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2일 금융위원회가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발표 시점부터 오는 6월까지 ‘상장폐지 집중관리기간’을 운영한 후 7월 1일부터는 강화된 ‘4대 상장폐지 요건’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번 정책은 코스닥 시장을 생산적 금융의 엔진이자 혁신기업의 성장플랫폼으로 육성해 나가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주요 정책 방향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말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증권거래소는 일종의 백화점”이라며 “상품 가치 없는 상품, 가짜 상품이 많으면 누가 가겠느냐"는 글을 올리며 부실기업을 겨냥했다. 이번 정책에서 두드러진 점은 주가가 1000원 미만인 주식을 가리키는 ‘동전주’를 상장폐지 요건에 포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부실기업이 주주가치 제고, 재무구조 개선, 탄탄한 사업계획 수립 등 자구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에서는 기술개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기업들을 동전주라는 잣대로 퇴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불만도 나온다. 보다 세심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금융위 “투자자에 신뢰 받은 시장으로 도약할 것”
그동안 코스닥 시장은 성장이 멈춰진 채로 작전주, 주가 띄우기 등으로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는 불건전 시장이었다는 게 정부와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5년 코스닥 상장폐지 결정은 총 38건으로 2023년 8건, 2024년 20건 대비 대폭 증가했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부실기업 문제가 여전히 크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실제 코스닥 시장은 지난 20년간 진입은 1353개사, 퇴출은 415개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시총은 8.6배로 크게 상승했지만, 지수는 1.6배 상승에 그쳤다. 또한 한국거래소가 단순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보면 올해 중 코스닥 상장폐지 대상 기업 수는 당초 예상했던 50개사보다 100여개 늘어나 약 150개사 내외(100~220여개사)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자에게 신뢰받는 시장으로 대도약 하기 위해서는 더 신속하고 더 엄정한 부실기업 퇴출이 필요하다”며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금융위가 제시한 4대 상장폐지 요건은 △시가총액 기준 조기 상향 △‘동전주’ 상장폐지 요건 신설 △완전자본잠식 기준 강화 △공시 위반 기준 강화 등이다.
우선 올해 1월 4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상향된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은 당초 2027년 200억원, 2028년 300억원으로 단계적 인상이 예정돼 있었다. 금융위는 이를 앞당겨 2026년 7월 200억원, 2027년 1월 300억원으로 조기 시행한다.
또한 기존에는 시총 기준을 30일 연속 하회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90일 중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상폐를 면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관리종목 지정 후 90일 동안 45일 연속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즉시 상장폐지하도록 강화한다.
‘동전주’ 요건은 이번에 새로 도입됐다. 금융위는 동전주가 높은 변동성과 낮은 시총 특성으로 인해 투기적 시세조종에 취약하다고 판단했다.
시가총액 기준과 마찬가지로 주가가 1000원 미만으로 30일 연속 유지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며, 이후 90일간 45일 연속 1000원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된다. 액면병합을 통한 우회도 차단해 합병 후 액면가 미만일 경우 역시 상폐 대상이 된다.
금융위는 다만 “주가가 낮더라도 시가총액이 충분한 기업 등은 제도 운용 과정에서 유연하게 고려하겠다”고 밝혀 일률적 적용에 따른 부작용은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치는 미국 나스닥에서 운영하는 페니스탁(Penny Stock) 요건을 차용한 것이다. 나스닥도 1달러 미만의 주식을 상장폐지 요건으로 하고 있다.
완전자본잠식 기준도 강화된다. 현재는 사업연도 말 기준 완전자본잠식 시 상장폐지되지만, 앞으로는 반기 기준을 추가한다. 다만 반기 기준은 즉시 상폐가 아닌 추가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공시위반 누적 벌점에 따른 상폐 요건도 최근 1년간 15점에서 10점으로 하향 조정된다. 특히 중대·고의적 공시 위반은 1회만으로도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이번 4대 요건 강화는 코스닥뿐 아니라 코스피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 기업 성장성에도 ‘부실기업’ 낙인 우려
이밖에도 금융위는 상장폐지 실질심사 절차를 기존 3심제에서 2심제로 축소하고, 최대 심사기간도 2년에서 1.5년으로 단축하는 등 절차 효율화도 병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장기 심사로 인한 퇴출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상장폐지 기업의 재기 경로도 병행 설계했다. 금융위는 올해 1월부터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K-OTC 시장에 ‘상장폐지기업부’를 신설했다. 상폐 기업은 6개월간 거래를 통해 환금성을 확보하고 재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요건 충족 시 정식 종목 편입 및 재상장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동전주 요건 신설은 기술력이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 저평가되는 경우 기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이러한 우려에 대해 “그동안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만 있었는데, 이번에 나스닥과 같이 동전주를 도입해 균형을 맞춘 것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경우에 따라 주가 수준은 낮지만 시가총액이 굉장히 큰 기업들에 대해서는 제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유연하게 다루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래도 코스닥 기업들은 상장폐지 이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중 코시닥 시장을 섹터별로 구분했을 때 33.4%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제약·바이오, 의료기기, 헬스케어 기업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바이오업계 일각에서는 시총과 매출, 주가 등 요건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기술특례상장 취지와 맞지 않다는 불만도 나온다. 매출이 나올 수 없는 구조에서 기술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바이오 기업들의 경우 매출 요건에 걸려 퇴출된다면 누가 기술력 있는 회사에 투자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시총이나 주가가 낮아도 R&D 기업들이 가치를 인정받고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문가 “기업 경영 개선 노력 필요”
반면,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로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기를 기대된다는 반응이다. 최재원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한국의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은 너무 많은 기업들이 상장 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요건을 못 맞추는 기업들을 상장 폐지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업들은 경영 전반을 개선하고 회계 감사도 철저히 진행해야 한다”면서 “사실 시장 가격에 이러한 기업 활동이 반영되는 것이라서 시총과 주가가 낮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번 조치에 대해 “한국 주식시장은 소위 말하는 작전세력으로 인해 변동성이 너무 커 개인 투자자들이 이익을 내기 어려우니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건전성이 강화되니 좋고, 기업에게는 경영을 좀 더 강화하고 재무제표를 좋게 만드는 노력을 하도록 요건을 강화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김 교수는 주가조작과 같은 금용사기 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과 비교해 한국은 금융사기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 주식 시장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작전 세력이 들어올 여지가 굉장히 큰 구조”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부실기업을 얼마나 정확하게 가릴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기업이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지다.
금융위는 오는 6월까지를 ‘상장폐지 집중관리기간’으로 정하고 이 기간 기업의 개선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이번 조치로 피해를 입는 기업이 없도록 요건에 ‘연속해서’라는 단서를 달았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해당 기간 불법적으로 주가를 띄워 상폐 위기를 모면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시장 감시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들이 주식시장에 투자해 이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미 코스피 지수는 ‘5000’을 넘어 이제 곧 ‘6000’를 바라보고 있다. 코스닥 지수도 4년여 만에 1000선을 돌파하고 이 대통령이 말한 ‘3000’ 고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이번 조치 역시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조치로 읽힌다. 정부는 기업과 투자자가 다같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 기업들은 부실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주주들에 좀더 기업가치를 상세히 설명하고 필요한 경우 구조조정, 사업계획 변경, 증자 등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가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