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에너지와 식량 그리고 공급망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바다가 물류의 통로를 넘어 국가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안보 영역’이 되는 것이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우리나라의 해상주권 확보 방안 마련’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최근 국제 정세의 변화는 단순한 경쟁의 심화를 넘어 국가 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세미나는 바다와미래 연구포럼(공동대표 국민의힘 조승환·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이 주죄했다.
◇ 대한민국 원자재 99.7%, 해상수송에 의존
우리나라는 원자재의 99.7%를 해상수송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해상 운송이 차단될 경우 경제 손실은 하루 약 5.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LNG선 1척이 입항하지 못할 때 240만 가구의 한 달 전력이 중단되고, 원유 실은 유조선 1척 미 입항 시 자동차 산업은 하루가 정지된다.
세미나 발제에 나선 김경훈 한국 해운협회 이사는 “우리나라의 기존 국가 필 수선박제(88척)는 유사시 대응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전략 화물 9종(원유, LNG, 식량 등)에 대한 전시 물동량 분석 결과 최소 200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불안, 수에즈 운하 봉쇄 사례에서 보듯이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상시화되며 단순한 물류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와 직결된 경제 안보 문제로 인식된다는 설명이다. 해외 사례를 언급한 그는 “미국은 MSC, MSP, SCF로 구성된 3축 전략 상선 체계(약 500척)를 통해 평시에는 민간 운항, 유사시에는 국가 전략 수송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해상자위대 보유 상선제, 영국은 민간 위탁형 상선제, 호주는 필수 선대를 운영하는 등 주요 해양국들은 이미 자국 화물 수송을 위한 전략 선대를 제도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 “우리나라는 국가 필수선박 제도가 존재하기는 하나 규모·지원·동원 체계 측면에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전시 물동량을 일본 요시다 이론, 미국 전쟁 사례, 일본 국토교통성 분석, 국내 해군·해양 전략연구소 연구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평시 대비 약 40~50% 수준의 수송 능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선종별로 환산하면 벌크선·유조선·컨테이너선·자동차선 등 총 200척 규모의 전략 상선대가 최소 필요 수준으로 판단된다”며 “기존 국가 필수선박 88척을 전략 상선으로 전환하고 추가 지정해 100척을 확보해야 하며, 나머지 100척은 국내 조선소 신조 발주(2040년까지)를 통해 전략상 선대 200척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단순한 안보 정책이 아니라, 국내 조선산업의 중소·중견 조선소 일감 확보, 산업 생태계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국내 조선소 발주를 유도하기 위해 중국 대비 20~30%에 달하는 금융·건조 비용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고 분석하며 △공급망 안정화 기금 및 정책금융 조건 개선 △선가 차액 보전, 국산 기자재·친환경·자율운항 장비 보조 △전략 상선 화물 우선 적취권 부여 △한국인 선원 인건비 차액 100% 보전 △항만시설 사용료 감면, 보증료 인하 등 운영 지원 등을 제안했다.
◇ 미국·일본은 입법으로 대응···시장에 맡기는 한국 조선 생태계 붕괴 우려
중국의 조선·해운 산업 지배가 한국의 공급망·안보를 구조적으로 위협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일본 수준의 ‘조선·해운 안보 입법’과 ‘전략상 선대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유진호 한국선급 미래전략팀 팀장은 “조선과 해운은 더 이상 산업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이 입법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시장 논리에 맡긴다면 조선 생태계와 해운 오너십은 동시에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형 전략상 선대와 조선 안보 입법’”이라며 “전 세계 공통의 키워드는 단연 경제 안보로 에너지·반도체·식량뿐 아니라 해운과 조선이 국가 안보의 핵심 영역”임을 강조했다. 또 한국의 해운과 조선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을 언급한 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국적 해운사의 오너십 취약성을 반복해서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내의 대형 해운사들이 언제든지 해외로 매각될 수 있는 구조에 놓여 있고, 선사들이 보유한 선박 척수는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글로벌 1위 선사와 한국 대표 선사의 선복량 격차는 6배 이상에서 이제는 7배 이상으로 다시 벌어졌다”고 했다.
◇ 탄소세 본격화 시 한국 해운이 부담해야 할 비용만 연간 1조 원
국제해사기구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의 환경규제와 탄소세가 본격화되면 한국 해운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연간 1조 원에서 최대 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전 세계 선박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건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2025년 현재 신규 수주량과 수주 잔량 등 조선업 3대 지표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며 점유율은 6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특정 국가의 조선업 점유율이 60%를 넘은 사례는 125년 전 영국 단 한 번뿐이었다. 중국의 선종별 지배력은 벌크선(75%), 탱커(74%), 컨테이너선(81%) 등 전통적인 주력 선종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우리가 강점을 가졌던 범용 선종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우리보다 약 20~30% 저렴한 원가 경쟁력과 평균 3개월 정도 빠른 건조 기간, 100종이 넘는 선종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이미 완성한 상태다.
