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당사자 목소리 배제한 '산불특별법’···누굴 위한 건가?

  • 등록 2025.12.09 14: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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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70% ‘보상금 산정 근거 몰라’, 80.2% ‘산불특별법 내용 몰라’
10명 중 6명 임시주택 거주 장기화, PTSD 위험군 87%...주거·생업·심리 ‘3중고’ 심각

 

지난 10월 ‘경북에서 발생된 초대형 산불로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이 제정됐으나 정작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입법 과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재난 복구 시스템에 ‘실질적 회복’ 지원책이 누락되면서 피해 주민 10명 중 6명은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임시 주거시설에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

 

9일,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녹색전환연구소,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는 <2025 경북 산불 피해주민 실태조사>의 중간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오는 15일 ‘산불특별법 시행령’ 입법예고를 앞두고, 안동·의성·영덕 지역 산불 피해 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재난 이후 회복 실태와 제도적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올해 10월부터 두달간 진행됐다.

 

조사 결과, 재난 수습 및 입법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권과 알 권리가 침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전체 응답자의 80.2%는 ‘특별법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답했고,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 주민의 68.9%는 “입법 과정에서 피해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주된 이유로는 ‘실질적 피해 평가 계획 부족(57.3%)’과 ‘생계 회복 내용 부족(42.0%)’등을 꼽혔다.

 

정보 접근성과 절차적 투명성 부족도 주요 문제로 지적됐다. 재난 이후 구호금 및 성금 정보를 얻는 경로로 응답자의 48.1%는 ‘이웃 또는 이장을 통해 들었다’고 답해, 공식 행정 채널을 통한 정보 제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복구지원비를 수령한 응답자의 70%는 보상금의 구체적인 산정 근거를 알지 못한 채 지원금을 수령하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실질적인 회복 지원이 누락된 제도는 피해 주민들의 장기화된 주거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조사 시점 기준 전체 응답자의 62.4%가 컨테이너 등 임시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고, 주택 피해를 입은 응답자 중 17.7%는 현재까지 구체적인 복구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주된 사유는 ‘비용 부족(42.1%)’이 가장 높았다.

 

이는 감가상각을 적용하는 현행 지원 기준이 실제 주택 신축 비용(재조달 가액)을 반영하지 못해, 고령층 등 취약 계층의 자력 복구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으로 분석된다.

 

현행 지원 체계가 실거주자가 아닌 소유권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지원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조사 결과, 임대 거주 피해자의 46.2%가 피해보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심층 인터뷰에서 주택 소유자는 1억2000만 원을 수령한 반면, 전소 피해를 입은 실거주 세입자는 500만 원 수준의 지원에 그쳤다는 증언도 나와 차별적인 보상 격차가 확인됐다.

 

조사를 진행한 세 단체는 이번 결과가 기후재난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과거의 대응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김서린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활동가는 “이번 조사는 산불 피해가 단순한 물리적 손실을 넘어, 재난 수습 과정에서 ‘정보 접근의 제한과 절차적 배제’라는 심각한 권리 침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향후 구성될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에는 피해 주민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해, 당사자가 납득할 수 있는 복구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녹색전환연구소 황정화 연구원도 "현재의 복구 지원은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주민들의 회복을 지원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행정편의적인 방식으로 인해 수많은 사각지대를 양산하고 있다"며 "이런 일방적 과정에서 주민들의 울분이 커지고, 트라우마를 지속시킨다. 실거주와 실질적 생업활동을 기준으로 복합적 피해를 확인해야 하고, 시설 복구만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회복과 강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피스 이선주 캠페이너도 “기후위기는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을 가장 먼저 깊게 무너뜨리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과거의 방식처럼 최소한의 생계 유지를 위한 일차원적 구호에만 그친다면, 기후 취약계층은 만성적인 위기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기후재난 피해자가 안전하게 일상을 회복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며 "나아가 물리적 시설 복구를 넘어, 기후 리스크 자체를 경감하고 지역 공동체가 장기적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제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동환 기자 photo7298@m-eono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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