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우리의 무심한 일상을 흔들었던 계엄령 포고를 듣고 분노하면서 늦은 시간 각지에서 달려가 계엄군의 탱크를 막아서는 민주시민들의 모습이 생중계됐다. 계엄은 헌법 절차를 통해 해제되었다. 이후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적대국에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의 비상식적인 계략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다시금 악의 평범함을 떠올린다.
새로운 입법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던 자들의 수많은 조작과 위증이 특검을 통해 어느 정 도는 사실에 근거한 퍼즐로 맞춰지면서 임무에 종사했던 각 분야의 권력자들과 군인,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그를 위한 방어 전략에 목숨을 건 듯했다. 불법 계엄 파동이후 국가 경제는 휘청거렸고 서민들의 삶은 더 위태로워졌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이 오늘의 현실에서도 너무도 당당하게 꿈틀거리고 있었음을 확인한 것이다. 사유하지 않는 자들의 평범한 악행이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음이다. 광주 민중항쟁에서 축적된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또 △사이비 신념 △음모론의 확장 △확증편향의 선동과 억지 주장 등등의 부조리한 사태는 최소한의 이해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국정 책임자인 장관이라는 자는 법정에 나와 대통령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악의 선봉자를 지키려는 경호원의 노력은 눈 뜨고 볼 수 없이 민망하다. 영부인이었던 자의 불법적인 악행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쏟아지며 법의 심판대에서 하나둘 까발려지는 중이다. 논문 표절 정도는 아주 사소한 범행이라 치부될 정도로 종교단체와 부정한 청탁을 위해 줄선 자들이 바친 뇌물 규모는 가진 자의 끝없는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윤리 의식을 망각하거나 악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가짜 사람이었던 걸까. 많은 조력자가 기소 대상으로 발표됐다. 현실을 기만한 악행 집단을 처단할 시간이 도래할 것으로, 지금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듯한 1500년대의 현상을 그 시대의 소설가와 화가의 시각으로 살펴보려는 이유다.
첫 번째로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 1525?~1569)이란 네덜란드 화가가 있다. 그는 농민의 삶을 가까이 살면서 관찰 했으며 낙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따듯한 시선을 가진 화가다. 그의 작품 중 (1559)이란 유화로 100개의 속담을 한 화면에 표현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그로테스크하게 옮겨 놓았다. 풍자화가로서의 날카롭고 신랄한 표현은 당대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칼뱅주의를 신봉하던 신교도들이 구교의 성상을 파괴하는 봉기를 일으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1567년 1만2000명의 병력을 네덜란드에 파견한다. 책임을 수행하던 알바 공작은 네덜란드 민병대를 진압하고 ‘공안 평의회’라는 기구를 설치한다. 정치적 반대자들과 이단으로 몰린 사람들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역사적 사건이다. 그 시대에 풍자적인 그림을 그리는 일은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던 살벌한 상황이었다. 브뤼헐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워 달라 유언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중 (1568)라는 작품이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또 다른 장애인을 이끌고 가다가 모두 구렁텅이에 빠지는 장면으로,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에 그린 그림이다. 그에게는 부 조리한 성직자와 고위 관료, 그리고 농민들까지도 조롱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행위에 생각 없이 따르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날카로운 풍자를 읽을 수 있다.
악행을 하는 자에게 충성을 다했거나 고민없이 동조했던 가담자들이 특검을 통해 줄줄이 소환을 앞두고 있다. 말 한마디 못하고 명령을 따르던 자들의 모습은 김남주의 시에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었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이라며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법 앞에서의 당당한 진술은 개밥을 주는 사람에 게 충성을 성실하게 다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로는 프랑스 인문주의를 신봉하던 수도사이며 외과 의사였던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의 5부작 풍자소설이다. 라블레는 1534년에 소설을 발표한다. 주로 가르강튀아(Gargantua) 왕과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의 행적을 다루는 소설인데, 왕은 태어나는 순간 부터 ‘마실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무언가를 갈망하면서 무서운 말들을 외치는 거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원하는 바를 행하라’라는 명에 따라 금지된 일도 수행하는 태도를 삶의 방식으로 정하고 있다. 항상 갈증으로 마실 것을 요구하던 자, 단순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는 거인이 었다. 그는 전쟁을 벌이는 일이나 전략적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위대한 존재인지 대식가의 위를 가진 존재인지는 몰라도 영웅 놀이를 지속시키고 싶은 무모한 자였음은 분명하다.