유 팀장은 “이러한 상태라면 우리나라 중견·중소 조선소와 기자재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우리가 범용선 시장을 포기한 결과 중국의 시장 점유율이 40%를 넘어섰다“는 분석을 내놨다. 우리나라 선박 부가가치의 약 60%를 차지하는 기자재 산업까지 무너지면 국가 제조 기반이 붕괴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함께 조선과 해운을 국가 안보 산업으로 규정하고 전략상 선대 250척 확보와 약 28조 원 규모 기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일본의 경우 이미 4년 전 관련 법을 제정해서 조선업을 AI·반도체와 동급의 전략산업으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의 제도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공급망 관련 법은 규제 중심이고, 해양 진흥공사는 해운에 한정되어 있어 중견 조선소를 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재원 규모 역시 미국은 28조 원, 일본은 10조 원인데 우리는 3조 원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아울러 조선과 해운을 명확히 국가 안보·전략 산업으로 지정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외국 선사, 위험 지역 운송 기피할 가능성도 커
국적 선대 강화는 단순한 보호 정책이 아니라 법·제도적 기반을 갖춘 경쟁력 강화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봉걸 한국무역협회 실장은 “국적 선대를 조직하고 해상주권을 강화할수록 직접 영향을 받는 주체는 수출입 기업”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최근의 홍해 사태와 같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 상황에서 우리 수출기업이 심각한 선복 부족을 겪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국적 선사들의 규모와 국제 경쟁력이 여전히 선진 해운국에 비해 부족하다”며 “국적 선대가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와 안정적인 경쟁력을 갖춘다면 그 효과는 우리 수출입 기업 전체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의 약 99%는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위기 상황에서 국적 상선대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면, 외국 선사들은 위험 지역 운송을 기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해운과 물류를 단순한 운송 서비스로 볼 것이 아니라 국방력의 한 축이자 국가 안보 인프라의 일부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단순히 민간의 자율에만 맡기기에는 요구되는 역량과 책임이 너무 커 국가가 제도·재정적으로 뒷받침하고, 민간과 협력해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할 영역이라는 것이다.
◇ 신조 발주 잔량 약 900만 톤, 현존 선대 대비 12.6% 수준에 불과
우리나라 해상 공급망의 물적 기반인 선대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기준 세계 선복량 점유율은 중국(19%), 그리스(18.4%), 일본(11.1%)에 이어 우리나라는 4.4%로 4위 수준이다.
이상석 한국해양진흥공사 팀장은 “문제는 현 상태가 아니라 향후 추세”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신조 발주 잔량은 약 900만 톤으로, 현존 선대 대비 12.6% 수준에 불과하고 주요 해운 10개국 중 최하위권이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지배 선대 평균 선령은 22.3년으로 일본(16.2년), 중국(14.6년), 독일(19.8년)보다 노후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선대 규모 기준 세계 5위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는 선사들이 신조 발주를 꺼리는 이유로 HMM의 지배구조와 친환경 연료 전환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HMM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컨테이너 선사로 2025년 현재 세계 8위권 수준의 선복량을 보유한 글로벌 해운 기업이다. 이 팀장은 “국가가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구조에서 중·장기 선대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이 사실상 경직되고, 암모니아, 메탄올, LNG 등 기술·규제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사들이 선뜻 대규모 신조 발주에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존 법률을 부분적으로 개정하는 방식, 정책 목표 분산·희석될 우려
경제·안보 특별법 개정과 관련한 토론도 이어졌다. 이재복 김앤장 외국 변호사는 "기존 법률 개정의 경우 해운법, 국가 비상사태 관련 법률 등 현행 법체계 내에서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실제로 회원협회에서도 이러한 방향의 검토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고 말했다.
또 “전략 상선제라는 제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기존 법률을 부분적으로 개정하는 방식은 정책 목표가 분산·희석될 우려의 한계가 분명하다”며 “단일성과 종합성을 확보하려면 시간과 행정적 노력이 더 소요되더라도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이 보다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전략상 선제는 해운·조선·항만·해상 인력·금융 등을 포괄해 국가 경제 안보 차원의 패키지로 통합 운영되는 제도다.
그는 또 “새로운 법률에서는 전략상 선대에 포함될 선박의 범위와 규모, 즉 어떤 선박을 전략자산으로 포함 시킬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며 “‘국가 필수 해상 운송’이라는 큰 개념 아래, 선박·인력·항만·물류·금융을 아우르는 종합적 체계로 설계돼야한다“고 제언했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 역시 중요한 과제고 꼽았다. 미국의 MSP(Maritime Security Program)와 같이 전략 상선에 대한 상시 유지비 지원 제도를 참고해, 평시에도 선박의 가용성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 재원 조달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원 과정에서 WTO 보조금 규정과의 충돌 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하고, 유사시 가용성 확보와 수송 능력 유지라는 목적을 명확해 제도적 정합성을 갖춘 법률 설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조건의 선박을 전략 상선으로 인정하고, 수익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어떻게 제도화하며, 기존 국가 필수선박 제도를 어디까지 재정리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안영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전문연구원은 “전략상 선대가 단기적·임시적 처방이 아니라 우리나나 해상 물류를 장기적으로 어떻게 자력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설계도라는 점에서 입법을 통한 제도화 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도체나 배터리 산업은 이미 입법과 기금을 통해 전략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해운·해사 산업은 여전히 시장 논리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결과 구조적 취약성이 누적됐다”며 우리나라 해운·조선의 취약성을 경쟁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노출 문제로 진단한 점을 공감했다.
◇ 해상주권과 경제·에너지 안보 강화하는 방향 검토
김승용 해양수산부 국제항로질서 팀장은 “향후 해수부뿐 아니라 협회, 선급, 해진공, KMI 등 유관기관이 함께 논의하며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며 “선사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다보니 국적 선원 임금 차액 보전도 100% 이뤄지지 않아 관리·운영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제도는 해수부 국정과제인 핵심 에너지 수송 안정성 제고와도 직결되는 만큼, 단순한 해운 정책을 넘어 국가 공급망·경제 안보 정책의 한 축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에서 면밀히 검토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척수, 재원과 관련해서는 “실제 수요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나리오 분석을 제시했지만, 현재 가정이 국가가 전략물자를 100% 단독 대응하는 극단적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어, 정책 목표로 삼기에는 상한선 성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민간 해운시장이 위기 상황에서도 완전히 멈춘 사례가 없어 단계적 확대가 현실적인 접근일 것”이라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