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혁신·비용절감' 3D프린팅…한국만 예산 삭감 ‘역주행’

  • 등록 2025.07.08 15:4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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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항공·차세대 반도체·SMR·로봇 이끄는 3D프린팅 기술
軍 지난해만 45억원 예산절감·LG전자는 100억원 절감 효과
美·中은 산업단지·연구비 지원하는데 韓은 예산↓·정책공백

 

 

첨단 제조업의 판도를 바꾸는 기술로 주목받는 적층제조(3D프린팅)가 산업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 에너지, 로봇, 모빌리티 등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에서 맞춤형 설계와 경량화, 생산비 절감 등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제조업 혁신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열린 ‘AM KOREA 2025’ 컨퍼런스에서는 세계적인 석학과 국내외 기업들이 참여해 적층제조 기술의 최신 동향과 응용 가능성을 공유하며, 산업계 전반에 파급력을 예고했다. 반도체 소자를 상온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나노프린팅, 핵융합 부품을 제조하는 고내열 적층 기술, 자기장에 반응하는 4D 소프트 로봇,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로봇 경량화 부품 등 실제 상용화를 앞둔 다양한 사례들이 발표됐다.

 

그러나 기술 확산 속도와 달리 정부의 지원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요 선진국들이 적층제조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예산 삭감과 정책 공백으로 산업 생태계 조성이 더딘 상황이다. 기술은 성큼 앞서고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차세대 반도체·SMR·로봇 이끄는 3D프린팅…“산업 지형 바꾼다”

 

첨단 3D프린팅(적층제조) 기술이 전자소자, 에너지, 로봇, 미래 모빌리티 등 다양한 산업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AM KOREA 2025’ 컨퍼런스(3D프린팅연구조합 주최)에서는 이 기술의 새로운 응용과 상용화 가능성이 집중 조명됐다.

 

재료·나노공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아메드 부스나이나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전기장과 유체역학을 결합해 나노입자를 정밀 조립하는 혁신적 3D프린팅 방식을 소개했다. 그는 “이 공정은 기존 기술보다 100배 빠르고 비용은 100분의 1에 불과하다”며 상온에서 별도 식각 없이 반도체 소자를 제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술은 NASA 국제우주정거장 센서 제작에 활용됐으며, 미국 국립과학재단과 국방고등연구계획국 등과 협력해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한국재료연구원의 송상우 센터장이 소형모듈원자로(SMR) 부품 제조를 위한 와이어 기반 적층제조 전략을 발표했다. 송 센터장은 "SMR은 소형화 과정에서 비용과 생산성이 저하되는 한계를 안고 있는데, 적층제조의 와이어 DED 방식이 이를 해결할 열쇠”라고 설명했다. 연구단은 텅스텐과 구리를 결합한 고내열 핵융합 부품을 적층제조로 제작 중이며,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등과 공동으로 5년 이내 실물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로봇과 웨어러블 분야에서도 적층제조의 혁신 사례가 이어졌다. 백상열 성균관대 교수는 자성을 띤 소재로 외부 자기장에 반응해 형태가 변하는 ‘4D 프린팅’ 소프트 로봇을 선보였다. 이 기술은 문어 빨판 등 자연의 미세 구조를 모사해 자가 변형과 작동을 구현하며, 구강 점막용 마이크로 니들 패치, 인중 부착형 습도 하베스팅 장치 등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와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적층제조 활용이 활발히 논의됐다. 현대자동차 조영철 책임연구원은 “현대차는 슈퍼널(UAM)과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중심으로 UAM 기체 경량화와 로봇 부품 제조에 적층제조를 개발·검토 중이며, BMW·폭스바겐 사례를 참고해 금속·세라믹 내장 부품과 기능성 소재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적층제조, 고부가가치 산업 분야서 ‘혁신·비용절감’ 쌍끌이

 

첨단 3D프린팅(적층제조) 기술이 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며 제조업 혁신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주항공, 방위산업, 가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 공정과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맞춤형 생산과 신속한 부품 조달을 가능케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부품 생산 비용 측면에서도 적층제조의 경쟁력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우주항공과 방산 분야에서는 기존 주단조·가공 방식에 비해 적층제조가 소량 다품종 부품의 제작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장률이 가장 높은 분야로 평가된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한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방산은 전통적으로 정부 중심의 폐쇄적 생태계였지만, 민간 기술과의 융합 없이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밝히며 “3D프린팅은 무기체계 부품 생산, 단종 부품 조달, 유지보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용과 리드타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군에서는 단종으로 조달이 어려운 부품 5만6천여 점을 적층제조로 자체 제작해 약 45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민간 제조기업에서도 적층제조가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LG전자는 가전제품 개발·생산 과정에 3D프린팅을 적극 도입해 연간 100억원이 넘는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 박인백 팀장은 “과거 연간 40~50억원을 들여 외부에 위탁 제작하던 시제품을 95% 이상 내부 적층제조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금형 제작비와 외주비 부담이 대폭 줄었을 뿐 아니라, 개발 일정도 큰 폭으로 단축됐다”고 밝혔다.

 

단종 부품과 소량 맞춤형 생산에도 적층제조가 효율성을 발휘하고 있다. 박 팀장은 “기존에는 생산 단가가 높아 새 금형 제작이 불가피했으나, 3D프린팅을 활용해 필요한 수량만 신속히 생산하며 금형비, 재고관리비를 절감했다”고 말하며 예컨대 “세탁기 핵심 부품인 터보는 과거 금형 방식으로 제작할 때 1,200만원이 들었지만, 적층제조 도입으로 절반 이하의 비용과 기간으로 생산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 미·일·중은 키우는데 韓정부 지원 미미...“예산 삭감, 전략도 실종”

 

적층제조가 민간기업에서 가시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3D프린팅 기술에 대한 전략부재와 예산축소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산업단지 조성, 임대료 면제, 연구개발비 지원 등 현실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시장 확산을 이끌고 있다. 중국도 지방정부 차원의 장비 보조금과 공공조달 확대를 통해 생태계를 빠르게 키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올해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적층제조 단독 예산편성이 무산되며 사실상 정책의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기획재정부 예산 심의 단계에서 일부 예산이 순연되거나 삭감됐다. 민간과 산학연 일각에서 내년도 예산 회복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 차원의 뚜렷한 전략이나 로드맵은 부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은 적층제조의 잠재력을 주목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 LIG넥스원 등 방산 대기업들은 유도무기, 위성 발사체 등 복잡한 금속 부품 생산에 적층제조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장비 도입과 생산 공정 확대를 검토·추진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최대 AM(금속적층제조) 시설 ‘AM FAB’을 구축하고 발전용 가스터빈 연소기 노즐 등 핵심 부품의 상용화를 추진 중이며, 공급망 대응과 지속가능한 제조 방식 전환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인증 체계, 소재 국산화, 국가 차원의 공급망 확보 등 기반 인프라 없이 기업 단독으로는 적층제조 생태계를 구축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민철 3D프린팅연구조합 상임이사는 “국내 우주항공 분야에서 적층제조 부품은 아직 미사일, 안테나 등에 한정적으로 쓰이고 있다”며 “이는 적용 소재에 대한 인증 및 신뢰성 조사 부족 때문이며, 금속 분말의 국산화와 함께 차세대 항공 산업과의 결합을 통한 정부 차원의 본격적인 육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적층제조 산업의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성장을 위해 정부의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민간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적 유인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며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 시제품 상용화 단계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정부의 꾸준한 관심이 산업의 지속성장을 결정짓는 핵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은주 기자 kwon@m-ec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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