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대멸종 공포(2)

2024.03.31 08:35:14

염세주의를 거부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꺾어야

 

좌파든 우파든 우리의 생존은 염세주의란 인간의 허무주의적인 판단이라는 것을 인지하여 거부하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꺾어 버리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인간 멸종에 관한 두려움의 서구적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고 있다. “절망에 빠져드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 고. 내 대답은 항상 이렇다. “멸종 역사의 공포에 대해 배우는 이유는 실제로 자유로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이 낙관주의를 위한 이유일지라도 말이다.”

 

초기에 겪은 이러한 극심한 공포 가운데 일부는 불완전하고, 잘못 해석된, 혹은 창조적으로 적용된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었다. 새로운 고생물학과 지질학의 여러 이론은 예를 들어, 19세기 초 영국에서 많은 멸종 담론을 부추겼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기근과 인구폭발의 두려움을 선동했다.

 

다른 순간의 피해망상, 냉전 기간 핵으로 인해 유발된 여러 고통은 너무나도 현실에 터 잡고 있었다. 거의 모든 세대는 그 세대가 마지막 세대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종족은 지속되었다.

 

자넷 윈터선(Jeanette Winterson)의 소설 “The Stone Gods”에 나오는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역사는 자살 유언장이 아니야-우리의 생존에 대한 기록이다”라고 말한다.

 

1차 대전 이후 여러 해는 좋은 시절과 활기 넘치는 기간이었다는 민중의 지혜와 달리 1920년대는 어두운 구름이 이따금 하늘에 떠가고 있었다. 임박한 재앙의 두려움-또 다른 세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오는 두려움이고 이른바 인종의 순수성이 썩고 자동화됨으로써 노동할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이 차고 넘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술을 마시며 흥청거리게 만들었고, 덕분에 유명한 암시장의 술은 악명이 높았다.

 

그러한 20년대는 실제로 시끄럽고 활동적이었으며 또한,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파멸을 분명히 보여주는 수치들은 멀리 가장자리에서 있어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최후의 결전 아마겟돈의 지구로 돌아온 윈스턴 처칠

 

1924년 10월 30일-손에 실크해트를 든, 음울함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불도그같이 찡그린 표정을 짓는 모습으로 유명한-윈스턴 처칠은 스파르타식 무대 위에 서서, 처칠의 의회 귀환 소식을 알리는 신문을 든 한 남자의 어깨 위를 유심히 보고 있다.

 

그는 바로 전날 영국 엑시스 주 에핑(Epping) 지역구 의석을 얻었다. 의회를 떠난 지 2년 만이었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모인 정치인들과 하이힐을 신고 가죽 제품을 입은 그의 부인은 더러운 창과 얼룩이 진 외장재가 쭈글쭈글해진 우중충한 의회 건물을 무대로 삼았지만, 코미디처럼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10년, 그리고 미래에 수상이 될 사람의 기분을 우중충한 건물에 비유한 것은 적절했다. 고 본다. 처칠은 당시의 사태를 비관하고 있었다.

 

그 이전 해에 여러 전집물 가운데 그의 문학적 최고의 업적으로 간주하게 될 첫 번째 책, 즉 제1차 세계 대전을 암울하게 되돌아보고 그에 대한 의견을 잘 정리해 펼쳐 놓고 제시한, 처칠의 표현대로 라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군과 악군의 최후 결전장) 아마겟돈의 이정표”라고 볼 수 있는 “The World Crisis”가 출간되었다.

 

1924년 9월은 그의 에핑 선거 한 달 전이었다. 이때 처칠의 지적 생활에서 두 가지 주목할 만한–하나는 중대하고 다른 하나는 작은-사건이 세상을 보는 그의 음울함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중대한 사건이란 그가 보수당의 지지를 받는 입헌주의자로서 국회의원에 도전하면서 오랫동안 자유당 가입을 끝내고 좀 더 우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표시였다. 작은 사건은 새로운 전쟁 기계가 곧 우리의 종족을 지워버릴 것이라고 주장한 암울한 에세이를 출간한 것이었다.

 

직설적으로 “Shall We All Commit Suicide?”라고 제목을 붙인 이 에세이는 인류의 전망을 암울하게 평가했다. “어떤 암울한 사실이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나는 산처럼, 견고하고도 바뀔 수 없는 존재처럼 출현하고 있다,”고 처칠은 썼다.

 

“인류는 이러한 위치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덩 두렷이(사물의 모습이 웅장하게 높으며 흐리지 않고 분명하게) 현명한 지도(指導)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덕의 개선이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절멸을 확실하게 성취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쥐게 되었다.”

 

으스스한 원자폭탄이 나올 수 있다고 그는 예시하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묻고 있다. “한 블록 전체의 건물들을 파괴할 수 있는-아니, 총알, 폭탄 등에 쓰이는 수천 톤의 화약인 코르다이트의 파괴력을 집중해 지방정부 단위의 지역을 한 방에 날리는 비밀스러운 힘을 가진 오렌지보다 더 크지 않은 폭탄이 발견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는 유럽을 소모전으로 몰아간 그 전쟁은 다가올 공포의 “그저 창백한 예비단계”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에세이의 결론으로 삼았다. (처칠이 생각한 인류의 멸종은 다음 편으로 이어짐)

 

윤영무 본부장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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