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말부터 수차례 “건설현장에서 반복되는 사망사고에 대해 징벌적 배상제, 건설면허 취소, 공공사업 입찰 금지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다. 현재까지 국회에서도 수 십 건의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고,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등 정부 부처에서도 관련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짜여있는 규제 법망에 갇혀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일터에서 산업재해나 사망 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건설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바꾸려는 제도적 장치 마련 없이 일방적 규제로 건설사들을 옥죄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주택공급방안을 실행해야 하는 민간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정부와 국회의 강경한 태도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규제는 주택공급 물량과 속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 겹겹이 겹치는 중복 법안들 수두룩...면밀히 검토해 수정해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 11월 28일 발간한 ‘건설동향브리핑 1033호’에 따르면, 10월 3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약 한 달 동안 국회에서는 건설산업과 밀접한 법률 재·개정안이 59건이 발의됐다. 이 중 29건이 건설안전과 관련된 입법안이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안은 18건에 달한다.
이러한 개정안들 내용 대부분은 산업재해 예방·저감을 위해 사업주에 대한 규제 및 제재·처분 강화 사항이다.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지방자치단체 근로감독 권한 부여 및 협업 강화 △건설공사 기간(이하 공기) 연장 사유에 폭염 등 기상재해 추가 △다수 사고 발생에 대한 과징금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관련 법안들이 앞다퉈 발의됐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근로감독관 직무집행 및 권한의 위임에 관한 법률안’(신규)은 지자체에 고용노동부장관이 위임한 범위 내에서 근로감독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당 박홍배 의원도 ‘사법경찰직무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지자체에 근로감독관을 둬 사법경찰관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8·9급 지방공무원 중 지방검찰검사장이 지명한 자에게 사법경찰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에서는 폭염·한파를 법령상 공사기간 연장 사유에 명확히 포함하지 않아 이를 명시하는 개정안도 다수 발의됐다. 연속적으로 자주 일어나는 사망사고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안들도 잇따랐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를 낸 사업주에게 형사처벌 하고 이와 별도로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복되는 경우 10% 범위에서 가중할 할 수 있다.
문제는 해당 입법들이 단편적 접근에 그친다는 점이다. 건설공사 관련 산업재해 규율 법령은 산업안전보건법뿐만 아니라 건설안전기본법, 건설기술진흥법, 하도급법, 국가 및 지방계약법 등에서도 규제하고 있어 보다 면밀한 규제 및 처벌 설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례로 공기 연장 사유에 폭염 등 기상재해를 추가하는 안의 경우 이미 공사계약서인 ‘공사계약일반조건’과 민간공사 표준공사계약서인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에서 폭염과 한파를 불가항력의 사유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센터장은 보고서에서 “그럼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공기 연장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법적 규제보다는 실무적으로 폭염과 한파 기간에 대해 계약상대자의 사전 비작업일수 포함 계상 여부와 계약금액 조정의 구체적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짚었다.
전 센터장은 국회의 규제 입법에 대해 “법 목적 달성을 위한 유사 제도의 운용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해 보다 세밀한 검토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정부의 규제 강화 방침에 대해서는 “규제 신설·강화 시 피규제자 피해 최소화를 위한 타 법령 개정과 제도적 보완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정부 주택공급 첨병 민간 건설사 역할 위축 우려
건설업계에서는 강력한 안전·노동 규제로 인해 현장 운영의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업계가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하는 것은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사고 발생 시 영업이익의 5%내 과징금을 부과하고 반복되면 등록 말소까지 가능하게 만든 법안이다. 이는 일명 '건설안전특별법'의 주요 골자다.
이 법안이 현실화하면 건설산업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공급방안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현재 민간 건설사가 전체 주택 공급물량의 70~80%를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옥죄면 그만큼 정책 실행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정부와 국회의 전방위적 규제 압박에 대해 A건설사 관계자는 “처벌 위주의 규정만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보다는 적정 공사비·공사기간·분양가 등을 유기적으로 조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제도를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춰 안전한 건설문화가 조성되도록 해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공사 기간은 민간 건설사의 수익과 직결된다. 공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건설사 입장에서는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손해다. 폭염, 한파, 사망사고 등이 발생하면 건설현장은 자동적으로 멈추게 돼 있다. 이후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재논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주처(정부 또는 민간)에서는 오히려 공기를 앞당기려는 경우가 많다. 공기에 쫓기면 아무래도 공사를 무리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게 하는 법·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B건설사 관계자는 “안전관리법이 강화되고 그에 맞춰 프로세스를 진행하면 사고가 안 나야 하는데 사고가 나는 게 문제”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나면 정부에서 건설사를 구제해 주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화된 법안들을 다 이행하려면 비용이 들어갈텐데 그 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줄거냐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면밀하게 살펴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법을 잘 이행한 데 따른 보상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신설 법안, 안전 예방 활동 위축 우려 심각
전문가들도 그물망식 법 규제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산업비전포럼 제259차 세미나에서도 겹겹이 쌓인 건설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안전규제가 건설산업에 미치는 영향’ 발표에서 “건설안전특별법을 포함한 건설안전관계법은 의무 주체의 정의와 책임 범위가 불명확해 현장의 혼란을 심화시키고 예방 활동을 위축시키며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의무 주체의 의무와 책임을 지위와 역할에 맞게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건설 규제에 대한 개선 방안도 제시됐다. 권오경 건설산업비전포럼 사무총장은 “단기적으로는 건설산업 참여자 모두가 동의하는 불필요 규제부터 걷어내고 중장기적으로는 분산된 법을 통합하는 ‘건설산업통합법(가칭)’ 같은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도 이 같은 법 규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포럼에 참여한 윤석진 국토교통부 사무관은 “현재 정부는 경제회복을 위해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규제를 과감하게 걷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규제 합리화를 핵심 과제로 추진해 나갈 것이며 이를 위해 국토교통 규제합리화TF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