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이 ‘APEC 2025’이 열린 가운데 관세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큰 틀은 대미 금융투자 3500억 달러이며, 현금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로 세분했다. 또 현금 2000억 달러는 우리 외환시장에 무리가 없도록 연간 200억 달러의 투자상한액도 설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4월 2일 백악관에서 새로운 관세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나라가 흑자를 보고 우리만 적자를 보는 글로벌 무역에 대한 재편이 필요하다”며 국가별 상호관세율 패널을 직접 들고나왔다.
그는 이어 4월 5일부터 세계 모든 나라에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같은달 9일부터는 국가별로 차등 개별관세를 추가한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었다.
며칠 뒤에 트럼프 대통령은 ‘Liberation Day’를 선언하며 전 세계 수입품에 10%의 보편관세를 물리고, 국가별 차등관세 도입을 선언했다. 이어 7월 7일에는 철강·알루미늄·외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고, 같은달 30일에 한미 양국은 한국의 상호관세를 8월 7일부터 기존 25%에서 15%로 내리는 무역협정에 합의했다. 다만, 3500억 달러의 대미 금융투자 패키지 구조, 수익배분 등 세부조건에서는 이견이 있는 만큼 후속협의를 해왔다.
◇현금 2000억 달러에 연간 200억 달러 상한선 둬
이번에 합의한 대미 금융투자 3500억 달러는 현금 2000억 달러와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다. 또 현금 2000억 달러는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범위 내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연간 200억 달러의 투자상한액을 설정한 것도 주목된다.
우리나라의 올해 정부 예산 총액은 673조3000억원(약 4715억 3161만 달러)인데, 200억 달러는 약 4.2%에 해당한다. 이마저도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투자하는 만큼,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이달 29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나와 “한국은행은 앞서 8월 초에 외환시장에서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는 연간 150억~200억 달러라고 실질적인 근거를 포함한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어 “연 150억~2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는 해외 채권 발행 없이도 국내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굉장히 잘 된 협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조선업 협력에 투입되는 1500억 달러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MASGA)’라는 애칭으로, 미국 조선업을 부활시켜 다시 경제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우리 기업이 투자와 함께 보증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신규 선박의 건조·도입 시 장기 금융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선박금융을 포함해 선박 제조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수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는 의견이다.
◇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관세 25%→15%로
상호관세는 7월 30월 합의에 따라 이미 적용되고 있는 대로 15%를 지속해서 적용하기로 했고,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관세는 기존 25%의 고율 관세에서 15%로 하향 조정하는데 합의했다.
품목관세 중에서 의약품, 목재 제품은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으며, 항공기·항공부품, 제네릭 의약품(다른 적격 제약공장에서 동일한 성분 및 공정으로 생산되는 의약품),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 등은 무관세를 적용받게 됐다.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에는 우리의 주된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 다만 실질적인 비율은 언급되지 않았다.
◇협상 결과에 따른 우리의 실질적인 득실은?
정부는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평가를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살펴보면, 가장 먼저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외환시장에 대한 실질적 부담은 크게 줄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한국 외환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외환시장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적극 설득했고, 미국 재무부, 상무부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연간 200억 달러 상한액을 설정하고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될 경우 납입시기와 금액 조정을 요청하는 별도 근거도 마련했다.
조선 분야 1500억 달러는 선박금융까지 포함해 우리 기업들의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외국인직접투자)로 국내외 시중은행을 통해 대출·보증을 받게 돼 외환시장에 미치는 부담은 제한될 것으로 평가했다.
둘째로, 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중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한미 양국은 투자금액을 충분히 환수할 수 있는 현금흐름이 보장된다고 투자위원회가 판단하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하는 것을 MOU 문안에 명시하기로 했다. 원리금 보장을 명시한 만큼 우리나라가 향후 20년 이내에 원리금을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추측되면 상황에 따라 수익배분 비율도 조정하기로 양해했다.
향후 진행되는 특정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나더라도 다른 프로젝트에서 해당 손실을 보전할 수 있도록 특수목적법인 구조를 설계해 손실 리스크를 크게 낮췄다. 또 상호 협의와 달리 일방적 투자를 요구할 경우 재협의를 하는 안전장치도 확보했다.
셋째로, 관세인하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완화했다. 우리나라의 대미 최대수출품목인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일본, 유럽연합(EU)과 동일한 수준인 25%로 맞춰 불리하지 않은 경쟁 여건을 확보했다. 반도체는 대만 대비 불리하지 않은 협상을 타결했다. 이를 통해 우리 기업의 대미시장 진출 여건을 개선하고, 아직 관세협상이 진행 중인 인도 등 몇몇 나라에 비해 유리한 수출환경을 확보했다.
한미 간 관세는 내년 1월 1일부터 1단계 인하가 시작된다. 일부 품목은 즉시 무관세를 적용, 나머지는 3년간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오는 2028년까지 전면 무관세화를 목표로 한 만큼 시장 불확실성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로, 우리 기업의 대미진출에도 긍정적인 여건을 조성했다. 미국의 마스가 정책과 관련해 대미 투자 관련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미국의 유무형 지원도 확보했다. 미국은 해당 투자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가급적 우리나라가 추천하는 한국업체 선정과 함께 한국인 프로젝트 매니저를 채용하기로 했다. 또 미국 정부는 사업별로 추진에 필요한 연방토지 임대, 용수·전력 공급, 구매계약(off-take) 주선 및 규제절차 신속 진행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다섯째로 농산물 분야 추가 시장개방은 합의에서 제외했다. 우리 농민들에게 매우 민감한 쌀·쇠고기 등을 포함해 농업 분야 추가 시장개방은 방어했고, 검역절차에서도 보다 철저한 협력 및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앞서 한미 FTA 조치로 미국산 농축산물 시장이 99.7% 수준으로 개방됐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쌀(식량안보)과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에 대한 방어에 성공했다.
다만, 미국은 미국산 사과, 과채류 등에 대한 검역 절차 완화를 우리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어 향후 협상 여지도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