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생산적 금융으로 저성장 탈출의 전기를 마련하자

  • 등록 2025.12.07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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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자 금융권이 이에 화답하듯 시스템도 고치고 여러 가지 정책도 내놓고 일선 금융기관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일어난다는 점이 우선 좋은 일이다.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은 여러 종류의 금융기관들이 생산적인지 여부를 잘 따져서 투자하는 ‘생산적 금융’이라 는 점이다.

 

정부 예산으로 하는 정책 자금은 특정 산업의 육성 분야, 또는 필수로 해야만 하는 취약 분야, 또 인프라 분야, 방산 분야 등으로 여러 곳에 분산될 수밖에 없다. 예산이란 세금을 거둬서 마련해야 하고, 세금으로 모자라면 국채를 발행해서 조달해야 한다.

 

세금 올리는 것 좋아하는 납세자 는 없고 국채 늘리면 국가부채가 증가한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1월 말에 내놓은 종합경제대책을 보니 전 국민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쿠폰을 주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역대급 돈풀기 예산을 편성했다.

 

국가부채 200%를 넘긴 나라가 참 ‘무대책’으로 돈을 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어려움에 빠진 것은 100%를 상회하는 국가 부채와 저성장의 지속이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계속되고 있는 저성장이다. 저성장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국가 전체적으로 투자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투자가 있어도 특정 분야에만 쏠려 있으면 안 된다. 아궁이 가까이에 있는 방바닥은 뜨거운데, 문지방 근처 윗목에는 전혀 뜨겁지 않은 격이다. 이것은 방 구들장 밑이 막혀 있어서 열기가 퍼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그간 반도체, 자동차, IT 및 SW 분야가 계속 좋았는데, 2000년대 이후 서민 경제는 좋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 조선, 반도체, 방산 분야가 각광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 역시 국민 전체의 온기로 퍼질까 의문이다.

 

AI,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방산 등 잘 되는 분야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당연하다. 돈 되는 데 누가 투자 안 하겠는가. 외국 투자자도 나서고 정부도 예산을 보탠다. 민간 금융기관들은 투자보다는 담보성 기업 대출, 부동산 대출에 주력했다. 대출도 부동산 대출에 옥죄기를 하자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외환위기 이후 장기간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탓에 좀처럼 저성장에 벗어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생산적 금융’을 내세운 것은 탁견이라고 본다. 생산적 금융이란 ‘생산적’이라는 말에서 그 의미를 찾고 각 금융기관들이 창의적으로 생산적인 금융을 만들어가야 만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금융이 중요하다고 말들은 요란한데, 금융의 전문성과 창의성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금융은 종합적 식견을 갖춘 예술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또 금융은 보편적으로 통하는 것도 있지만 미국에서 통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본시 금융은 정책과 정치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라마다 처한 상황, 문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맞는 것을 개발하지 않으면 성공 할 수 없다. 생산적 금융이라는 깃발을 내걸었지만 크고 작은 모든 종 류의 금융기관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되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런 것들은 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하면서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인내를 기다리지 못하고 못 견뎌 하다 보니, 오늘날 한국 금융이 후진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따라서 무슨 모범답안 같은 것을 정부 당국에서 내려보내 그대로 시행하게 하고 금융기관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모범생처럼 해서는 안 된다.

 

이래 되면 모처럼 조성한 돈도 쓰지도 못하고 효과도 시원찮게 된다. 돈이란 함부로 대출하고 투자했다간 떼이면 그만이다. 그게 쌓이면 금융기관의 신용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생산적 금융과 함께 포용적 금융을 말하고 있는데, 원금 회수를 할 가능성이 없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포용적 금융이 아니다. ‘금융’을 아무 곳에 갖다 붙이면 안 된다.

