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분노와 한반도에서 시작된 콩의 세계사

  • 등록 2025.10.29 14: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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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 대륙의 지정학적 곡물이 된 콩

 

요즘 국제 곡물 시장을 들여다보면 콩 한 알에 얽힌 지정학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미국산 대두 대신 브라질산을 사들이는 것을 불공정이라며 분노했다. 그의 불만 뒤에는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니라 세계 식량 패권을 둘러싼 거대한 싸움이 숨어 있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된 무역 전쟁 이후 '대두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해 왔다. 지난달 브라질 곡물수출업체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브라질의 수출량은 지난달까지 1억 2,20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중 79% 이상이 중국으로 수출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업체들은 주로 브라질에서 대두 수입을 늘려왔다"며 "미국산 대두는 높은 관세와 정치적 위험으로 인해 무역이 어려워지면서 수입을 기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때 중국의 '최대 대두 수출국'이었던 미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중국의 대두 수입량 중 미국산 비율은 미중 무역 전쟁 이전인 2016년 39.4%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21.1%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중국은 지난해까지 미국 대두 수출량의 52%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올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무역 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은 5월 이후 미국산 대두 주문을 완전히 끊은 상태다.

 

지난달 미국 농가가 대두 수확기에 들어갔는데도 이렇게 중국 판로가 막히자, 미국 중서부 콩 벨트의 농민들은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했다. 콩의 수출길이 막히는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정치적 명운을 흔드는 의제로 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산 콩 수입을 중단하고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거래 국가를 바꾼 것이라고 격분했던 거였다. 콩 벨트 농민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던 것은 물론이다.

 

미국 콩 재배 농민들에게 콩은 이처럼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생존과 정치적 정체성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비난은 경제적 손실 이상의 패권의 자존심이 무너진 절규로 보인다.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만주 일대다. 기원전 3천 년경 이미 재배되었으며 그 후 중국 일본으로 전파되어 동아시아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18세기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일본에서 유럽으로, 19세기에는 미국으로 옮겨가 신대륙 농업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 1929년 미국의 동양 식물원정대, 한반도에서 콩 종자만 4천여 종 수집

 

특히 콩의 진가를 파악한 미국 농무성은 1929년 동양식품 원정대를 만들어 만주, 조선, 일본에서 4천여 종의 콩 종자를 수집했는데 이 가운데 70%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채집한 거였다. 이를 토대로 종자 개량이 이루어졌고, 콩은 남미 등지로 퍼졌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콩을 이용한 바이오플라스틱(콩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1937년경 콩 섬유질로 플라스틱을 만들어 자동차 부품 및 차체에 활용하는 연구를 진행했고, 1941년에는 콩 플라스틱으로 만든 차체(車體)를 선보이기도 했다. 콩 플라스틱은 페놀과 포르알데히드를 섞어 만들었다. 콩의 강도를 입증하기 위해 도끼로 부품을 내리치는 시연을 하기도 했으나 비용 문제로 인해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브라질에서 콩이 처음 뿌리를 내린 것은 19세기 말 일본의 이민자들 덕분이다. 그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종자를 남부 지역에 심었지만 더운 열대 기후 탓에 수확은 미미했다. 그러다 1960~70년대 미국의 곡물 기업, 카길, ADM 등이 브라질 정부와 손을 잡고 세라도(Cerrado)라 불리는 열대 사바나 지대를 개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브라질 군사정권은 농업을 국가 성장 전략으로 삼았다. 미국은 기술과 자본을, 일본은 열대형 대두 품종 개발 기술을 지원했다. 그 결과 콩에 맞는 토양으로 개량하고 기계화 농업을 도입하면서 세라도는 세계 최대의 콩밭으로 변해갔다.

 

2천년대 들어 중국의 사료용 대두 수요는 폭등했다. 브라질은 그 수요를 흡수하며 급성장했다. 오늘날 브라질의 대두 수출은 연간 250억 달러~300억 달러에 이르러 국가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콩이 이제 남미 대륙 국가의 주요 수출품이 된 것이다.

 

중국은 14억 명의 단백질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대두를 수입한다. 대두는 두부나 간장, 콩기름뿐 아니라. 가축 사료의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콩 수입선의 변화는 단순한 무역이 아니라 식량안보와 경제 주권의 문제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분노는 경제전쟁의 상징이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시작된 작은 콩알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작지만 세상을 잇는 거대한 씨앗 콩

 

콩은 인간의 삶과 닮았다. 콩은 땅속에서 조용히 발아하고 스스로 질소를 포집해 질소 비료를 만들고, 햇빛과 비를 모아 단단한 콩이 된다. 언뜻 작고 보잘것없지만 어느 나라든 콩이 없는 식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된장과 간장, 두부와 청국장, 우리 식문화의 근간이 되는 콩은 발효와 기다림의 철학을 가르친다.

 

속도와 효율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오늘날 세계에 있어서 콩의 인생은 그 반대편에 있다. 묵묵히 땅을 딛고 오랜 시간 숙성하며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까이 머문다. 그 덕분에 콩은 인류의 식탁을 넘어 경제와 정치 무대까지 진출한 존재가 되었다. 콩 한 알 속에는 자연과 문명 생명과 시장의 역사가 함께 들어 있다.

 

콩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묘한 생각이 든다. 우리의 콩이 세계로 퍼지면서 인류의 식량을 책임지게 되었지만 정작 한국은 콩 자급률이 20%도 안 되니까 말이다. 콩의 원산지인 우리나라가 콩을 수입하는 현실. 수입의존도가 높아지면 식량안보는 흔들리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그림자이자, 식량안보의 경고음이다. 식량은 정치와 기술 그리고 기후에 의해 움직이는 지정학의 축소판이다. 한반도의 밭에서 시작된 콩이 미국의 중서부에서, 브라질의 세라도 초원에서 다시 피어났듯 우리도 식량의 뿌리와 철학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씨앗은 기억을 품고 있다. 비록 미국과 브라질의 콩밭에서 자라서 세계 곳곳으로 운반되어 가고 있지만 그 한 알의 콩 속에는 한반도의 흙냄새가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손길이 여전히 살아있다.

 

트럼프의 미 대통령의 분노와 중국의 전략. 브라질의 확장-모두 콩 한 알에서 시작된 세계사의 파동이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 다시 콩의 고향으로서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문화의 중심을 세워야 한다. 콩은 우리에게 “비록 나는 작지만, 세상을 잇는 씨앗이라” 속삭이고 있다.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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