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때 대표적인 실학자인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 1750∼1805).
그는 정조 2년인 1778년에 나라의 명을 받아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한양으로 돌아온 초정(楚亭)은 선진 문물 도입과 상공업 진흥, 농업 경영 개선 필요성 등 국가 제도와 정책, 사회·경제의 전 분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한 북학의(北學議)를 집필했다.
박제가는 1798년(정조 22)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정조에게 사회 대개혁 방안이 담긴 '북학의'를 바쳐 올렸다.

그런 '북학의(北學議)'는 현재 수원화성박물관에 소장돼 있는데 이같은 '북학의(北學議)'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다.
수원시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지난 1일 '북학의'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7일 밝혔다. 보물 지정 예고 기간(30일) 이후 최종 심의를 거쳐 보물지정 확정 고시가 이뤄진다.

내편과 외편 2책으로 구성된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북학의'에는 박제가가 책 곳곳에 내용을 수정·보완·추가하기 위한 붙여 둔 첨지가 그대로 있다. 그 내용이 현전하는 '북학의'에 그대로 반영돼 유물의 원본성을 확인할 수 있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북학의'는 박제가의 친필 고본으로 작성 시기가 초기본에 가장 가깝다. 역사성과 저술의 가치, 글씨의 수준, 유물 상태 등에서 최상의 책으로 판단된다.

권말에는 박제가의 스승인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친필로 쓴 서문이 남아 있다.
'북학의(北學議)'는 지식인들과 관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널리 읽히는 조선시대 고전의 하나다. 수원화성을 건설한 정조의 실학사상과 개혁정치 연구에 있어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학의(北學議)'는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 지정 예고 기간(30일) 이후 최종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확정 고시가 이뤄질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은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북학의」가 박제가 친필 고본이 분명한 점 ▲작성 시기가 초기본에 가장 가까우며 역사성과 저술의 가치, 글씨의 수준, 유물의 상태 등이 최상인 점 ▲첨지의 주석과 본문 첨삭으로 책의 수정·보완·편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북학의' 권말에 연암 박지원이 쓴 친필 서문이 함께 남아있어, 박제가와 박지원 글씨가 함께 남아있는 희소성이 큰 유물이라는 점 ▲조선 후기 대표 실학서로 당대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점 등을 인정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한 것.
수원화성박물관 관계자는 “앞으로도 문화유산 가치가 높은 유물을 발굴하고 확보해 역사문화도시 수원의 위상을 높이는 데 집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