 

원금 회수 가능성이 없는 곳에 돈을 주는 것은 그저 ‘복지’일 뿐이다. 금융은 원금 회수도 하고 이자를 받고 투자 수익을 거두는 것이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을 잘 알고 한국경제의 핵심을 짚었다는 생각이다. 다만 이 정책의 성공 여부는 금융기관들의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와 실력, 대통령의 지속적인 관심과 독려에 달려 있을 것이다. 지난 9월에 나온 금융위의 발표를 보면, 지역 특화 자금공급 모델을 확산시키겠다는 내용이 있다. 금융과 ‘지역 특화’가 조합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다분히 정치적 배려가 깃든 조합인 듯한데, 돈에 수도권이 있고 지역이 따로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이런 모델은 굉장히 형식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지역을 위한 정책자금과 생산적 금융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본다. 금융기관은 결코 자선단체가 아니다. 지역에서 생산적인 대상을 찾아내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금융을 하면 된다. 어려운 지역경제를 도우는 일 이라면 정책자금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금융위는 또 펀드 자산총액의 50% 이상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벤처·혁신기업 등에 분산 투자하는 공모 펀드인 ‘기업 성장집합투자기구(BDC)’와 부동산과 미술품 등 실물 및 금융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에 연동한 증권토큰발 행(Security token offering: STO)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일단 장농 속에 잠들어 있는 유휴자금을 건강한 기업 투자 시장으로 유도하는 시스템의 개발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주식 투자를 안 하는 사람들의 돈을 끌어들이는 아이디어와 시스템과 상품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솔직히 국민성장펀드 150조 원 조성은 역대 정권이 해오 던 것이라 별로 흥미롭지 않다.

 

5대 금융그룹이 508조 원 을 조성해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자금 규모는 크다는 생각은 들지만 금융기관들이 말하는 숫자라는 게 얼마든지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보다는 거대한 펀드를 조성해 봐야 첨단전략산업에 투자하고 나면 서민 경제에 얼마나 스며들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첨단전략산업은 도대체 낙수 효과가 시원찮다. 대기업의 배만 불리고 대기업 노조들은 신나겠지만 중소기업 직장인들과 소상공인들, 배달 청장년들과는 먼 얘기다.

 

◇ 생산적 금융이 있는 사람들끼리 돈 잔치 안 돼야

 

국민성장펀드의 사용처를 놓고 산업부·과기부 등 산업부처와 금융계-산업계 간의 소통의 장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고 하는데, 잘 나가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것 아니냐 하는 소외감마저 든다. 생산적 금융이 결국 있는 사람들끼리 잔치를 벌이는 것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난 11월 중에 국내 금융자금이 부동산에 과잉 집중되고 있다는 산업은행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다. 금융자금이 부동산에 과잉 집중되는 것은 담보 대출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려면 부동산 담보를 해야 빌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용 대출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생산적 금융이 필요한 것이다. ‘부동산’이 투자를 위해 담보로 활용되는 면이 큰데, 과잉으로 욕을 먹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생산적 금융 을 위한답시고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을 막는다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다. 부동산을 하나로 떼어서 봐서는 경제 전체가 안 보인다.

 

경제 전체에서 왜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가를 봐야 부동산 문제도 해결되고 경제 전체의 성장과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니까. 그것만 때려잡겠다고 나서면 경기만 위축되고 다 잃어버릴 수 있다. 여윳돈이 있다고 해도 주식 투자는 생리에 안 맞아 투자 안 하는 부자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의 돈을 건전한 투자 시장에 끌어들이는 금융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생산적 금융의 성공 여부는 궁극적으로 각 금융기관의 신용조사 모델의 정교한 개발과 운용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 부분이 가장 취약한데, 이것이 금융업의 본질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신용이 높은 사람에게는 계약서 안 쓰고 돈을 빌려주고 물건을 준다고 한다. 금융은 신용이다.

 

그러려면 신용조사를 잘 해야 한다. 신용조사는 총체적인 실력이 요구되는 노하우이다. 신용은 산업과 업종마다, 지역마다, 상권마다, 거래 상대 자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외국에서 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그대로 차용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터득하며 쌓아가야 하는 지식재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능력을 보유하려면 금융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금융의 전문성은 금융인의 전문성에서 나온다. 전문성 있는 금융인의 육성과 병행하지 않으면 생산적 금융은 요원하다.

