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초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등의 영향으로 가계대출이 늘자 대출 수요 억제를 위해 가산금리 인하에 제동이 걸렸지만, 예금금리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서민들은 낮은 예금 이자에 저축은 줄이고, 받기 힘든 은행 ‘대출 문’을 두드리다가 제2, 제3의 금융권에 노크하고 있다.
실제 은행 수익으로 직결되는 예대금리차가 이례적으로 벌어지면서 4대 은행은 1분기 ‘이자 장사’로만 8조6000억 원을 벌어드렸다.
이런 가운데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경기 상황 악화로 서민들의 대출 연체율은 증가하고 있다.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서민대출 연체율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저소득·저신용자를 위한 햇살론뱅크의 경우, 정책자금으로 대신 갚아주는 대위변제율이 16.2%까지 상승했고 소액생계비대출 연체율은 30%에 달한다.
특히 저신용자들은 2금융권의 대출 문턱마저 높아지면서 파산까지 이르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3월 저축은행 79개사 중 3억원 이상 가계신용대출을 취급한 32곳 중 신용 점수 600점 이하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은 비율은 62.5%(20개사)로 집계됐다.

●기준 금리 인하해도 은행 대출금리는 제자리...4대은행, 이자장사로 8조600억 수익
하지만 이 시기 은행권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5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기록한 이자이익은 50조3,735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KB금융이 전년대비 5.3% 증가한 12조8,267억원, 신한금융은 5.4% 늘어난 11조4,023억원을 올렸다. 우리금융은 2% 늘어난 8조8,863억원을, 8조7,610억원 하나금융과 8조4,972억원 농협금융은 소폭 내렸다.역대급 이익에 은행 구성원들의 처우도 대폭 향상됐다. 4대 은행의 2024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은 1억1840만원으로 전년(1억1628만원)보다 200만원 이상 늘어났다.
박연미 경제평론가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동결됐는데도 은행들은 이달 들어 추가 인하에 나섰다. 1년 만기 은행 예금에 1% 금리 상품이 등장할 정도로 예·적금 금리가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인과 주식이 활성화되는 등 금리 인하로 인한 이자 매력이 사라지면서 2023년에만 440만 개 계좌가 해지됐고, 최근 2년새 1000만 계좌 이상 정기예금이 사라졌다”며 “시중은행 측은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를 관리하겠다는 기조라, 가산금리를 낮추거나 시장 금리 하락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데에 눈치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대금리차가 각각 2년 9개월 만에 최대...국회 ‘예대금리차 공개법’ 발의까지
은행의 이자 수익과 서민들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이 장기간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은 점은 비판받을 만하다.
지난 16일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비례대표)은 시중은행이 예금·대출 금리 차이(예대금리차)를 홈페이지 등에 직접 공개하도록 하는 ‘예대금리차 공개법’(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시된 예대금리차 비교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신규 취급한 가계대출의 예대금리차는 1.38%~1.55% 포인트로, 은행연합회가 공시를 시작한 2022년 7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19개 은행으로 확대하면, 전북은행이 3월 예대금리차가 7.17%p로 압도적 1위였다. 2∼4위의 한국씨티은행(2.71%p)·제주은행(2.65%p)·토스뱅크(2.46%p)·광주은행(2.34%p)도 2%p를 훌쩍 넘었다.
금융위원회는 그간 예대차금리 공시제도를 운영하며 소비자에게 금리 정보를 제공해 왔으나, 예대금리차 확대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적인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김장겸 의원은 은행이 자사 홈페이지 등 고객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경로로 예·적금 금리, 대출금리, 예대금리차를 매월 공시하고, 예대금리차가 증가하는 경우 금융위원회가 금리 산정의 합리성과 적절성을 검토해 개선 조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면 은행은 이자 수입을 얻지만, 그만큼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며 “은행 홈페이지 공시로 소비자와 은행 간 정보격차가 해소되고, 규제보다는 은행 스스로 합리적 금리 산정에 나서는 사회적 경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 배불리는 구조의 문제...자발적 경쟁, 은·산 분리 개혁 불가피
전문가들은 인터넷 은행을 진입 장벽 해제 등 인터넷은행과의 경쟁 구조 형성과 은·산(산업 자본의 은행자본 소유 제한) 분리 등 제도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중은행 독과점 폐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온라인 전업은행 신규 인허가 확대 ▲인터넷은행 인가 ‘제4·5 인터넷은행’까지 확대 ▲핀테크, 빅테크, 통신·유통 결합형 인터넷은행 허용 ▲진입 문턱 낮추고, 은행업 라이선스 규제 일부 완화 ▲예대금리차 정보 실시간 공시 의무화 ▲핀테크 대출·결제업자의 은행 수준 대출 확대 허용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파이낸셜 스위치’ 제도 법제화 ▲지역 중소은행·특화은행에 대한 디지털 혁신 지원금 확대, 규제차 등을 제언했다.
김대종 교수는 “예대금리차 공개만으로는 은행 독과점 구조를 깨기 어렵다. 온라인 은행, 핀테크, 지방은행 등 다양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신적으로 해제하고, 소비자가 손쉽게 금융사를 옮길 수 있는 ‘파이낸셜 스위치’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독과점 돼 버린 은행권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신규 은행들의 진입 문턱을 낮추고 자발적인 경쟁을 더 유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우 교수는 “은행연합회를 통해 사실상 담합구조가 만들어져 있어 돈을 빌리는 사람도 돈을 맡기는 사람도 손해를 보기 때문에 예·대금 마진이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며 “문제가 있는 은행들을 퇴출하고 새로운 은행들을 시장에 진입시켜 경쟁 구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은행을 만들 정도의 대규모 산업 자본이 들어올 수밖에 없고 은·산 분리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며 “금융은 정부가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산업인데, 국민이 어려울 때 은행이 그간 고통분담을 얼마나 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고 되짚었다.
한편, 6월 조기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이 이자 장사 손질에 나설 것으로 예고되는 만큼 대선 이후 은행권의 정책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가산금리 산정 기준의 표준화 및 공개 의무화, 대환대출 활성화, 중도상환수수료 감면 등을 통해 금융 소비자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서민·소상공인 대상 특별융자와 전문은행 설립 등을 통해 금융 접근성과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