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시총 기준 5배에 이르는 경제적 가치와 맞먹는 석유, 가스가 묻혀 있다며, 포항 영일만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서 1번째 시추 사업을 추진했던 한국석유공사의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이 오는 9월 해외 메이저 석유사를 상대로 광구 지분투자에 대한 입찰을 마무리한다.
1조 4,000억원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는 석유공사는 탐사 시추 분야에서 이미 경험을 축적한 해외 기업들을 사업에 참여시켜, 부족한 투자금을 모으는 동시에 한 단계 높은 탐사 시추 기술을 국내에 들여온다는 전략이다.
이번 비공개 입찰은 석유공사에 대단히 중요하다. 굴지의 메이저 석유사가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자원개발 사업의 특수성을 다시 한번 인정받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입찰이 흥행에 실패한다면,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주장대로 ‘대국민 사기극’으로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다.

◇尹 브리핑으로 유명해진 석유공사...에너지의 ‘정치 쟁점화’ 논란 중심에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3일 전 국민을 상대로 연 국정 브리핑에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탐사 결과가 나왔다”며 “동해 심해 석유가스전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심해 광구로는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 더 많은 탐사 자원량”이라고 강조하며 “세계 최고의 에너지 개발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브리핑에 배석한 안덕근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한다”며 “매장 가치에 대해 현 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삼성전자 시총으로 따지면 2,20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런 발표에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언론과 민주당이 지적했듯이, 대통령이 이번 사업에 대해 너무 갑작스럽게 발표했다”면서 “(유망구조에 대한) 경제성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국민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게 했다”고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4·10총선에서 국민의 힘이 패배하면서 국정 운영에서 추진력을 상실한 상황이었다. 언론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정무적 개입으로 이번 사업이 ‘에너지의 정치화’ 논란 중심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윤 전 대통령 내외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이 약 5개월 전 “우리도 산유국이 될 수 있다”고 강의한 영상이 온라인에서 뒤늦게 알려지며, 비난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광구 유망성 긍정적 평가 쏟아냈지만 ‘액트지오’ 논란 일파만파
윤석열 정부와 석유공사는 각종 포럼과 간담회를 통해 동해 심해가스전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홍보했다. 윤 전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이 끝난 3일 뒤 곽원준 석유공사 에너지사업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동해 심해 지역을 포기할 수 없었다”며 “심해 평가 전문성을 가진 액트지오사를 평가기관으로 선정하고 2023년 2월부터 1년간 평가를 수행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일만 일대에 석유와 가스가 묻혀있다는 물리탐사 조사 결과를 제공한 액트지오는 그 존재가 언론에 알려진 뒤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이 회사는 2019년부터 4년 동안 세금을 체납해 법인 자격이 박탈된 적 있었고, 본사 주소도 비토르 아브레우 대표의 텍사스 자택이었며, 대표가 혼자 운영하는 1인 기업이라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런 논란이 계속됨에도 석유공사는 같은 해 8월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ICG2024)’에서 영일만의 또 다른 이름인 울릉 분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석유와 천연가스가 다공성 암석인 영일만 해저 저류층에 묻혀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업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곽원준 석유공사 에너지사업본부장은 “석유공사 설립 이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다수의 유망구조를 도출할 수 있었다”며 “리스크 분산과 투자비 부담 완화를 위한 투자유치를 적극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운명의 9월' 비공개 입찰 흥행 실패 시 후폭풍 불가피
1차 시추 결과 유의미한 수준의 석유나 가스 매장량을 확인하지 못했던 석유공사는 오는 9월 입찰 결과는 영일만 가스전의 운명을 좌우할 전망이다. 만약 한 곳이라도 메이저 오일사가 참여 의사를 공식화한다면, 이번 사업은 ‘실패 위기’에서 ‘재도전’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참여하는 해외 기업이 한 곳도 없다면, 정치적이든 재정적이든 석유공사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은 불가피하다.
석유공사가 투자유치에 실패할 경우, 영일만 가스전 프로젝트는 한국 자원개발 역사상 최악의 실패로 기록될 수 있다. 또한 국민적 신뢰 회복뿐 아니라 어떠한 해외자원개발 프로젝트에 나서든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석유공사 관계자는 “이번 마감은 잠재적 투자자의 요청으로 3달 연기가 된 것”이라며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현재 아예 투자자가 없다거나, 기업들이 투자 의사가 아예 없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업의 전망이 어둡다, 밝다를 떠나 현재 기업들의 투자 의사가 없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언론에서도 섣불리 판단지 않았으면 좋겠고, 좀 더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석유공사는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국내 대륙붕에 대한 탐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전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