당대 영웅을 칭송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대한 풍자가 유행하던 시기에 가르강튀아는 먹고 마시 는 것을 즐기는 ‘먹보’ 또는 ‘바보’ 왕의 이미지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이 1545년 금서로 지정되자 라블레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메츠(Metz)라는 도시로 몸을 숨겼다. 19세기 프랑스 근대 사실주의 선구자이며 신문 삽화가인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는 소설 주 인공인 ‘가르강튀아’와 그의 아내를 그렸다.
그는 정치적인 풍자로 유명한 화가인데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이나 부조리한 정치적 상황, 정치인들을 비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4000여 점의 석판화와 작품으로 발표했다. 그림 속 인물은 라블레 소설 속 주인공 ‘가르강튀아’의 모습이다. 서민들이 바치는 재물을 먹고 있는 모습과 발아래 널브러져 있는 서류 더미가 보인다.
현실에서 그림 속 진짜 주인공은 루이 필립 1세인데 세금 인상에 대한 풍자를 ‘가르강튀아’를 빌려 묘사했다. 의자 밑에는 부르주아들이 국왕의 훈장을 받아들기 위해 손을 뻗치고 있다. 또 다른 작품은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의 끊임없는 욕망을 묘사했는데 귀족들이 갖다 바치는 돈을 먹는 괴물처럼 보인다. 소설에서 유래한 ‘팡타그뤼엘리즘’이라는 개념이 있다. 평화롭고 즐겁게, 언제나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사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최근 우리나라에 ‘팡타그뤼엘리즘’을 닮은 권력자가 등장했지만, 다행히 바보짓을 일삼다 사라졌다. 폭탄주에 계란말이를 먹으며 즐거이 살아가고자 했으나 걸림돌이던 의회를 향해 권력을 행사하고 내란을 일으킨 것일지니 몰락은 당연한 결과다.
만약 계엄이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진행되었다면 비밀스러운 납치와 감금 그리고 폭거로 국민은 고난에 빠지고 이에 저항하는 집회는 일상다반사였을 것이며, 와중에도 우리의 ‘가르강튀아’는 매일 아첨꾼과 광대들에게 둘러싸여 폭탄주를 돌리고 자신의 권력을 뽐내 며 흥겨운 술판을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유사 사이비 종교의 칼춤도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며 위장된 추악한 욕망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조작된 사건들로 정적을 제거하고 공포정치를 기반으로 그토록 장기 집권을 원했으니 행동으로 막아선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성공할 수도 있었으리라. 부정선거 단서를 찾아 총선을 무효하여 국회를 무력화하고 종북세력을 일망타진한 그가 새로운 시대의 영웅이 되어 언론으로부터 추앙받으며 추종자들과 만만세를 외쳤을 수도 있었다고 상상하니 소름이 돋는다.
썩은 양파의 껍질을 벗기면 또 곪은 속이 나온다. 까도 까도 식용 가능한 것은 없다. 거짓을 거짓으로 덮고 있어 어디에도 진실은 감춰져 있지 않다. 어떤 고름도 살이 될 수 없다. 악성 종양 이든 고름이든 과감하게 도려내야만 살이 돋고 후환을 막을 수 있다. 허점투성이가 아닌 합당한 처벌이라는 종양의 깔끔한 제거는 완벽한 치료다.
기득 권력에 기생하여 지위를 유지하던 관료들이나 기생하던 존재들을 망각하거나 제거하지 않는다면 환부는 또 다시 곪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음모론을 재생산하거나 추종하고, 양심 없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사이비 주술사와 같은 사람도 사는 곳이지만, 올해에는 공포와 분노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지고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