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독립·평화사상(2)

2023.12.04 18:29:52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33)

안 의사는 1908년 6월 망명지 블라디보스톡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두만강 건너 국내로 들어온다. 함경북도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중 붙잡은 일본군 포로들에게 질문을 한다.  


“그대들은 모두 일본국 신민들이다. 왜 천황의 뜻을 받들지 않고, 러일전쟁을 시작할 때 동양 평화와 대한 독립을 보장한다 해놓고는, 오늘에 와서 이렇게 (조 선을) 침략하니 이것이 역적 강도짓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했더니, 그들이 눈물 을 흘리며 대답하기를, ‘우리들의 본심이 아니요,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사람의 정리인데, 우리들이 만리 바깥 싸움터에서 주인없는 원혼이 되게 되었으니 어찌 통분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렇게 된 것은 이토 히로 부미의 죄입니다. 천황의 뜻을 받들지 않고 제 마음대로 권세를 주물러서, 귀중한 생명을 무수히 죽이고 저는 편안히 누워 복을 누리고 있으므로 우리들이 분개한 마음이 있건만, 어찌할 수 없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훗날 역사적 판단이 어찌 없겠습니까.

 

우리들은 농사짓고 장사하던 백성일 뿐입니다. 이같이 나라에 폐단이 생기고 백성들이 고달픈데, 평화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일본이 편안하기를 어찌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비록 죽기는 하나 통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라고 하면서 통곡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내가 그대들의 말을 들으니 과연 충의로운 사람들이라 하겠다. 그대들을 놓아줄 것이니 돌아가거든 그 같은 나쁜 우두머리는 쓸어버려라.” 


포로를 풀어준 것에 대해 부하들이 납득을 하지 못하자 안 의사는 “지금 우리는 약하고 적들은 강하니 무조건 싸울 수는 없다. 충성된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 이토의 포악한 정략을 공격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 열강의 동정을 얻은 다음에야, 한을 풀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물리치고 어진 것으로서 악한 것을 대적한다는 것이다. 그대들은 부디 더 말을 하지 말라”하고 타일렀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의사의 의견에 따르지 않았다. 


당시 일본군들은 조선인 의병을 붙잡으면 모두 처형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안 의사는 만국공법을 들어 포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할 뿐만 아니라 불쌍히 여겨 방면했다. 참으로 조선인의 선한 품성과 대인다운 풍모를 읽을 수 있다. 


안 의사는 의병 활동을 그만두고 난 뒤에 일본군의 소탕 작전을 피하느라 산속에서 굶어죽을 뻔했으며 일진회 잔당들에게 붙잡혀 맞아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안 의사는 1909년 러시아 연해주 한인마을 연추에서 동지 12인과 같이 손가락을 잘라 피로써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한다. 안 의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우리들이 이제까지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으니 남의 비웃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요.

 

뿐만 아니라 강력한 조직이 없으면 어떤 일도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인즉, 오늘 우리들은 손가락을 끊어 맹세를 같이 하고 증거를 보인 다음,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기어이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소”하자, 모두가 그대로 따르겠다 하여, 마침내 열두 사람이 각 각 왼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써 태극 기에 글자 넉자를 크게 쓰니 ‘대한독 립(大韓獨立)’이었다.  쓰기를 마치고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다음 하늘과 땅에 맹서하고 흩어졌다”고 썼다.


12명의 조선인 청년들이 한 장소에 모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손가락을 자르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장엄하고 천지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듯하다. 이제 안 의사 앞에 그의 목숨은 중요치 않고 오직 의롭게 값지게 죽을 일만 남았던 것이다.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 서」에서 “무릇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실패한다’라는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지금 세계는 지역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지고 인종도 제각기 달라 서로 경쟁하기를 마치 차 마시고 밥 먹는 것처럼 한다. 농사 짓고 장사하는 일보다 예리한 무기를 연구하는 일에 더 열중하여 전기포, 비행선, 침수정을 새롭게 발명하니, 이것들은 모두 사람을 해치고 사물을 손상시키는 기계이다”라고 말했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일본 여순 고등법원 원장과의 면담에서 그의 동양평화론을 개진했다. 청국의 여순항을 청국과 일본, 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공동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며 이를 위해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런 구상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의해 실현 될 수는 없었다.

 

안 의사가 구상한 바 대로, 한, 중, 일 삼국이 대등한 관계로 서로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공동번 영을 도모하자는 간곡한 평화 정신은 날이 갈수록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중일 삼국 회의 제안, 안 의사 평화 정신 담겨지기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한중 일 3국 정상회의 개최가 유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한덕수 총리에게 방한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한국이 일본과 중국에 11월 외교장관 회의를 제안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3국 외교장관 회의는 3국 정산회의의 사전 준비 성격을 자연히 띠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은 안보 위기를 실감하고 있지만, 그만큼 유럽 국가들 간의 단결은 더 강해지고 있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의 긴장과 갈등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 대 만, 중국과 필리핀 사이는 우발적인 충돌을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중국은 군사력을 급속도로 증강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근 국가들의 군사력을 동시에 확대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현 단계에서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중일 3국은 미-중 간 경제제재의 파장이 3국 사이에서는 가능한 한 미치지 않도록 긴밀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한때 활발했던 3국간 문 화 및 학술교류, 청소년 교류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안중근 의사가 꿈꾸었던 것처럼 아시아 국가들도 EU와 같은 지역 통합 구상을 전문가 수준에서 논의해야 한다. 아시아안들은 힘을 앞세운 패권 경쟁에서 벗어나 인류가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기후 문제와 자원 협력, 빈곤과 불평등을 함께 해소하는 데 힘을 모아 안중근 의사가 110년 전 갈망했던 동양 평화 구상이 실현하기를 기대해본다.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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