵하고 무서운 집중력으로 연구한 끝에 인류 문자사에 길이 남을 형태를 발명한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세종대왕의 이와 같은 과학적 발명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허다한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종 대왕 당시에 양반층들이 사용했던 한문이란 장애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은 오히려 작아 보인다.

 

한글의 창조 정신과 과학적 발명 정신을 오늘날 되살리고자 한다면 어릴 때부터 학교 교육에서 실행하는 만큼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가장 좋은 실행 방법은 글쓰기와 토론, 발표를 병행하는 과목을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편성하고 글쓰기 전문 교사들을 선발해 배치한다. 대학에서도 당연히 교양 필수 과목으로 글쓰기 과목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어 교육을 보면 국어학의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한글을 실제로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종 류의 콘텐츠로 만들어 보는 경험을 가지게 해야 한다. 지식의 인풋은 있는데, 글쓰기와 콘텐츠의 아웃풋은 없는 절름발이 교육을 해방 후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선진국의 학교에서 다 하는 것을 우리나라 학교들만 외면하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글 정신의 회 복은 한국의 미래를 약속하는 가장 첩경이자 정도라는 생각이다.

이상용 주필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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