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민간업자 1심 판결에 대해 검찰이 끝내 항소를 포기하면서, 정치권과 언론은 곧바로 ‘검란(檢亂)’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항소 시한인 11월 7일까지 움직이지 않던 검찰 조직 내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일부 지휘부가 공개 반기를 들었고, 그 후폭풍이 검찰총장 대행의 사퇴 선언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법무부, 검찰 수뇌부 전반이 ‘윗선이 대장동 수사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 프레임에 갇히는 모양새다.
정치적 파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 처리와 비교되며 더 커졌다. 올해 3월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던 윤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렸을 때, 검찰에는 7일 이내에 제기할 수 있는 즉시항고라는 카드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조직 내부에서 항고 포기를 놓고 전국 단위의 집단 항명이나 공개적 문제 제기는 없었다. 반면 대장동 사건에서는 항소 포기 직후 수뇌부의 연쇄 사의 표명과 검사장·지청장의 집단 입장문이 이어지면서, ‘3월의 침묵’과 ‘11월의 분노’ 사이의 온도 차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심을 키우고 있다.
이번 사태의 분수령은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의 공개 발언이었다. 대장동 민간업자 1심 판결에 대해 검찰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된 다음 날인 8일 정 지검장은 “수사팀에 대한 전례 없는 외압이 있었다”는 말을 남기고 사의를 밝혔다. 통상 조용히 처리되는 인사나 보직 이동과 달리, ‘외압’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항소 포기 결정의 배후에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는 취지의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그의 발언은 곧바로 정치권과 언론을 타고 증폭됐다.
◇항소 포기 닷새만에 사의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검찰 흑역사 13년만에 재현
사태는 닷새 뒤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는 “검찰총장 대행으로서 제 책임 아래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해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항소 포기가 자신의 재량과 판단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장동 수사·공판을 맡았던 검사들이 “윗선이 항소 금지를 지시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했고, 전국의 검사장·지청장들이 연쇄적으로 입장문을 내며 노 대행의 ‘책임론’을 집중 제기했다. ‘외압에 굴복한 지휘부’와 ‘정치권 눈치를 보는 검찰 수뇌부’라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면서 노 대행은 사퇴 압박에 밀려난 것이다. 이로써 노 대행은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놓고 검찰 내부의 항명 사태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사퇴한 지 13년 만에 물러난 검찰 수장이 됐다.
법무부와 검찰 지휘부의 해명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진실 공방’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실이 수사와 항소 여부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며 “어떠한 지시나 논의도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노 대행 역시 “대통령실의 관여는 없었다”고 거듭 강조하며, 항소 포기 결정은 검찰총장 대행과 서울중앙지검장이 합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 지검장은 항소 포기를 주문한 장본인으로 법무부 장관과 차관을 거론하며, 사실상 ‘법무부 라인에 의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로써 사건은 ‘정치검사 집단의 항명이냐, 대통령실과 법무부의 수사 외압이냐’를 둘러싼 진실게임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여당 “검사들 명백한 항명...강력한 처벌하겠다” 야당 “대통령 외압 좌시 않겠다”
정치권의 반응도 강대강 대치다. 더불어민주당은 항명 논란의 중심에 선 일부 검사들을 향해 국정조사, 청문회, 특검 등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기표·이성윤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지검장을 포함한 수사 검사들의 행동을 “명백한 항명”이라 규정하며, “검찰권을 사유화한 정치검사 집단에 대해 엄중한 징계와 문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번 논란을 대장동 사건의 ‘정치적 몸통’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지목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검찰이 이재명 대통령을 감싸고 있다”, “대통령은 탄핵감”이라는 강경한 메시지가 쏟아지며, 대장동 수사는 검찰 내부 갈등을 넘어 정권 정당성까지 겨냥한 정쟁의 한가운데로 끌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검찰의 선택적 분노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여기서 나온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 당시에는 조직 내부에서 별다른 동요나 항명이 없었던 반면,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에는 지검장, 검찰총장 대행, 전국 검사장단까지 총출동해 ‘항명’에 가까운 집단 행동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법 앞의 평등,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온 검찰이 특정 사건에서는 유난히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다른 사건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모습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선택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검찰이 어떤 사건에 분노하고, 어떤 사건에는 침묵하는지 그 기준이 불투명한 한, ‘정치 검찰’이라는 의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대장동 사건 수사 과정 그 자체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검사가 배를 가르겠다”고 협박해 진술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고 폭로했고, 정영학 회계사 역시 핵심 증거가 검찰에 의해 왜곡·조작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신 의원은 이 같은 증언을 근거로 “대장동 수사는 처음부터 진실 규명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맞춘 ‘짜맞추기식 수사’였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피고인들의 일방적 주장으로 치부하기에는, 검찰권 행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와 강압 수사 의혹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제도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결국 이번 ‘검란’ 논란은 단순히 한 사건의 항소를 포기했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검찰이 스스로 말하는 ‘법과 원칙’이 실제로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 아닌지, 검찰권 행사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아니라 특정 정치 세력의 이해에 맞춰 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근본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정치 검찰을 동원한다”, “사법 방해를 한다”고 공격하는 가운데, 국민들은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눈여겨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