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도전’ vs ‘자율성 침해’...정부·농협 정면충돌
- 감사위 신설·직선제 도입 핵심 쟁점 부상...농민 실익 어디로
정부가 강도 높은 농협 개혁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농협은 조합장들을 중심으로 집회를 열며 연일 반대 행동에 나서고 있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5월 내 1차 개혁 방안을 확정하고 2차 개혁에도 나서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농협 측은 지난 28일 국회 앞에서 전국 농축협 조합장과 농민 500여명(주최측 추산)이 ‘농협 자율성 수호 공동선언식’을 개최했다.
이들은 이번 농협법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 중 △농협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관치 감독 즉각 중단 △법적 안정성 해치는 독소조항 폐기 △자회사 지도·감독권 존치를 통한 협동조합 정체성 수호 △비효율적 감사 기구 신설안 철회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 변경 시도 중단 등 5개 사항을 요구했다.
농협 자율성 수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전국 조합장들과 2만여 농민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듣지 않고 충분한 논의 없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농업·농촌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입법 추진을 중단하고 충분한 의견수렴과 절차적 정당성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또한 비대위는 이번 농협법 개정안이 농민의 실익에 악영항을 미칠 것이라는 입장이다. 농협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통제는 결국 농업인 지원 사업의 축소와 농가 경영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농식품부 “관리·감독 강화는 자율성 훼손 아냐”
이에 앞서 지난 27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조합원과 국민 대다수가 농협 개혁에 찬성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의뢰로 한국갤럽이 실시한 농협 개혁 필요성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조합원의 94.5%, 일반 국민 95.1%가 찬성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농협감사위원회 설치는 조합원 85.8%, 일반 국민 95.3%, 농식품부의 지주·자회사 감독권 강화는 조합원 67.5%, 일반 국민 85.0%가 찬성했다. 조합의 정보공개 청구권을 조합원 1인 청구로 완화하는 방안에도 조합원 68.9%, 일반 국민 79.9%가 찬성했다.
농협 개혁이 필요한 이유로는 회장·조합장 등 임직원 비위 문제, 조합장이 중심이 된 운영구조,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 문제 등이 주로 꼽혔다. 다만 직선제 도입에 따른 선거비용 증가와 회장 권한 집중, 농협감사위원회 설치에 따른 정부 영향력 강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농식품부는 농협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는 자율성 훼손이 아니라 견제 기능 회복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중앙회장 조합원 직선제로 회장 권한이 강화되더라도 감사 기능을 강화하고 운영 투명성을 확대함으로써 권력 집중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농식품부는 이번 개선 방안을 5월 내 확정하고 후속 논의를 통해 경제사업 활성화, 조합 규모화 등 농협 본연의 역할 회복을 위한 2단계 개혁안을 6월 중 마련할 방침이다.
◇ 농협, 일방적 추진 불만...농민 실질 도움 방안도 논의해야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농협의 개혁을 꾸준히 주장해 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성명을 통해 “농협 개혁은 농민을 위한, 공공성 회복을 위한 구조개혁이 돼야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경실련은 정부합동 특별감사 결과에 대해 “농협중앙회 핵심 간부들의 위법과 전횡, 특혜성 대출·계약, 방만한 예산 집행이 광범위하게 확인됐다”며 “이는 작동하지 않는 내부 통제장치와 금품에 취약한 선거제도가 무관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 결과”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는 특별감사를 통해 위법 소지가 큰 14건에 대해 수사 의뢰하고 96건의 위법 의심 정황을 적발했다.
이 결과에 대해 농협은 자체적으로 외부 인사를 위원장으로 한 농협개혁위원회를 신설해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외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강경한 방안을 수립하자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강경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농협은 현행 존재하는 내부 감사 기능을 없애고 외부 인사 중심의 농협 감사위원회를 신설한다는 방안은 농협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실질적인 자정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감독기구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농협중앙회 간부가 1심에서 유죄 선고 시 직무정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법이 보장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회계장부 열람 요건의 과도한 완화는 무분별한 정보공개 청구로 이어져 조직의 행정력을 마비시키고 선거 등에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한 농협은 농민의 실익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령 교집비와 브랜드 사용료를 받아 교육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외부에서 보기에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다.
현행 중앙회장 선거제도를 조합장 직선제에서 조합원 직선제로 바꿀 경우 선거 예산만 190억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는 게 농협 측 주장이다. 농협 감사위원회 신설 자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농협 한 관계자는 “우리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개혁안을 도출하자는 것인데, 6.3 지방선거를 시한으로 두고 급하게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항들은 아무것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 187만 농민 중인 중앙회 역할 필요
정부 특별감사를 통해 드러난 농협중앙회 회장 및 간부들, 조합장 등의 위법 행위는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농협 내부에서도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공감하고 자체적인 자정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이 같은 농협의 비리는 오랫동안 여러 구조적 문제들이 쌓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때문에 자체적인 감사기구를 만들더라도 실효성에 의심이 간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적절한 관리·감독 기능 강화와 비위 근절을 위한 투명성 강화는 필수적이다.
문제는 조합장이 아닌 조합원의 목소리다. 현재 농협 조합원이라는 A씨와 B씨는 “농협법 개정안이라든지 현재 농협에서 무슨 집회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면서도 “언론 등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면 농협 개혁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농협의 반대 행동은 조합장 위주로 진행된다는 일각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 농협 조합장 약 1100여명 수준이고 조합원 수는 약 187만명으로 추산된다. 경실련은 “농협의 본질은 단순한 금융·유통 기업이 아니라 농민이 주인인 농업협동조합”이라며 “중앙회는 협동조합 본래의 정신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조합원의 권익증진을 위한 연합조직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협 비리 문제가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외부 통제와 투명성 강화 필요성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개혁 속도와 방식, 그리고 농협의 자율성 보장 범위를 둘러싼 충돌은 당분간 불가피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