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년 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업을 수주한 업체들에 LH 출신 퇴직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관의 영향력으로 총 8000억원 이상의 수주를 가져온 것으로 파악돼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북구 갑)이 LH 퇴직자 현황 시스템을 전수조사한 결과, 2024년 10월 이후 LH 사업을 수주한 업체 91개에서 LH 퇴직자가 483명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가 1년 간 수주한 사업 건수는 355건으로 수주 금액은 8096억원에 달한다.
LH는 2009년 출범 이래 지금까지 총 4700명의 퇴직자가 발생했으며, 연평균 퇴직자는 약 270명에 달한다. 지난 1년 간 LH 사업을 수주한 업체들에만 전체 퇴직자의 10%가 재직 중인 셈이다. LH는 2023년 철근 누락 사태 이후 업체들의 퇴직자 재직 현황을 파악하고 입찰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지난 10월 ‘퇴직자 등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들 업체에 재직 중인 LH 출신들은 LH가 마련한 ‘전관’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제재를 비껴갔다.
LH는 공직자윤리법에 근거해 △퇴직일로부터 3년 이내 △2급 이상 퇴직자 또는 해당 업체에 임원 이상으로 재직 중인 퇴직자 등을 전관으로 규정한다. 퇴직 후 3년이 지나면 사실상 관리망에서 벗어난다.
불공정 행위로 과징금·영업정지 처분 등을 받은 업체들도 제재에 불복, 버젓이 LH 사업을 수주받고 있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입찰 담합으로 23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건축사사무소 20곳 중 3곳에 LH 출신 38명이 근무 중이다.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17개 업체를 전수 조사하면 LH 전관 카르텔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한 건축사사무소에는 26명의 LH 출신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 업체는 부실 감리로 인천 ‘순살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등을 일으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LH 출신 전원이 현직 부장급 이상의 중책이며, 부사장·상무·전무 등 임원급만 10명이 넘었다. 감리 담합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과징금 31억을 부과받은 업체에서는 10명의 LH 전관이 확인됐다. 또 다른 업체에는 LH 부장·전문위원 출신 등이 전무·상무 등의 임원급으로 재직 중이었다.
공정위는 지난 4월, LH와 조달청의 공공건물 건설 감리 용역 입찰에서 담합을 벌인 혐의로 희림·케이디·무영·토문·목양·건원·광장·해마 등의 20곳을 제재했다. 이들은 지난 2019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총 입찰 92건에서 서로 경쟁하지 않고 ‘들러리 참가자’를 섭외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벌였다. 이들이 부정하게 챙긴 총 계약금액은 5567억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이들의 담합이 일부 공공주택 분양가를 상승시킨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LH는 앞서 전관 재직 규모가 밝혀진 3곳 이외의 타 업체 전관 재직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의원실에 답변했다. LH 퇴직자 등록 시스템이 2024년 10월에 구축돼, 그 이후 수주한 업체에 한해서만 전관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다. 결국, 철근누락과 입찰담합에 가담한 업체 대부분의 전관 현황은 여전히 ‘블라인드’ 상태다.
정 의원은 “사업구조 직접시행 전환으로 공적 역할이 더욱 강화되었음에도, LH의 혁신 의지는 아직도 미흡하다”며 “LH 개혁위원회가 연말까지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만큼, 철근누락·입찰 담합 업체 전수조사, 나아가 건설업계 전수조사를 통해 곳곳에 포진한 LH 전관 규모를 파악해 만연한 부정부패 구조를 뿌리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