 

◇ 기대되는 미래에셋, 한국투자증권 등 종합투자회사 출범

 

정부는 지난 11월 17일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종합투자계좌(IMA) 1호 사업자로 선정했다. 우리나라에도 바야흐로 투자은행이 실질적으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행스럽다.

 

미국 경제가 남북전쟁 이후 유럽 선진국을 앞서나가게 된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한 사람은 J.P. 모건이라는 희대의 금융인이었다. 모건이라는 금융인이 없으면 미국의 석유도, 전기전자도, 철도도 존재할 수 없었다. 미국 산업은 J.P. 모건이 돈을 댄 록펠러, 에디슨, 테슬라, 카네기 같은 기업가와 발명가들이 일으켰다.

 

한국경제는 안타깝게도 훌륭한 창업기업가들은 가졌으나, 이들에게 돈을 댄 금융가를 갖지를 못했다. 오늘날 미국이 AI를 주도하는 것은 월가의 금융 파워가 있기 때문이고, 중국 AI가 미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도 국가의 무한정한 보조금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후발 추격국들은 금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의 대규모 지원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의 자금지원은 초기에는 성과를 보이지만 갈수록 효과는 떨어지고 부작용은 증가하는 부정적 효과가 나타난다. 눈먼 자금의 비효율성과 부패 증가 현상 때문이다.

 

국가 중심 투자는 좀비 기업들을 양산하게 된다. 좀비 기업들은 뛰어난 다른 벤처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게 더 큰 문제가 된다. 좀비 기업일수록 사업 외에 술수에 능해서 정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생태계로 만든다. 민간금융은 좀비 기업들을 솎아내는 정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민간금융이 주도하는 투자시장은 꼭 필요하다.

 

초기에 국가의 자금 지원이 필요하고, 또 선진국에 도달하고 난 뒤에도 리스크 지나치게 높은 특정 분야에 대해선 국가의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외에 분야는 민간금융이 주도해야 한다. 그리고 한 국가의 금융 포트폴리오에서 볼 때 은행은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투자은행과 증권사 등은 혁신 금융을 주도하는 게 안정적이다.

 

그래야 투자은행이 국제적 금융 위기 등으로 흔들릴 때 은행이 우산을 받쳐줄 수 있다. 따라서 은행들에게 너무 생산적 금융으로 몰아가지 말고, 적절한 수위를 유지해야 한다.

 

IMA는 증권사가 개인 고객의 자금을 모아 벤처기업 투자, 회사채, 기업 대출 등에 생산적 투자를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특히 IMA는 조달액의 25% 이상을 모험자본으로 공급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IMA를 담당하는 종합금융투자사 의 실력이 필요하다. 두 증권사가 IMA 사업자로 선점함에 따라 다른 증권사들도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는 모양새인 데, 과열 경쟁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금산 분리 완화 검토할 시점이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AI 투자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금산 분리’는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금융 회사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말한다. 금산 분리 규제는 오래된 것인데, 과거 재벌의 폐해를 우려해서 나온 제도다. 하지만 한때 30대 재벌 운운했는데, 오늘날 재벌은 한국에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많이 사라지고 손을 꼽을 정도만 남아 있다. 이들도 주식이 공개된 상황이어서 경영권 방어에도 힘들어 하는 실정이다.

 

한국에도 거대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파이낸스 기업의 탄생이 필요하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도 필요하지만 기존 대기업들 중에서 파이낸스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오너형 파이낸스 기업들이 필요하다.

 

금산 분리는 한국기업들을 국내 시장만 놓고 생각하는 ‘가두리 양식’ 사고다. 우리나라가 가두리 양식 사고만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방산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기업들은 이제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지금 세계 경제를 보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기존 선진국 경제력이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 경제에 절호의 기회다. 한국 대기업 들의 추진력과 혁신력, 진취성을 키워주기 위해선 금산 분리 규제를 당장 풀어야 할 때다.

 

 

이상용 주필 기자 sy1004@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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